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39년 누명 벗고 나니 백발 노인

입력 2011.10.31 (09:06) 수정 2011.10.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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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강간.살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도 한 끝에 39년 만에 결백을 밝힌 사연, 알고 계시죠?

피해자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버렸는데요. 류란 기자! 국가의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기자 멘트>

그렇죠.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당했는지 직접 들어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10일 만에 범인을 잡아 내라는 억지스러운 지시에 부응하고자 경찰이 죄를 뒤집어씌운 당사자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거의 대부분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당사자인 정원섭 할아버지와 함께 당시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리포트>

백발의 일흔일곱 정원섭 할아버지가 부모님 묘를 찾았습니다.

39년 만에 살인 누명을 벗은 날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어머니, 아버지 저 원섭이 왔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 대법원에서 저, 죄 안 지었다고 하는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여기, 판결문 가지고 왔습니다."

이 날만을 위해 강간살인이라는 죄명으로 15년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도 24년을 더 국가에 맞서 싸웠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이걸(무죄판결) 못 보고 돌아가셨지. 기쁜 것뿐이야. 내가 할 일은 한 거 같아. 기뻐요."

1972년 9월, 춘천시 우두동.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파출소장의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사체로 발견됐던 것.

<녹취> "사건발생 직후 현장검증에서 난행한 (난잡한 행동) 흔적이 있어 강간살인으로 보고..."

어린 여자아이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용의자조차 나오지 않자, 당시 김현옥 내무부장관이 나서 10일 만에 범인을 잡아내라는 억지스러운 지시를 내립니다.

<녹취> "김 장관은‘10일 시한부검거령’을 내렸다. 이 기한 내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관계 수사관을 비롯한 치안관계자에 대한 강력한 인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검거 기한 31시간을 남기고 경찰이 발표한 용의자는 인근 만화가게 주인이었던 정원섭 할아버지.

죽은 여자 어린이의 바지에서 정 할아버지의 만화가게의 티켓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그 표가 우리가게 것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 가게에서 발행한 것이 아니라, 그 집거야, 그 집 것. (다른 만화가게) 그러니까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내가 발행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동네주민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이 이어졌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빗과 연필이 정 할아버지의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언도 나왔습니다.

재판 결과는 무기징역.

<인터뷰> 정원섭 : “이렇게 이렇게 했지?(아니요) 두드려 패니까, 자연히 그대로 조서가 작성될 거 아닙니까. 그 조서에 맞춰서 증인들을 갖다가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100%입니다. 100% 다 허위입니다."

남은 가족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옛 집터를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정원섭 : "피해자 엄마가 도끼를 들고 설쳤어. 도끼를 들고. 그 만화방 와서 때려 부수고. 살림집도.. 애들을 니가 우리 아이 죽였으니까 나도 너네 아이 죽이겠다..."

결국 부인과 네 자녀는 야반도주를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밤중에. 애기만 안고, 갓난쟁이 그것만 안고 집을 뛰쳐나온 거야. 그리고 위에 좀 큰애들 3살, 5살, 9살. 걔들 그냥 손잡고 그냥 엄마 따라서 뒤따라서 다리를 건너가지고..."

1987년, 15년을 복역한 뒤 모범수로 가석방된 정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그때 나이 쉰셋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이건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산거란 말이에요.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정 할아버지의 증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닭상태로 묶어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 사람이 목이 있잖아, 목을 생으로 잡아 빼는 거 같아. 더군다나 수건 덮어 씌우고, 물 하니까 이게 달라붙을 거 아니야, 수건이. 호흡을 못하니까. 뭐... 그 고통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변호인단과 함께 추적 끝에 찾아낸 당시 증인들 역시, 강압에 의한 허위진술이었음을 시인했습니다.

<인터뷰> 김00(당시 증인 /녹취) : "때리려하고 한 대 맞기도, 머리채를 잡았으니깐 때리고 발로 차고 또 때리려고 그러고, 거짓말 한다고 또 때리려고 막 그러고, 협박하고 막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한 거지."

특히 사건 발생 시각에 정 할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마을 친구 송 모 씨는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 알리바이를 자신이 뒤집었다며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아들은 전합니다.

<인터뷰> 송00 씨 아들 : "경찰서에서 형사들이 들이 닥쳐가지고, 어머니를 데려가고 막 그래서 일이 벌어진 거죠.저희 어머니도 평생 경찰들 보면 벌벌 떨고, 형사들 소리만 해도 벌벌 떨고 그렇게 무섭게 사시다가 올 1월 6일에 돌아가셨어요.자기가 끝까지 그런 얘길 못한 게, 자기가 끝까지 우기지 못한 게 죄스럽다는 그런 얘길 했죠. 어머니가."

1999년 고등법원은 한 차례 항고를 기각했지만, 지난 27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39년 만에 밝혀진 결백. 하지만 지난 세월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 김명규 씨 (정원섭 씨 조카) : "가족이 엄청 어려웠죠. 엄청 생활도 물론 어렵지만, 심적으로다 다른 사람이 다 손가락질 하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정말 아주 피눈물이 나죠."

정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인생을 자신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사건이 아주 깨끗하고, 진실한 사건이라면, 내가 좀 도와주고 싶어요. 돈이 없으면, 돈으로 도와주고, 법률문제는 우리 변호사님들이 있으니까 변호사님들한테 내가 떼를 써서라도, 좀 도와 드리고 싶어요.억울한 사람들 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당시 이 일을 꾸민 당사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범은 잡지도 못 하고 한 사람 인생만 망친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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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0-31 09:06:33
    • 수정2011-10-31 1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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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강간.살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도 한 끝에 39년 만에 결백을 밝힌 사연, 알고 계시죠? 피해자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버렸는데요. 류란 기자! 국가의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기자 멘트> 그렇죠.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당했는지 직접 들어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10일 만에 범인을 잡아 내라는 억지스러운 지시에 부응하고자 경찰이 죄를 뒤집어씌운 당사자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거의 대부분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당사자인 정원섭 할아버지와 함께 당시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리포트> 백발의 일흔일곱 정원섭 할아버지가 부모님 묘를 찾았습니다. 39년 만에 살인 누명을 벗은 날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어머니, 아버지 저 원섭이 왔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 대법원에서 저, 죄 안 지었다고 하는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여기, 판결문 가지고 왔습니다." 이 날만을 위해 강간살인이라는 죄명으로 15년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도 24년을 더 국가에 맞서 싸웠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이걸(무죄판결) 못 보고 돌아가셨지. 기쁜 것뿐이야. 내가 할 일은 한 거 같아. 기뻐요." 1972년 9월, 춘천시 우두동.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파출소장의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사체로 발견됐던 것. <녹취> "사건발생 직후 현장검증에서 난행한 (난잡한 행동) 흔적이 있어 강간살인으로 보고..." 어린 여자아이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용의자조차 나오지 않자, 당시 김현옥 내무부장관이 나서 10일 만에 범인을 잡아내라는 억지스러운 지시를 내립니다. <녹취> "김 장관은‘10일 시한부검거령’을 내렸다. 이 기한 내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관계 수사관을 비롯한 치안관계자에 대한 강력한 인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검거 기한 31시간을 남기고 경찰이 발표한 용의자는 인근 만화가게 주인이었던 정원섭 할아버지. 죽은 여자 어린이의 바지에서 정 할아버지의 만화가게의 티켓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그 표가 우리가게 것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 가게에서 발행한 것이 아니라, 그 집거야, 그 집 것. (다른 만화가게) 그러니까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내가 발행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동네주민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이 이어졌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빗과 연필이 정 할아버지의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언도 나왔습니다. 재판 결과는 무기징역. <인터뷰> 정원섭 : “이렇게 이렇게 했지?(아니요) 두드려 패니까, 자연히 그대로 조서가 작성될 거 아닙니까. 그 조서에 맞춰서 증인들을 갖다가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100%입니다. 100% 다 허위입니다." 남은 가족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옛 집터를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정원섭 : "피해자 엄마가 도끼를 들고 설쳤어. 도끼를 들고. 그 만화방 와서 때려 부수고. 살림집도.. 애들을 니가 우리 아이 죽였으니까 나도 너네 아이 죽이겠다..." 결국 부인과 네 자녀는 야반도주를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밤중에. 애기만 안고, 갓난쟁이 그것만 안고 집을 뛰쳐나온 거야. 그리고 위에 좀 큰애들 3살, 5살, 9살. 걔들 그냥 손잡고 그냥 엄마 따라서 뒤따라서 다리를 건너가지고..." 1987년, 15년을 복역한 뒤 모범수로 가석방된 정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그때 나이 쉰셋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이건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산거란 말이에요.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정 할아버지의 증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닭상태로 묶어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 사람이 목이 있잖아, 목을 생으로 잡아 빼는 거 같아. 더군다나 수건 덮어 씌우고, 물 하니까 이게 달라붙을 거 아니야, 수건이. 호흡을 못하니까. 뭐... 그 고통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변호인단과 함께 추적 끝에 찾아낸 당시 증인들 역시, 강압에 의한 허위진술이었음을 시인했습니다. <인터뷰> 김00(당시 증인 /녹취) : "때리려하고 한 대 맞기도, 머리채를 잡았으니깐 때리고 발로 차고 또 때리려고 그러고, 거짓말 한다고 또 때리려고 막 그러고, 협박하고 막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한 거지." 특히 사건 발생 시각에 정 할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마을 친구 송 모 씨는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 알리바이를 자신이 뒤집었다며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아들은 전합니다. <인터뷰> 송00 씨 아들 : "경찰서에서 형사들이 들이 닥쳐가지고, 어머니를 데려가고 막 그래서 일이 벌어진 거죠.저희 어머니도 평생 경찰들 보면 벌벌 떨고, 형사들 소리만 해도 벌벌 떨고 그렇게 무섭게 사시다가 올 1월 6일에 돌아가셨어요.자기가 끝까지 그런 얘길 못한 게, 자기가 끝까지 우기지 못한 게 죄스럽다는 그런 얘길 했죠. 어머니가." 1999년 고등법원은 한 차례 항고를 기각했지만, 지난 27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39년 만에 밝혀진 결백. 하지만 지난 세월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 김명규 씨 (정원섭 씨 조카) : "가족이 엄청 어려웠죠. 엄청 생활도 물론 어렵지만, 심적으로다 다른 사람이 다 손가락질 하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정말 아주 피눈물이 나죠." 정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인생을 자신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정원섭 : "사건이 아주 깨끗하고, 진실한 사건이라면, 내가 좀 도와주고 싶어요. 돈이 없으면, 돈으로 도와주고, 법률문제는 우리 변호사님들이 있으니까 변호사님들한테 내가 떼를 써서라도, 좀 도와 드리고 싶어요.억울한 사람들 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당시 이 일을 꾸민 당사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범은 잡지도 못 하고 한 사람 인생만 망친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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