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과 30년…인생 2막도 그들과 함께
입력 2017.03.18 (08:21)
수정 2017.03.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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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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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3-18 08:25:37
- 수정2017-03-18 08: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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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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