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길훈 (이하 정길훈): 오늘은 광복 80주년입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독립을 되찾은 날인데요.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말기 서남해안에 수백여 개의 군사 시설을 구축했던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서남해안은 전쟁 기지였다’를 주제로 광복절 기획 보도를 이어온 KBS 광주 보도국 이성각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이성각 KBS기자 (이하 김화진): 안녕하십니까?
◇ 정길훈: 이번 주 ‘서남해안은 전쟁 기지였다’를 주제로 기획 보도를 이어왔는데 이번 보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겁니까?
◆ 이성각: 시작은 일본군 150사단 진지 배치도 전체를 입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50사단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광주와 전남 그리고 전북의 부안 고창 이렇게 서해안까지 맡았던 부대인데요.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판세가 불리해지자 일본 열도 방어를 위해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방어선을 구축하는 한 축이 전남 서남해안 쪽이었습니다. 이 부대가 바로 그 호남 서남해안의 방어를 책임지는 부대였는데요. 전쟁 막바지 급하게 만든 부대였고 이 부대의 진지 배치도 전체를 입수하면서 해안가에 어떤 진지를 구축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기획 보도의 취지였습니다.
◇ 정길훈: 일본군 150사단의 진지 배치도, 이게 공개된 게 이번이 처음입니까?
일본군 150 사단 진지도
◆ 이성각: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부분적으로 공개가 됐고요. 일부 지자체 같은 경우에 일본 군사시설 관련해서 파악하는 용역 같은 걸 진행하면서 부분적으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50사단 진지 배치도 전체를 저희가 입수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진지 배치도를 놓고 현장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면서 찾아다녔다는 점이 의미가 있고요. 또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서 서남해안 또 광주에 있는 이런 시설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을 일본 쪽 군사 전문가들에게 교차로 확인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길훈: 진지 배치도에 담긴 진지 수도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 이성각: 지도가 두 가지 종류인데요. 상당히 넓은 지역을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한 진지 배치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북 고창, 부안 그다음에 영광, 함평 이렇게 포함된 영역을 아주 큰 지도로 나타내면서 손톱 모양 정도 되는 방어 진지지만 실제로 그걸 확대해서 보면 그 안에 수류탄 진지, 기관총 진지 이런 걸 열 몇 개씩 모아 놓은 형태의 두 가지 지도가 있거든요. 섬 지역 같은 경우에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는 지도는 이런 곳에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지도로 표시해 놓았을까 싶을 정도의 진지도도 있었습니다.
◇ 정길훈: 8월에 한여름 폭염 속에서 아마 그 지도 들고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지 현장을 확인했을 텐데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까?
◆ 이성각: 목포나 무안 같은 데는 일본군 군사시설이 일부 좀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수 거문도 같은 경우에도 실제 조사를 해서 실체가 드러난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150사단 배치도에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섬 곳곳에 그러니까 아주 구석구석까지 진지가 표기돼 있었고, 목포 인근 섬 지역부터 이렇게 살펴보니까 섬 주민들도 모르는 곳에 진지가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인공 동굴 형태나 기관총을 거치할 수 있는 엄폐된 공격 시설 다수를 확인했고요. 그런데 이런 진지들을 보면 밖에서는 정말 안 보이는데 진지 안에서 보면 해안가가 이제 한눈에 보이는 이런 데 설치된 곳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만큼 정교하고 치밀하게 진지를 구축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정길훈: 이번에 연속 보도를 보니까요. 현재 무안국제공항 인근에도 일제강점기에도 그 자리에 비행장이 있었고 또 관련 시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던데요. 토치카도 있고요. 실태가 어떻습니까?
◆ 이성각: 콘크리트 진지를 토치카라고 부릅니다. 무안 옛 비행장 인근 황토밭 한 가운데 이렇게 토치카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가로세로 3m 정도 되고요. 토사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높이는 1.5m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콘크리트 벽면 두께가 50cm가 넘을 정도로 두꺼웠습니다. 급하게 공사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콘크리트 안에 있는 자갈들이 고르지 않고 주변에서 가져다 쓴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 정길훈: 80년이 넘었는데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일제가 상당히 튼튼하게 지은 것 같아요.
◆ 이성각: 토치카를 취재하고 있는데 밭 주인분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요. 그 주인분이 그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밭 옆으로 집을 좀 넓히려고 토치카를 철거하려고 했는데 한 30여 년 전에, 어찌나 단단한지 도저히 부술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어르신이 안내해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토치카를 하나 더 발견했는데 이곳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제 미처 철거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 정길훈: 무안 옛 비행장 인근에 또 다른 군사시설은 없었습니까?
◆ 이성각: 무안 옛날 비행장이 망운 비행장이란 이름이었는데 비행장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 부근에서 올라갔습니다. 병산이라고 하더라고요. 병산 정상 아래쪽 일본군 동굴을 하나 더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정상에서 한 10m 정도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수풀에 가려져 있어서 동굴 입구 쪽 긁어내니까 박쥐가 튀어나올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어요. 동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능선을 타고 있는데요. 경계병들의 탄약을 모아둔 곳이거나 엄폐 장소로 쓰였던 것 같고요. 산 능선 따라 내려오면서 초소로 쓰였던 곳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명확하게 어떻게 쓰였는지 이런 것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안 지역은 격납고, 통신 시설로 보이는 곳들이 제법 있는데 대부분 사유지 안에 있다 보니까 관리나 보존이 잘 돼 있지는 않더라고요. 아쉬웠습니다.
◇ 정길훈: 세월이 벌써 80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각종 개발로 지형이 바뀐 곳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군사 시설의 흔적이 사라진 곳도 있겠네요.
◆ 이성각: 제가 처음에 이 진지 배치도 들고 혼자서 찾아간 곳이 영광 쪽이었습니다. 지도에 나온 지명을 보고 이곳이 어느 마을 정도이겠구나 하고 해안선에 들어가고 나온 형태를 현재와 맞춰보면 웬만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고창과 인접한 흑어도라는 섬이 있어서 그 섬을 기점으로 해서 진지도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섬이 원전 공사 때문에 이미 육지로 돼 있더라고요. 아무리 섬을 찾아서 그 주변을 찾으려고 해도 섬이 없다 보니까 진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고요. 지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 부근에 진지 동굴이 돼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런데 마침 90살 정도 드신 어르신에게 취재를 설명하니까 안내를 해주셔서, 어렸을 때 본인이 그 동굴을 봤다고 안내해 주셔서 저희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본군 군사시설이 어디에 있었는지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제 하나둘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정길훈: 이번 취재하면서 목포에서부터 진도, 무안, 영광까지 누볐는데 취재하고 나서 느낌은 어떻습니까?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전남 서남해안을 어떤 용도로 활용한 것 같습니까?
◆ 이성각: 일본 본토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방어를 위한 한 축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고요. 서남해안을 전쟁 기지화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목포나 전북 군산으로 연합군이 상륙할 수 있다고 이렇게 판단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방어벽 진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정길훈: 지금부터는 이번 취재 한 축인 광주의 항공 기지 관련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광주 비행장이 있었다는 것은 예전에도 한 번 보도됐던 내용 같은데요. 광주 비행장 위치가 어디쯤으로 추정됩니까?
광주 항공기지 지도
◆ 이성각: 당시 일본군 항공 기지 지도를 보면 지금의 상무시민공원과 김대중컨벤션센터 이 부분입니다. 당시 활주로 길이가 1400m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1939년에 비행장이 만들어졌고 처음에는 총독부 체신국, 그러니까 우편을 나르는 데 항공편으로 주로 사용했던 것 같고요. 또 경성과 광주를 오가는 민항기가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본군 육군으로 갔다가 해군으로 넘어가면서 그 전후로 대폭 시설을 확충한 것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정길훈: 항공 기지가 있었다면 비행기를 넣어두는 격납고나 탄약고 이런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시설들이 있었을까요?
◆ 이성각: 1944년부터 대체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조종사들 인력이 쉴 수 있는 거주 공간, 연료고도 있었고요. 탄약고, 지휘소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서 어제 보도한 것인데요. 일본군의 당시 훈련 사진들 입수해서 보도했는데 이 사진 속에서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지휘소라든지 건물 3, 4층 정도 되는 관제탑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정길훈: 그러면 실제로 상무지구 인근에서 그런 시설들이 확인됩니까?
◆ 이성각: 가장 가까운 곳이 활주로와 직선거리 1.8km 정도 떨어진 폭탄고가 있습니다. 벽진동 사월산 밑에 있는 것인데 동굴 입구가 막혀 있기도 했는데 저희는 개인 주택 뒷마당에 연결된 동굴 통로가 있어서 주인 분의 동의를 받아서 들어가 본 적이 있고요. 또 2.5km 정도 떨어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부근에서도 연료고가 발견됐습니다.
광주 항공기지 연료고
◇ 정길훈: 활주로 주변에 시설들이 몰려 있을 법한데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네요.
◆ 이성각: 전쟁 후반부에 미군 폭격이 심해지면서 비행장이 큰 피해를 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44년 이후로 모든 비행장의 시설들을 분산해서 은폐하도록 그렇게 대대적으로 공사했다고 합니다.
◇ 정길훈: 폭탄고나 연료고 외에 또 용도를 알 수 없는 시설도 있다는데 어떻습니까?
◆ 이성각: 광주 화정동 옛 505보안부대 지하 시설 2곳인데 저희가 상당히 꼼꼼히 들여다봤는데 규모가 상당하고 견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설로 쓰였는지 추정하기 어려웠던 곳도 있었습니다.
◇ 정길훈: 이렇게 발굴되지 않은 시설들이 지금 상무지구에 묻혀 있을 거라고 추정이 되는데요. 어디로 추정됩니까?
◆ 이성각: 지도 위에 사월산 동굴에는 폭탄고 급수 시설이 있는 곳에는 우물 정(井)자로 표기돼 있고 그 옆에 일본어로 펌프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한 시설이 있다고 표기돼 있는데 어떤 용도로 쓰겠다는 표시가 없는, 쓰이지 않은 시설이 있는데 이런 경우 미확인된, 미 발굴된 시설로 지금 의심하는 겁니다.
◇ 정길훈: 80년 세월이 지났는데 이번 보도에서 나왔던 것들의 실체를 한번 확인해 보는 작업도 필요해 보이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 이성각: 미발굴된 상무지구 중앙의 5.18 기념공원 내에 미발굴 지하 시설이 있을 수 있다고 이런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기본적으로 미발굴 지하 시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기초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요. 실제로 발굴이 필요하다, 이런 판단이 서면 발굴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정길훈: 기획 보도가 이번 주에 마무리된 겁니까? 아니면 또 계속 이어갑니까?
◆ 이성각: 다음 주에도 일부 보도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이런 시설이 얼마나 산재해 있는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고요. 이런 조사를 통해서 일본 군사시설의 활용, 보존에 대해서도 지역사회가 고민해야 하는데 이번 보도가 그런 논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정길훈: 오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성각: 감사합니다.
◇ 정길훈: 지금까지 KBS 이성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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