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내 아버지가 피살됐다”…집중 분석 김한솔

입력 2017.03.18 (08:08) 수정 2017.03.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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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그 행방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인물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장남인 김한솔입니다.

자취를 감췄던 김한솔이 얼마 전 자신의 근황을 스스로 밝히고 나서면서 앞으로 그의 활동에까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김한솔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고 향후 어떤 역할이 가능할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김한솔 : “저는 1995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녹취> 김한솔 : “고립된 채 성장했죠.”

<녹취> 김한솔 :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항상 꿈꿉니다.”

유럽 발칸반도에 자리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 모스타르.

아랍 문화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도시다.

2011년 10월, 이 곳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 소년이 내외신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검은 뿔테 안경에 귀걸이를 하고, 취재진에게도 여유 있게 손을 흔드는 앳된 10대 소년.

김정일의 손자, 김한솔이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 : “무척 행복합니다. 모스타르가 좋아요. 사람들과 음식도 무척 좋고...”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의 아들이자 당시 3대 세습 정권을 갓 물려받았던 김정은의 조카 김한솔.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독재국가, 북한의 최고권력자 가족을 근접 취재하게 된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한국 언론과의 접촉은 극히 조심스러워했던 김한솔.

<녹취> KBS 취재 화면(2011년 10월) : “(어려운 질문이나 그런 건 아니고, 학업이 어떤지...?) ……. ”

이듬해 핀란드 방송사와의 긴 인터뷰는 다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1995년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카오로 가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은 그곳에서 살았어요.”

자신의 성장과정과 할아버지 김정일, 삼촌 김정은에 대한 생각, 나아가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까지 가감 없이 털어놨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사실 할아버지가 제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몰랐어요. 저는 항상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었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어요. 나중에서야 할아버지가 북한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마카오로 가기 전까지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았다고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그렇기에 북한엔 어린 시절 친구가 많지 않고, 친구들 대부분이 마카오 같은 외국에 있는 거죠.”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선 10대답지 않은 어른스러움도 드러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갖고 있죠.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둘로 갈라졌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남북한이 통일을 위해 평화를 구축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법으로는 서로 나라 밖에서조차도 교류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죠. 정말 슬픈 이야기입니다. ”

다음 해인 2013년, 파리 정치대학에 입학한 김한솔을 KBS 취재진이 찾아갔다.

<녹취> 김한솔(2013년 8월) : “방문 앞에 서 계시면 안돼요. (프랑스에 왜 왔습니까?)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녹취> 김한솔(2013년 8월) : “(여기서 뭘 공부하고 싶어요?) 말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와 줘서 고맙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

어느덧 청년이 된 그는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시종일관 말을 아꼈다.

이후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를 떠났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 김한솔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 했다.

<녹취> 김한솔(지난 8일) : “내 이름은 김한솔입니다. 북한 김 씨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랬던 김한솔이 4년 만에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일, 아버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지 20여 일 만이었다.

화학무기 VX를 사용한 잔혹한 범죄.

북한이 배후로 지목됐지만,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비협조로 일관한 탓에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시점이었다.

김한솔이 전면에 등장한 유튜브 동영상, 40초에 불과했지만, 메시지는 강렬했다.

<녹취> 김한솔(지난 8일) : “내 아버지는 며칠 전에 피살됐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여권을 들어 보이며, 나의 ‘아버지’가 ‘피살됐다’고 분명히 말했다.

<인터뷰>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결국은 따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나의 신분이 확실하고, 또 (숨진 김정남은) 나의 아버지가 분명하다는 것을 국제사회를 향해서 확인시키는... 피살이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 당국에 의해서 아버지가 살해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죠. ”

한동안 숨죽인 채 살아가던 김한솔을 삼촌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다시 세상 밖으로 소환한 셈이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일단 아버지가 자기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용서가 되지 않겠죠. 해서 또 김한솔이 자기 결심을 굳힌 것 같고요. 또 김정남 신원확인에 대한 문제도 있었고, 그다음에 북한이 김정남이 아니다, 김철이다, 자기들이 죽이지 않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아마 동영상에 등장했다고 봅니다. ”

김한솔의 등장과 함께 지난 행적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헤드폰을 끼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소년.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과 아버지와 주고받은 듯한 친밀한 댓글.

김한솔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 남긴 흔적들이다.

김한솔은 북한 독재자의 직계 가족이라 보기엔 놀라울 만큼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남도 그렇고 김한솔도 그렇고 어린 시절에 이미 서방 경험이 있어서 어떤 의미로 보면 자본주의 인간화 됐다고 볼 수 있겠죠. 다른 한편으로 보면 백두혈통의 곁가지로서, 북한에서 볼 때 이미 자기들은 이질 분자이자 아웃사이더화 됐기 때문에 북한의 어떤 통제를 받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출했다고 볼 수 있겠죠. ”

이른바 로열패밀리라 불리는 북한 김씨 일가 사람들.

하지만 권력을 물려받지 못하면 철저히 베일에 감춰진 삶을 강요받는다.

유럽 국가의 대사 직함으로 30년 넘게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권력과 담을 쌓은 채 은둔생활을 하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1년,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다 적발됐던 당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목을 끌었던 어린 남자아이.

김정남의 또 다른 아들 금솔도 이후 16년간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인터뷰> 김일국(전 北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그 가계에 대해서 묻고 알려고 하고 혹은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여론화시키고 이거를 철저히 단속, 통제하겠다고 당 방침으로 이제 제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매우 조심하고, ”

그러나 김정남과 김한솔만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스스럼없이 김정은을 ‘독재자’라 불렀고, 비판적인 의견도 숨기지 않았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삼촌(김정은)을 만나본 적도 없고,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선 그분과 할아버지 사이의 일이고, 저는 두 분(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난 적도 없으니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조국 북한, 특히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어머니는 항상 평범한 주민들과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주민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한다고요. 아버지도 항상 배고픈 많은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현재의 자신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 국민들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것을 항상 꿈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가 김정은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비록 후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김씨 일가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장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남의 존재가 부각이 되고 해외 언론에서 다루면 김 씨 가문에 대한, 특히 반쪽짜리 백두혈통인 김정은의 가정적인 환경도 자꾸 부각되고 여론화 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사실 김정은에게 콤플렉스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고요. 또 앞으로 잠재적인 위협입니다. ”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한솔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아버지가 피살이 됐고, 그 다음에 해외에 망명되어있는 상황이고, 본인도 이제 외국에서 선진국들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지금까지 언론 활동을 통해서 그런 의사 표시를 많이 했기 때문에 김한솔을 중심으로 한 반북, 반 김정은 활동, 이런 것들은 많이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김한솔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인터뷰> 김일국(전 北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한솔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의 어떤 모임에 대한 초점은 저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도 독재자의 가문이고, 그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 혹은 그 주위의 어떤 세력을 규합시킨다 하는 것은 새로운 독재 세력을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거와 같은 인식밖에 줄 수가 없습니다. ”

하지만 호불호를 떠나 김정은이 핵도발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북한 정권의 교체 필요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김한솔에 대한 관심과 추측은 계속되고 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어딘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고, 인도주의적인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고 싶어요. 또,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기여하고 싶고요. 특히 조국으로 돌아가서, 이건 제게 중요한 부분인데, 남북한이 분단돼 있으니 우리가 차근차근 노력해 나아간다면 통일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5년 전, 17살 김한솔은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꿈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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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내 아버지가 피살됐다”…집중 분석 김한솔
    • 입력 2017-03-18 08:22:21
    • 수정2017-03-18 08: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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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그 행방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인물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장남인 김한솔입니다.

자취를 감췄던 김한솔이 얼마 전 자신의 근황을 스스로 밝히고 나서면서 앞으로 그의 활동에까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김한솔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고 향후 어떤 역할이 가능할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김한솔 : “저는 1995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녹취> 김한솔 : “고립된 채 성장했죠.”

<녹취> 김한솔 :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항상 꿈꿉니다.”

유럽 발칸반도에 자리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 모스타르.

아랍 문화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도시다.

2011년 10월, 이 곳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 소년이 내외신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검은 뿔테 안경에 귀걸이를 하고, 취재진에게도 여유 있게 손을 흔드는 앳된 10대 소년.

김정일의 손자, 김한솔이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 : “무척 행복합니다. 모스타르가 좋아요. 사람들과 음식도 무척 좋고...”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의 아들이자 당시 3대 세습 정권을 갓 물려받았던 김정은의 조카 김한솔.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독재국가, 북한의 최고권력자 가족을 근접 취재하게 된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한국 언론과의 접촉은 극히 조심스러워했던 김한솔.

<녹취> KBS 취재 화면(2011년 10월) : “(어려운 질문이나 그런 건 아니고, 학업이 어떤지...?) ……. ”

이듬해 핀란드 방송사와의 긴 인터뷰는 다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1995년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카오로 가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은 그곳에서 살았어요.”

자신의 성장과정과 할아버지 김정일, 삼촌 김정은에 대한 생각, 나아가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까지 가감 없이 털어놨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사실 할아버지가 제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몰랐어요. 저는 항상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었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어요. 나중에서야 할아버지가 북한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마카오로 가기 전까지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았다고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그렇기에 북한엔 어린 시절 친구가 많지 않고, 친구들 대부분이 마카오 같은 외국에 있는 거죠.”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선 10대답지 않은 어른스러움도 드러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갖고 있죠.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둘로 갈라졌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남북한이 통일을 위해 평화를 구축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법으로는 서로 나라 밖에서조차도 교류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죠. 정말 슬픈 이야기입니다. ”

다음 해인 2013년, 파리 정치대학에 입학한 김한솔을 KBS 취재진이 찾아갔다.

<녹취> 김한솔(2013년 8월) : “방문 앞에 서 계시면 안돼요. (프랑스에 왜 왔습니까?)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녹취> 김한솔(2013년 8월) : “(여기서 뭘 공부하고 싶어요?) 말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와 줘서 고맙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

어느덧 청년이 된 그는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시종일관 말을 아꼈다.

이후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를 떠났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 김한솔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 했다.

<녹취> 김한솔(지난 8일) : “내 이름은 김한솔입니다. 북한 김 씨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랬던 김한솔이 4년 만에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일, 아버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지 20여 일 만이었다.

화학무기 VX를 사용한 잔혹한 범죄.

북한이 배후로 지목됐지만,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비협조로 일관한 탓에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시점이었다.

김한솔이 전면에 등장한 유튜브 동영상, 40초에 불과했지만, 메시지는 강렬했다.

<녹취> 김한솔(지난 8일) : “내 아버지는 며칠 전에 피살됐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여권을 들어 보이며, 나의 ‘아버지’가 ‘피살됐다’고 분명히 말했다.

<인터뷰>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결국은 따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나의 신분이 확실하고, 또 (숨진 김정남은) 나의 아버지가 분명하다는 것을 국제사회를 향해서 확인시키는... 피살이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 당국에 의해서 아버지가 살해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죠. ”

한동안 숨죽인 채 살아가던 김한솔을 삼촌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다시 세상 밖으로 소환한 셈이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일단 아버지가 자기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용서가 되지 않겠죠. 해서 또 김한솔이 자기 결심을 굳힌 것 같고요. 또 김정남 신원확인에 대한 문제도 있었고, 그다음에 북한이 김정남이 아니다, 김철이다, 자기들이 죽이지 않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아마 동영상에 등장했다고 봅니다. ”

김한솔의 등장과 함께 지난 행적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헤드폰을 끼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소년.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과 아버지와 주고받은 듯한 친밀한 댓글.

김한솔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 남긴 흔적들이다.

김한솔은 북한 독재자의 직계 가족이라 보기엔 놀라울 만큼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남도 그렇고 김한솔도 그렇고 어린 시절에 이미 서방 경험이 있어서 어떤 의미로 보면 자본주의 인간화 됐다고 볼 수 있겠죠. 다른 한편으로 보면 백두혈통의 곁가지로서, 북한에서 볼 때 이미 자기들은 이질 분자이자 아웃사이더화 됐기 때문에 북한의 어떤 통제를 받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출했다고 볼 수 있겠죠. ”

이른바 로열패밀리라 불리는 북한 김씨 일가 사람들.

하지만 권력을 물려받지 못하면 철저히 베일에 감춰진 삶을 강요받는다.

유럽 국가의 대사 직함으로 30년 넘게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권력과 담을 쌓은 채 은둔생활을 하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1년,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다 적발됐던 당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목을 끌었던 어린 남자아이.

김정남의 또 다른 아들 금솔도 이후 16년간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인터뷰> 김일국(전 北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그 가계에 대해서 묻고 알려고 하고 혹은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여론화시키고 이거를 철저히 단속, 통제하겠다고 당 방침으로 이제 제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매우 조심하고, ”

그러나 김정남과 김한솔만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스스럼없이 김정은을 ‘독재자’라 불렀고, 비판적인 의견도 숨기지 않았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저는 삼촌(김정은)을 만나본 적도 없고,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선 그분과 할아버지 사이의 일이고, 저는 두 분(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난 적도 없으니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조국 북한, 특히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어머니는 항상 평범한 주민들과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주민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한다고요. 아버지도 항상 배고픈 많은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현재의 자신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 국민들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것을 항상 꿈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가 김정은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비록 후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김씨 일가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장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남의 존재가 부각이 되고 해외 언론에서 다루면 김 씨 가문에 대한, 특히 반쪽짜리 백두혈통인 김정은의 가정적인 환경도 자꾸 부각되고 여론화 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사실 김정은에게 콤플렉스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고요. 또 앞으로 잠재적인 위협입니다. ”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한솔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아버지가 피살이 됐고, 그 다음에 해외에 망명되어있는 상황이고, 본인도 이제 외국에서 선진국들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지금까지 언론 활동을 통해서 그런 의사 표시를 많이 했기 때문에 김한솔을 중심으로 한 반북, 반 김정은 활동, 이런 것들은 많이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김한솔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인터뷰> 김일국(전 北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한솔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의 어떤 모임에 대한 초점은 저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도 독재자의 가문이고, 그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 혹은 그 주위의 어떤 세력을 규합시킨다 하는 것은 새로운 독재 세력을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거와 같은 인식밖에 줄 수가 없습니다. ”

하지만 호불호를 떠나 김정은이 핵도발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북한 정권의 교체 필요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김한솔에 대한 관심과 추측은 계속되고 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10월) : “어딘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고, 인도주의적인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고 싶어요. 또,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기여하고 싶고요. 특히 조국으로 돌아가서, 이건 제게 중요한 부분인데, 남북한이 분단돼 있으니 우리가 차근차근 노력해 나아간다면 통일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5년 전, 17살 김한솔은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꿈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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