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11일 경기도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과 청주 국민은행의 경기를 앞둔 삼성생명 박정은 코치의 말이다.
박정은 코치는 이날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했다.
은퇴식에 입장할 때부터 이미 눈가가 빨개져 있었던 박 코치는 현역 시절 영상이 체육관에 소개되면서부터 이미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까지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곳에 코치 자격으로 처음 발을 내디디면서 박 코치의 감정은 복잡했다고 한다.
박 코치는 "내가 기억력이 좋은편이 아닌데 선수 생활을 할 때 매 순간이 떠오르더라"며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시즌부터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내가 받은 사랑을 반드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코치는 은퇴식에서 자신의 농구 인생에서 소중했던 사람 5명을 꼽는 순서에서 어머니 임분자 씨,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농구 선수의 길로 이끌어준 이상돈 교장, 열성팬인 이민희 씨, 삼성생명에서 지도해준 유수종 감독, 남편 한상진 씨를 들었다.
인기 탤런트인 남편 한상진 씨 역시 코트에 소개될 때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박정은 코치는 "어제부터 '나야 울어도 괜찮지만 당신은 남자니까 눈물 보이면 평생 갈 것'이라고 말해줬는데 완전히 망했다"며 남편의 눈물을 짓궂게 꼬집기도 했다.
박 코치는 "남편도 나 이상으로 선수처럼 생활을 했다"며 "농구를 어쩌면 나보다 더 사랑한 것 같아서 아마 아내인 박정은보다 선수 박정은을 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눈물이 흘렀을 것"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꼽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올림픽 본선에 네 차례나 출전한 박 코치는 "시드니 올림픽이 한국 여자농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더 경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은 4강에 진출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새내기 코치로 시즌을 맞게 된 박 코치는 "선수 때 위로 정은순 언니처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와도 생활했고 반대로 한참 어린 선수들과도 뛰어본 경험이 있다"며 "옆집 언니가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도록 먼저 다가서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11번을 달고 선수로 뛴 그는 공교롭게도 11월11일에 자신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 하게 됐다.
박 코치는 "아마추어는 1번을 달 수 없어서 최고의 의미가 있는 1이 두 개 들어간 11번을 등번호로 삼았고 다른 번호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이제 지도자로도 팬 여러분이 기억해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