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이 한국형 농구의 위력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국은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63-59로 호쾌하게 격파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필리핀 방송 중계진은 "한국이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군단을 무너뜨렸다"며 경탄을 쏟아냈다.
한국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은 것은 1997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준결승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다른 대회를 통틀어도 한국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한 이후 더이상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오자 유재학 감독이 구사하는 '한국형 농구'가 위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젠롄(213㎝), 왕즈즈(216㎝), 쑨예(206㎝), 왕저린(214㎝), 주팡유(205㎝) 등이 펼치는 골밑 지배력이 강점이다.
이번 대회 15개 참가국 가운데 중국 라인업의 평균신장이 가장 크다.
유 감독은 골밑에서 높이의 맞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가드들의 볼배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실점을 줄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예상은 적중했다.
양동근, 김태술, 김선형 등 가드진은 경기 내내 상대 진영에서부터 조직적인 압박수비를 펼쳤다.
중국 가드들은 볼을 드리블하는 시간이 길어져 주어진 공격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전방에서부터 수비가 잘 이뤄졌다"며 "상대 가드가 온종일 볼을 끌고 다닌 게 우리가 승리한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장신숲에서 투혼을 발휘한 빅맨 김주성, 이승준, 김종규, 이종현 등의 협력수비도 돋보였다.
이들은 주전, 비주전 구분이 없이 수시로 교체 투입돼 20분 안팎을 소화했다.
이젠롄 등 높이가 있는 선수가 골밑에 침투하면 한국은 어김없이 두 명씩 둘러싸 볼이 외곽으로 빠지도록 했다.
유 감독은 "중국과의 일전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신장의 차이였다"며 "큰 선수들을 극복해준 우리 선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과 중국의 실책의 수는 17개, 16개로 평소보다 많았다.
승부를 거친 체력전으로 몰고 가 상대의 평상 전력을 흔드는 전략도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한국은 이날 외곽포 같은 공격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상대 득점을 줄여 승리하는 수비 농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유재학 감독의 한국형 농구는 2일 이란과의 C조 2차전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이란도 중국에 못지않은 장신군단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3위 이내에 들어 내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