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히트상품

입력 2000.11.22 (20: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지면서 쫄깃한 면발과 국물이 어우러진 라면 생각이 자주 납니다.
지난 63년 첫 선을 보인 이 라면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기록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출동투데이 오늘은 이해연 기자가 이 라면의 모든 것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강원도 화천군에 사는 72살 박병구 할아버지 집.
쌀자루가 있어야 할 창고에는 라면과 달걀이 쌓여 있습니다.
농삿일 나간 할머니 대신 손수 라면을 끊이는 할아버지.
위장병을 앓으면서 밥만 먹으면 탈이나 하루 세 끼를 라면으로 대신합니다.
⊙박병부(72살/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여지껏 먹은 게 28년이에요.
⊙기자: 밥 먹고 싶지 않으세요.
라면만 먹으면...
⊙박병부(72살): 그 라면만 먹으니까 전에는 밥 먹었지만 지금은 밥이 맛이 없어서 밥 안 먹어요.
⊙기자: 라면이 밥보다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정숙: 처음 어떤 사람들은 라면 먹고 맥이 있느냐고 그러는데, 저 양반은 그런 거 못 느끼겠더라구요.
다른 사람 보다 특이한지, 그것만 잡숫고도 남 하는 일은 해요.
⊙기자: 라면의 열량은 520칼로리, 비빔밥 한 그릇과 비슷한 열량입니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전부인 라면을 28년 동안 주식으로 먹은 박 할아버지의 건강에 별 문제가 없는 건 함께 먹는 반찬 때문입니다.
⊙김현숙(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비타민, 무기질이 굉장히 중요한데 라면에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같이 먹는 부식격으로도 반찬격으로도 김치나 또 샐러드나 이런 것을 같이 먹으면 라면의 모자란 점을 보충해 주면서 영양적으로 그러한 보상효과가 있죠.
⊙기자: 영양은 두고서라도 그 독특한 맛 때문에 라면 매니아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면 동호회 회원들에게는 새로 생긴 라면 집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코스입니다.
⊙인터뷰: 홈페이지 들어가서 한 번 또 남겨야 되겠어요.
콩나물이 죽인다...
⊙기자: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신제품까지 섭렵하는 것이 이들의 즐거움입니다.
⊙최용민(라면동호회 운영자): 군대에서 먹는 라면은요, 라면을 쪄서 만들어요.
쪄서 만든거라 맛이 참 똑 같아요.
먹을 때마다 질린다구요.
그러면서 군대에서 생각하기를 이거보다 새로운 라면을 한 번 먹어봤으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제대를 하게 됐죠.
제대와 동시에 우리나라 슈퍼에 깔려 있는 모든 라면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한 게 라면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
⊙기자: 하루에 한 번은 꼭 라면을 먹는다는 이들.
라면 이름까지 줄줄이 외울 정도입니다.
⊙홍용표(라면동호회 회원): 도시락, 삼양라면, 비빔범벅, 짜장범벅, 진라면, 왕라면, 오징어짬뽕, 청라면, 야채라면, 맛보면, 맵시면, 랍스타왕라면... ..
⊙기자: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라면 회사 연구원들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보다 새로운 라면 또 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라면회사 연구원들은 하루 5차례 이상 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심명섭(라면회사 연구원):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판되고 있는 모든 라면을 수거해서 다 먹어보고 그 특징을 보고하는 건데 그 당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130여 종 되거든요, 우리나라 라면이.
그것을 이제 슈퍼마다 돌아다니면서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거를 일주일 동안 130여 가지를 끊여 먹으면서 그때 참 좀 상당히 쇼킹한 사건이었죠.
⊙기자: 이렇게 힘겹게 개발된 라면은 마지막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진열대에 놓일 수 있습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먼저 대중 앞에 맛보이는 시식회가 열립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걸리는 라면 개발, 하지만 대박을 터뜨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가중현(라면회사 마케팅 담당): 100개를 낳으면 한 5개 정도가 성공을 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라면은 성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라면은 식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헤비티얼 푸드입니다.
습관적으로 자기의 입맛에 길들여 있는 거가 선호가 되기 때문에...
⊙기자: 라면이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63년, 일본보다 5년 늦게 선보인 라면을 두고 처음에는 무슨 섬유이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70년대 정부의 혼식장려정책에 힘입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1년 동안 생산되는 라면은 42억개 정도.
국민 1인당 90여 개의 라면을 먹는 셈입니다.
특히 예전 휴거소동, 북한의 불바다 발언 그리고 Y2K불안 등 사회적 불안요인이 있을 때마다 라면의 수요는 폭발했습니다.
더욱이 지난 97년 말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라면은 매출이 20%나 증가해 우리 사회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강숙희(55살/주부): 초조하다 그럴까, 괜시리 불안해 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불안해져서 조금은 절제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좀 줄여야 되겠다 싶어서...
⊙기자: 38년이라는 세월동안 국민과 함께 한 라면, 온 국민의 사랑 속에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찾는 음식으로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KBS뉴스 이해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최고의 히트상품
    • 입력 2000-11-22 20:00:00
    뉴스투데이
⊙앵커: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지면서 쫄깃한 면발과 국물이 어우러진 라면 생각이 자주 납니다. 지난 63년 첫 선을 보인 이 라면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기록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출동투데이 오늘은 이해연 기자가 이 라면의 모든 것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강원도 화천군에 사는 72살 박병구 할아버지 집. 쌀자루가 있어야 할 창고에는 라면과 달걀이 쌓여 있습니다. 농삿일 나간 할머니 대신 손수 라면을 끊이는 할아버지. 위장병을 앓으면서 밥만 먹으면 탈이나 하루 세 끼를 라면으로 대신합니다. ⊙박병부(72살/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여지껏 먹은 게 28년이에요. ⊙기자: 밥 먹고 싶지 않으세요. 라면만 먹으면... ⊙박병부(72살): 그 라면만 먹으니까 전에는 밥 먹었지만 지금은 밥이 맛이 없어서 밥 안 먹어요. ⊙기자: 라면이 밥보다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정숙: 처음 어떤 사람들은 라면 먹고 맥이 있느냐고 그러는데, 저 양반은 그런 거 못 느끼겠더라구요. 다른 사람 보다 특이한지, 그것만 잡숫고도 남 하는 일은 해요. ⊙기자: 라면의 열량은 520칼로리, 비빔밥 한 그릇과 비슷한 열량입니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전부인 라면을 28년 동안 주식으로 먹은 박 할아버지의 건강에 별 문제가 없는 건 함께 먹는 반찬 때문입니다. ⊙김현숙(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비타민, 무기질이 굉장히 중요한데 라면에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같이 먹는 부식격으로도 반찬격으로도 김치나 또 샐러드나 이런 것을 같이 먹으면 라면의 모자란 점을 보충해 주면서 영양적으로 그러한 보상효과가 있죠. ⊙기자: 영양은 두고서라도 그 독특한 맛 때문에 라면 매니아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면 동호회 회원들에게는 새로 생긴 라면 집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코스입니다. ⊙인터뷰: 홈페이지 들어가서 한 번 또 남겨야 되겠어요. 콩나물이 죽인다... ⊙기자: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신제품까지 섭렵하는 것이 이들의 즐거움입니다. ⊙최용민(라면동호회 운영자): 군대에서 먹는 라면은요, 라면을 쪄서 만들어요. 쪄서 만든거라 맛이 참 똑 같아요. 먹을 때마다 질린다구요. 그러면서 군대에서 생각하기를 이거보다 새로운 라면을 한 번 먹어봤으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제대를 하게 됐죠. 제대와 동시에 우리나라 슈퍼에 깔려 있는 모든 라면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한 게 라면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 ⊙기자: 하루에 한 번은 꼭 라면을 먹는다는 이들. 라면 이름까지 줄줄이 외울 정도입니다. ⊙홍용표(라면동호회 회원): 도시락, 삼양라면, 비빔범벅, 짜장범벅, 진라면, 왕라면, 오징어짬뽕, 청라면, 야채라면, 맛보면, 맵시면, 랍스타왕라면... .. ⊙기자: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라면 회사 연구원들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보다 새로운 라면 또 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라면회사 연구원들은 하루 5차례 이상 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심명섭(라면회사 연구원):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판되고 있는 모든 라면을 수거해서 다 먹어보고 그 특징을 보고하는 건데 그 당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130여 종 되거든요, 우리나라 라면이. 그것을 이제 슈퍼마다 돌아다니면서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거를 일주일 동안 130여 가지를 끊여 먹으면서 그때 참 좀 상당히 쇼킹한 사건이었죠. ⊙기자: 이렇게 힘겹게 개발된 라면은 마지막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진열대에 놓일 수 있습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먼저 대중 앞에 맛보이는 시식회가 열립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걸리는 라면 개발, 하지만 대박을 터뜨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가중현(라면회사 마케팅 담당): 100개를 낳으면 한 5개 정도가 성공을 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라면은 성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라면은 식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헤비티얼 푸드입니다. 습관적으로 자기의 입맛에 길들여 있는 거가 선호가 되기 때문에... ⊙기자: 라면이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63년, 일본보다 5년 늦게 선보인 라면을 두고 처음에는 무슨 섬유이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70년대 정부의 혼식장려정책에 힘입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1년 동안 생산되는 라면은 42억개 정도. 국민 1인당 90여 개의 라면을 먹는 셈입니다. 특히 예전 휴거소동, 북한의 불바다 발언 그리고 Y2K불안 등 사회적 불안요인이 있을 때마다 라면의 수요는 폭발했습니다. 더욱이 지난 97년 말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라면은 매출이 20%나 증가해 우리 사회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강숙희(55살/주부): 초조하다 그럴까, 괜시리 불안해 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불안해져서 조금은 절제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좀 줄여야 되겠다 싶어서... ⊙기자: 38년이라는 세월동안 국민과 함께 한 라면, 온 국민의 사랑 속에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찾는 음식으로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KBS뉴스 이해연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