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증언’이 일본 사회에 남긴 것
입력 2021.08.13 (21:47)
수정 2021.08.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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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증언 집회는,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집회를 준비했던 이들을 만나 김 할머니 증언이 일본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들어봤습니다.
정재우 기잡니다.
[리포트]
한 청중이 울음을 터뜨리자 옆자리 여성이 다독이며 자신도 눈물을 훔칩니다.
30년 전 일본 도쿄 YMCA 회견장.
정원 120명인 공간에 400명 넘게 들어찼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사람들이 흘러넘쳐서 열기가 대단했죠. 일본에 와서 증언한 게 TV 뉴스에서도 크게 다뤄졌고..."]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참석자들이) 충격을 받았고, 피해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일본 내 위안부 문제의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도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종군위안부 110'이라는 것을 1992년 1월에 개설해서 목격자의 목소리를 수집해..."]
한 일본인 기자는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김혜원/선생/정대협 창립멤버/당시 참석 : "그냥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막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기는 기자인데, 자기가 처음으로 일본인인 것이 부끄럽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공유하는 것이 남은 숙제입니다.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폭력과 전쟁은 사람에게 이렇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기억'을 잘 전달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KBS 뉴스 정재우입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증언 집회는,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집회를 준비했던 이들을 만나 김 할머니 증언이 일본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들어봤습니다.
정재우 기잡니다.
[리포트]
한 청중이 울음을 터뜨리자 옆자리 여성이 다독이며 자신도 눈물을 훔칩니다.
30년 전 일본 도쿄 YMCA 회견장.
정원 120명인 공간에 400명 넘게 들어찼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사람들이 흘러넘쳐서 열기가 대단했죠. 일본에 와서 증언한 게 TV 뉴스에서도 크게 다뤄졌고..."]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참석자들이) 충격을 받았고, 피해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일본 내 위안부 문제의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도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종군위안부 110'이라는 것을 1992년 1월에 개설해서 목격자의 목소리를 수집해..."]
한 일본인 기자는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김혜원/선생/정대협 창립멤버/당시 참석 : "그냥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막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기는 기자인데, 자기가 처음으로 일본인인 것이 부끄럽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공유하는 것이 남은 숙제입니다.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폭력과 전쟁은 사람에게 이렇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기억'을 잘 전달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KBS 뉴스 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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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8-13 21: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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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증언 집회는,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집회를 준비했던 이들을 만나 김 할머니 증언이 일본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들어봤습니다.
정재우 기잡니다.
[리포트]
한 청중이 울음을 터뜨리자 옆자리 여성이 다독이며 자신도 눈물을 훔칩니다.
30년 전 일본 도쿄 YMCA 회견장.
정원 120명인 공간에 400명 넘게 들어찼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사람들이 흘러넘쳐서 열기가 대단했죠. 일본에 와서 증언한 게 TV 뉴스에서도 크게 다뤄졌고..."]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참석자들이) 충격을 받았고, 피해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일본 내 위안부 문제의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도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종군위안부 110'이라는 것을 1992년 1월에 개설해서 목격자의 목소리를 수집해..."]
한 일본인 기자는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김혜원/선생/정대협 창립멤버/당시 참석 : "그냥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막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기는 기자인데, 자기가 처음으로 일본인인 것이 부끄럽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공유하는 것이 남은 숙제입니다.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폭력과 전쟁은 사람에게 이렇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기억'을 잘 전달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KBS 뉴스 정재우입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증언 집회는,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집회를 준비했던 이들을 만나 김 할머니 증언이 일본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들어봤습니다.
정재우 기잡니다.
[리포트]
한 청중이 울음을 터뜨리자 옆자리 여성이 다독이며 자신도 눈물을 훔칩니다.
30년 전 일본 도쿄 YMCA 회견장.
정원 120명인 공간에 400명 넘게 들어찼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사람들이 흘러넘쳐서 열기가 대단했죠. 일본에 와서 증언한 게 TV 뉴스에서도 크게 다뤄졌고..."]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참석자들이) 충격을 받았고, 피해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일본 내 위안부 문제의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도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김부자/도쿄외국어대 교수 : "'종군위안부 110'이라는 것을 1992년 1월에 개설해서 목격자의 목소리를 수집해..."]
한 일본인 기자는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김혜원/선생/정대협 창립멤버/당시 참석 : "그냥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막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기는 기자인데, 자기가 처음으로 일본인인 것이 부끄럽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공유하는 것이 남은 숙제입니다.
[양징자/'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 "폭력과 전쟁은 사람에게 이렇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기억'을 잘 전달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KBS 뉴스 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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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기자 jj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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