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그러나 3.1절의 의미는 갈수록 잊혀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긴데요.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조국독립을 위해 애쓴 선열들의 기상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최건일 기자가 둘러봤습니다.
<리포트>
<인터뷰> "안창호?"
<인터뷰> "윤동주 시인님?"
<인터뷰> "유관순!"
<녹취>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지고 있는 봉황각.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이곳에서 4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무려 15명이 이곳 출신입니다.
<인터뷰> 오은숙(서울시 수유동) : "저희 지역에 이런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서울 성북동,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면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나타납니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해방된 조국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만해 한용운 선생.
님은 갔지만 그의 뜻을 담은 자택 심우장은 산비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집은 일반 한옥과는 달리 북향으로 지어졌습니다.
남쪽 방향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기 싫다는 이유에섭니다.
민족대표 대부분이 고초를 겪은 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하 독방을 체험한 사람들은 독립투사들의 애국심과 3.1절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인터뷰> 문진영(시흥시 정왕동) : "이런 희생을 거쳐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KBS 뉴스 최건일입니다.
그러나 3.1절의 의미는 갈수록 잊혀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긴데요.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조국독립을 위해 애쓴 선열들의 기상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최건일 기자가 둘러봤습니다.
<리포트>
<인터뷰> "안창호?"
<인터뷰> "윤동주 시인님?"
<인터뷰> "유관순!"
<녹취>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지고 있는 봉황각.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이곳에서 4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무려 15명이 이곳 출신입니다.
<인터뷰> 오은숙(서울시 수유동) : "저희 지역에 이런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서울 성북동,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면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나타납니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해방된 조국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만해 한용운 선생.
님은 갔지만 그의 뜻을 담은 자택 심우장은 산비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집은 일반 한옥과는 달리 북향으로 지어졌습니다.
남쪽 방향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기 싫다는 이유에섭니다.
민족대표 대부분이 고초를 겪은 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하 독방을 체험한 사람들은 독립투사들의 애국심과 3.1절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인터뷰> 문진영(시흥시 정왕동) : "이런 희생을 거쳐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KBS 뉴스 최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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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가는 3·1절의 의미…되새기는 자주·독립
-
- 입력 2011-03-01 22:01:07
<앵커 멘트>
그러나 3.1절의 의미는 갈수록 잊혀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긴데요.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조국독립을 위해 애쓴 선열들의 기상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최건일 기자가 둘러봤습니다.
<리포트>
<인터뷰> "안창호?"
<인터뷰> "윤동주 시인님?"
<인터뷰> "유관순!"
<녹취>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지고 있는 봉황각.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이곳에서 4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무려 15명이 이곳 출신입니다.
<인터뷰> 오은숙(서울시 수유동) : "저희 지역에 이런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서울 성북동,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면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나타납니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해방된 조국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만해 한용운 선생.
님은 갔지만 그의 뜻을 담은 자택 심우장은 산비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집은 일반 한옥과는 달리 북향으로 지어졌습니다.
남쪽 방향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기 싫다는 이유에섭니다.
민족대표 대부분이 고초를 겪은 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하 독방을 체험한 사람들은 독립투사들의 애국심과 3.1절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인터뷰> 문진영(시흥시 정왕동) : "이런 희생을 거쳐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KBS 뉴스 최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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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일 기자 gaeg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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