<앵커 멘트>
정전 협상 당시 오고간 비밀 전문들은 북한 지도부가 미군의 공중 폭격에 안절부절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윌슨센터와 경남대가 발굴해 처음 공개한 당시 외교 문서들을 보면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날에도 미군의 공습은 계속됐습니다.
워싱턴에서 이강덕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한국전쟁이 계속된 3년 동안 미군의 공중 폭격은 북한군과 중공군 지도부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정전 협상이 진행중이던 1952년 7월 17일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은 소련 최고 지도자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11일과 12일 이틀간의 폭격으로 평양에서만 6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면서 항공기 긴급 지원을 요청합니다.
몇달 후 스탈린을 직접 만난 김일성 사령관은 전황을 묻는 질문에 대해 '폭격만 빼면 괜찮다'며 공습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합니다.
미군의 공습은 정전 협정이 체결되는 날까지 실시됩니다.
북한 주재 폴란드 대사관 전문은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인 24일에 평양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펼쳐졌고 미군의 공습은 정전 협정 서명 당일에도 이뤄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8월 1일자 폴란드 대사관 전문은 밤 10시를 기해 공습을 포함한 모든 군사행동이 중단되면서 평양에는 3년만에 처음으로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퍼슨 윌슨 센터(경남대 합동 문서발굴팀장)
협상과 함께 지속된 공중 폭격은 유엔군측에게는 현 전선을 기준으로 한 군사분계선 획정 등 협상안 관철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강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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