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병 이끈 야전 지휘관” 확인

입력 2009.10.2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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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한반도 침탈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오늘로 꼭 100년이 됩니다.

안 의사 의거의 전모를 밝혀 주는 일본 밀정의 상부 보고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토 저격 사건의 배후를 조사한 자료인데 안중근 등의 비밀회합이 담겨 있습니다.

유승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된 직후.

통감부는 본국 외무대신 앞으로 암살의 배후를 조사한 기밀 문건을 보냅니다.

저격 사건이 일어나기 10여 일 전 비밀 회합이 있었고 이 자리에 안중근과 우덕순, 조도선 등 3명이 함께 있었다는 일본 밀정의 탐문 정보 보고서 였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단체 신문인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열린 이 회합에 안중근 등 3명은 이토의 만주 방문에 맞춰 암살하자고 약속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합에는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을 지낸 정재관이란 인물이 있었고 일본 경찰은 암살 배후로 정재관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 "면밀히 조사한 결과 안중근 혼자가 아니라 굉장히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고 그 중심에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안 의사의 의거 이전의 행적도 새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907년 10월 연해주 망명에서 1909년 10월 하얼빈 의거까지 2년간의 안 의사 의병투쟁 기록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의병 2백 명을 이끌고 참가한 연해주 의병군의 국내 진공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중과부족으로 끝끝내 실패하고 말지만 두만강을 건넌 의병군은 함경북도 홍의동 전투와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를 안겼고 회령군 영산까지 진격한 기록도 일본군의 전투 일지로 확인됩니다.

<인터뷰> 박민영(독립운동연구소 연구원) : "연해주 의병, 도영장(최고 지휘관) 밑에 좌익장 우익장 양익 제체인데 거기에서 우익장을 맡았으니까 상당히 비중 있는 의병 지휘관이죠."

꼭 100년 전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7발의 총성에 앞서 연해주에서 활동한 2년 동안 안중근은 조직적으로 의병을 이끈 야전 지휘관이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승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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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병 이끈 야전 지휘관” 확인
    • 입력 2009-10-26 20:03:27
    뉴스타임
<앵커 멘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한반도 침탈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오늘로 꼭 100년이 됩니다. 안 의사 의거의 전모를 밝혀 주는 일본 밀정의 상부 보고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토 저격 사건의 배후를 조사한 자료인데 안중근 등의 비밀회합이 담겨 있습니다. 유승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된 직후. 통감부는 본국 외무대신 앞으로 암살의 배후를 조사한 기밀 문건을 보냅니다. 저격 사건이 일어나기 10여 일 전 비밀 회합이 있었고 이 자리에 안중근과 우덕순, 조도선 등 3명이 함께 있었다는 일본 밀정의 탐문 정보 보고서 였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단체 신문인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열린 이 회합에 안중근 등 3명은 이토의 만주 방문에 맞춰 암살하자고 약속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합에는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을 지낸 정재관이란 인물이 있었고 일본 경찰은 암살 배후로 정재관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 "면밀히 조사한 결과 안중근 혼자가 아니라 굉장히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고 그 중심에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안 의사의 의거 이전의 행적도 새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907년 10월 연해주 망명에서 1909년 10월 하얼빈 의거까지 2년간의 안 의사 의병투쟁 기록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의병 2백 명을 이끌고 참가한 연해주 의병군의 국내 진공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중과부족으로 끝끝내 실패하고 말지만 두만강을 건넌 의병군은 함경북도 홍의동 전투와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를 안겼고 회령군 영산까지 진격한 기록도 일본군의 전투 일지로 확인됩니다. <인터뷰> 박민영(독립운동연구소 연구원) : "연해주 의병, 도영장(최고 지휘관) 밑에 좌익장 우익장 양익 제체인데 거기에서 우익장을 맡았으니까 상당히 비중 있는 의병 지휘관이죠." 꼭 100년 전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7발의 총성에 앞서 연해주에서 활동한 2년 동안 안중근은 조직적으로 의병을 이끈 야전 지휘관이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승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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