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탐욕이 부른 인재…유착의 사슬 끊어라

입력 2014.04.29 (21:25) 수정 2014.04.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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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95년 6월, 강남 한복판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욕심.

건설사는 철근을 적게 쓰고, 백화점측은 매장을 넓히려고 설계를 변경해 기둥을 줄였고, 나중엔 수영장까지 증축했습니다.

1970년 4월.

서울 창천동에선 시민 아파트가 무너져내렸습니다.

기둥 하나에 70개 씩 들어가야 할 철근은 5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고, 콘크리트 배합도 엉망이었습니다.

지난 2월 경주에서 일어난 리조트 붕괴 사고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수기 손님을 받기 위해 공무원과 결탁해 사전승인절차를 생략했고 부실자재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비용을 줄이려는 회사 측과 뒷돈을 받고 이를 눈감아준 공무원들, 세월호 사고도 이런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인재였습니다.

최광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이윤 극대화를 위한 청해진 해운의 발버둥은 처절한 수준이었습니다.

새 선박을 건조하는 대신, 일본에서 18년을 운행했던 '중고 선박'을 구입해 수백억 원을 아꼈습니다.

원래 갑판이던 부분을 선실로 개조해 정원을 117명 더 늘렸고, 이를 통해 한번 운항에 3등실 기준으로 한 명당 7만원 씩, 총 810여 만원의 추가 수익이 가능했습니다.

<녹취> 청해진 해운 관계자 : "일본에서 가져올 때 얼마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증축을 해서 그렇게 만들었죠.."

승객 운송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화물 운송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대 화물적재량인 천 77톤의 세 배가 넘는 3천 6백여 톤의 화물을 실었습니다.

승선 차량들도 규정대로 충분한 간격을 두고 최대 10곳씩 결박하는 대신, 두 곳씩만 결박하는 방식으로 차량을 더 실을 수 있었습니다.

<녹취> 생존 화물기사 : "(공간이) 안 붙었다면, 다시 차를 앞으로 가라고 하고 후진해서 최대한 완전히 딱 붙였어요."

사고 당일, 가시거리가 5백미터도 안되는 짙은 안개로 다른 배들이 출항을 취소할 때, 유일하게 출항을 감행해 1억여 원의 운항 취소 운임을 아꼈고, 안전한 항로 대신 위험수역이긴 하지만 운항거리가 짧은 맹골수도를 택해 백만 원의 기름값도 절약했습니다.

<녹취> 김한식(청해진해운 대표) : "어린 학생들 또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돈만 쫓아가며 시작된 탐욕의 운항.

그 끝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기자 멘트>

탐욕은 곳곳에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이 건물, 한국선주협회의 해운빌딩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한국 선급, 해양산업총연합회 등 각종 관련 이권단체들이 나란히 입주해 있는데요.

한국선주협회 고문실이라고 적힌 이곳은 알고보니 해양수산부 장관의 서울 집무실입니다.

오래된 선박의 선령 완화, 무분별한 수직 증축, 과적, 안전 점검...

이번 사고의 문제점으로 드러난 중요한 고비마다 허가.감독권한을 가진 해수부나 해경 등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선주협회 고문실을 장관의 서울집무실로 빌려 쓰는 것이 이런 유착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해수부와 해경 일부 관료들은 허가와 감독 과정에서 업체에 특혜를 주고, 퇴직 뒤에는 회사나 해운조합의 취직자리를 보장받는 식으로, 유착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탐욕의 연결고리가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자신들의 이익과 맞바꾸도록 한 것입니다.

이같은 고리는 관료사회에 만연돼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착돼 온 관료사회의 이 고리들, 실태는 어떤지, 그리고 대안은 없는지, 이철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 정부 장관 후보자였다 낙마한 김 모 씨.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해당부처 관련 기업의 고문으로 취직했고 부인은 또 다른 관련업체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녹취> 김모씨(2013년 3월8일) : "장관 사퇴해야할 만큼 큰 잘못 저질렀는가 돌아봤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형사건 때마다 매번 이런 사례가 드러납니다.

원전 비리 사건에는 '원전 마피아', 저축은행 사건 때는 '모피아'와 '금피아'가 등장했습니다.

관과 민간을 잇는 연결고리에는 대개 협회나 조합 등 유관단체가 있습니다.

공무원에겐 재취업의 안전판입니다.

<녹취> 정부 부처 관계자 : "산하기관 하나 만들면 속된 말로 퇴직하고 갈 자리가 몇 개가 생기는..."

관과 민간 사이, 서로의 이익으로 결합된 유착관계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특히 관과 민간 사이에 유관단체 등의 중간지대를 만들어 규제와 감독을 피해가는 구조도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터뷰> 박정수(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정부가 작아요. 그러면 민간들이 정부가 작다고 느끼느냐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거든요. 정부는 정부답게 민간은 민간답게 중간 영역을 줄여 나가는..."

안전과 관련한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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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29 21:27:15
    • 수정2014-04-29 22: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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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95년 6월, 강남 한복판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욕심.

건설사는 철근을 적게 쓰고, 백화점측은 매장을 넓히려고 설계를 변경해 기둥을 줄였고, 나중엔 수영장까지 증축했습니다.

1970년 4월.

서울 창천동에선 시민 아파트가 무너져내렸습니다.

기둥 하나에 70개 씩 들어가야 할 철근은 5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고, 콘크리트 배합도 엉망이었습니다.

지난 2월 경주에서 일어난 리조트 붕괴 사고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수기 손님을 받기 위해 공무원과 결탁해 사전승인절차를 생략했고 부실자재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비용을 줄이려는 회사 측과 뒷돈을 받고 이를 눈감아준 공무원들, 세월호 사고도 이런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인재였습니다.

최광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이윤 극대화를 위한 청해진 해운의 발버둥은 처절한 수준이었습니다.

새 선박을 건조하는 대신, 일본에서 18년을 운행했던 '중고 선박'을 구입해 수백억 원을 아꼈습니다.

원래 갑판이던 부분을 선실로 개조해 정원을 117명 더 늘렸고, 이를 통해 한번 운항에 3등실 기준으로 한 명당 7만원 씩, 총 810여 만원의 추가 수익이 가능했습니다.

<녹취> 청해진 해운 관계자 : "일본에서 가져올 때 얼마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증축을 해서 그렇게 만들었죠.."

승객 운송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화물 운송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대 화물적재량인 천 77톤의 세 배가 넘는 3천 6백여 톤의 화물을 실었습니다.

승선 차량들도 규정대로 충분한 간격을 두고 최대 10곳씩 결박하는 대신, 두 곳씩만 결박하는 방식으로 차량을 더 실을 수 있었습니다.

<녹취> 생존 화물기사 : "(공간이) 안 붙었다면, 다시 차를 앞으로 가라고 하고 후진해서 최대한 완전히 딱 붙였어요."

사고 당일, 가시거리가 5백미터도 안되는 짙은 안개로 다른 배들이 출항을 취소할 때, 유일하게 출항을 감행해 1억여 원의 운항 취소 운임을 아꼈고, 안전한 항로 대신 위험수역이긴 하지만 운항거리가 짧은 맹골수도를 택해 백만 원의 기름값도 절약했습니다.

<녹취> 김한식(청해진해운 대표) : "어린 학생들 또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돈만 쫓아가며 시작된 탐욕의 운항.

그 끝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기자 멘트>

탐욕은 곳곳에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이 건물, 한국선주협회의 해운빌딩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한국 선급, 해양산업총연합회 등 각종 관련 이권단체들이 나란히 입주해 있는데요.

한국선주협회 고문실이라고 적힌 이곳은 알고보니 해양수산부 장관의 서울 집무실입니다.

오래된 선박의 선령 완화, 무분별한 수직 증축, 과적, 안전 점검...

이번 사고의 문제점으로 드러난 중요한 고비마다 허가.감독권한을 가진 해수부나 해경 등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선주협회 고문실을 장관의 서울집무실로 빌려 쓰는 것이 이런 유착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해수부와 해경 일부 관료들은 허가와 감독 과정에서 업체에 특혜를 주고, 퇴직 뒤에는 회사나 해운조합의 취직자리를 보장받는 식으로, 유착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탐욕의 연결고리가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자신들의 이익과 맞바꾸도록 한 것입니다.

이같은 고리는 관료사회에 만연돼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착돼 온 관료사회의 이 고리들, 실태는 어떤지, 그리고 대안은 없는지, 이철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 정부 장관 후보자였다 낙마한 김 모 씨.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해당부처 관련 기업의 고문으로 취직했고 부인은 또 다른 관련업체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녹취> 김모씨(2013년 3월8일) : "장관 사퇴해야할 만큼 큰 잘못 저질렀는가 돌아봤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형사건 때마다 매번 이런 사례가 드러납니다.

원전 비리 사건에는 '원전 마피아', 저축은행 사건 때는 '모피아'와 '금피아'가 등장했습니다.

관과 민간을 잇는 연결고리에는 대개 협회나 조합 등 유관단체가 있습니다.

공무원에겐 재취업의 안전판입니다.

<녹취> 정부 부처 관계자 : "산하기관 하나 만들면 속된 말로 퇴직하고 갈 자리가 몇 개가 생기는..."

관과 민간 사이, 서로의 이익으로 결합된 유착관계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특히 관과 민간 사이에 유관단체 등의 중간지대를 만들어 규제와 감독을 피해가는 구조도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터뷰> 박정수(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정부가 작아요. 그러면 민간들이 정부가 작다고 느끼느냐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거든요. 정부는 정부답게 민간은 민간답게 중간 영역을 줄여 나가는..."

안전과 관련한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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