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희생자 유해 발굴 ‘뒷짐’…유족들 분통

입력 2014.10.23 (21:36) 수정 2014.10.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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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돼 일반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됐었는데요.

정부와 지자체가 유해발굴에 나서야 하지만 뒷짐만 지고있어 결국 유족들이 나섰습니다.

옥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950년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형을 떠나보낸 이제간 씨.

64년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이제간(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족) : "(경찰이 와서) 조선시대처럼, 삼족 멸하는 것처럼 부모 가족을 죽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많게는 2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굴된 유해는 천6백여 구뿐.

기다림에 지친 고령의 유족들이 직접 발굴한 유해를 들고 지자체를 찾았습니다.

<녹취> "막으려면 살려내든지."

<녹취> "우리 아버지 데려와."

시간이 지날수록 유해가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지만 지난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발굴 작업이 아예 중단됐습니다.

매장지 보존도 문제입니다.

이곳은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매장돼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인삼밭으로 개간되면서 이제는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발굴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뷰> 노용석(前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팀장) : "(유해를) 시급하게 발굴돼야 할 측면들이 있고요, 지자체를 통해서라도 빠르게 발굴이 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매장 추정지는 전국 200여 곳에 이르지만 발굴이 이뤄진 곳은 13곳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옥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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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연맹 희생자 유해 발굴 ‘뒷짐’…유족들 분통
    • 입력 2014-10-23 21:37:28
    • 수정2014-10-23 21: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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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돼 일반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됐었는데요.

정부와 지자체가 유해발굴에 나서야 하지만 뒷짐만 지고있어 결국 유족들이 나섰습니다.

옥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950년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형을 떠나보낸 이제간 씨.

64년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이제간(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족) : "(경찰이 와서) 조선시대처럼, 삼족 멸하는 것처럼 부모 가족을 죽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많게는 2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굴된 유해는 천6백여 구뿐.

기다림에 지친 고령의 유족들이 직접 발굴한 유해를 들고 지자체를 찾았습니다.

<녹취> "막으려면 살려내든지."

<녹취> "우리 아버지 데려와."

시간이 지날수록 유해가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지만 지난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발굴 작업이 아예 중단됐습니다.

매장지 보존도 문제입니다.

이곳은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매장돼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인삼밭으로 개간되면서 이제는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발굴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뷰> 노용석(前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팀장) : "(유해를) 시급하게 발굴돼야 할 측면들이 있고요, 지자체를 통해서라도 빠르게 발굴이 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매장 추정지는 전국 200여 곳에 이르지만 발굴이 이뤄진 곳은 13곳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옥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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