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불안’ 감도는 응급실…“10월 연휴 다가오는데”
입력 2024.09.29 (07:00)
수정 2024.09.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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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으로는 잔잔한데 아슬아슬합니다.”
기자가 만난 119 구급대원 A 씨는 추석 이후 구급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차분한 불안’이 감돌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면 응급실에 걸어 들어가는 환자는 병원에서 받아주고, 구급차 타고 온 환자는 안 받아준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반대로 돼야 할 것 같은데... 참 마음이 아파요. 어쨌든 그런 부분이 홍보 아닌 홍보가 돼서 그런지 요즘 출동 건수가 좀 완화된 부분도 있고요. 그렇다고 계속 발생하던 환자가 급격히 줄지는 않았을 텐데.” ―119 구급대원 A 씨 |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응급실 내원 환자는 13,691명으로 평시의 77%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경증 · 비응급으로 분류된 환자는 평시의 68% 인원만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치료가 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응급실 방문을 자제하면서, 응급실 내원 환자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래프 출처: 보건복지부 ‘응급의료 관련 통계’ (2024년 9월 27일)
구급대원 A 씨는 “가을엔 등산하시는 분들이 늘어 심정지 발생이 많아지고, 기온이 바뀌면서 뇌졸중 등 환자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며 앞으로의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10년 이상 구급 현장에서만 일한 그는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모른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현장 구급대원 “의료공백 후 ‘뺑뺑이’ 더 심해져”…중증 환자 이송마저 지연
A 씨는 기존에도 문제였던 ‘응급실 뺑뺑이’가 의료공백 이후 더 심해졌음을 체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더 힘들어진 부분은, 3차 병원에선 2차 가라 하고 2차 병원에선 3차 가라 하고. 똑같은 케이스의 환자를 얘기해도 그렇게 서로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얘기하시니까... 저희 측에서는 환자가 잘못될 수도 있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병원에서 판단해야 할 일이 구급대한테 자꾸 전가되는 부분이 좀 크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부분이 되게 힘이 들고요. 저희는 분명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중략) 병원에 환자를 데려가면, 거기서 사람을 말로 압박하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 근처는 병원이 없어요? 왜 안 된대요?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이런 식으로. 제 후임도 실제 거기에 주눅이 들어서 병원 인계를 못 하겠다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19 구급대원 A 씨 |
A 씨는 병원이 환자 수용을 거절하는 일이 반복되는 현상이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상태를 과소평가하게 하고, 구급대원들을 무감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급대가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 이송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방청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소방청 자료를 보면, 올해 3월에서 8월까지 구급대가 응급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 경우는 모두 13,940건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11,426건)보다 22% 증가한 수치입니다.
더 최근인 9월 1~2주 서울 지역 통계를 이해식 의원실(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을 통해 확인해보니, 119 구급대가 이송한 환자 10,188명 중 431명은 병원 이송까지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전체 이송 환자의 4.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비중이 1.7배 늘어난 것입니다.
현장 구급대원인 A 씨가 인터뷰에 나선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방청이 최근 일선 소방서에 공문을 내려보내 “최근 방송과 인터뷰 등에서 개인적 의견이 조직 전체의 공식적 입장으로 오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며 “개인적 언론 접촉이 필요한 경우 소방관서장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소방청은 또 “언론 대응과 관련해 부적정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경위 및 내용 등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관련 절차에 따라 적의조치할 예정”이라면서 징계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지난 12일 소방청이 일선 소방서가 속한 각 시·도에 보낸 공문
A 씨는 그럼에도 위태로운 응급 의료의 현실을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알리고 싶어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의사들이 돌아오더라도 구급대원들이 일일이 응급실에 전화를 하고 가야하는 등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응급실 뺑뺑이는 계속될 것”이라며 “응급의료체계의 첫 단추인 병원 전 단계에 대해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응급실 의사 “내 뒤에 동료가 없다…응급실은 아비규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소속 남궁인 교수는 이번 추석을 응급실에서 보냈습니다.
명절에 당직을 서는 건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 추석 근무는 특별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2017년 이래, 명절에 다른 의사 없이 혼자 근무를 선 적은 올 추석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남 교수가 일하는 이대목동병원에서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인턴·전공의 10여 명이 지난 2월 20일 응급실을 떠났습니다. 또 응급의학과 전문의 12명 중 4명이 사직하면서 지금은 전문의 8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응급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존엔 전공의를 포함해 3~4명이 함께 하던 응급실 당직이 의사 1명의 몫이 된 겁니다.
“정말 혼자서 이 환자를 다 봐도 되는 걸까? 아픈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 아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정지라든지 중환자는 언제든 발생하는데. 그럼 이런 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수용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결국은 제 일인데. 제가 욕심 내서 환자를 다 받다보면 진짜 이게… 내 뒤에는 동료가 없고, 나랑 같이 상의할 사람도 없고, 이걸 다 책임져야 하다니. 아비규환이다라는 생각이 들죠. (중략) 지금 이 모든 결정과 판독과 모든 걸 동시에 제가 혼자 해야 되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힘들뿐더러 안전하지도 않아요. 제대로 된 의료가 아닙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뒤로 희미하게 응급실 표지판이 보인다.
의료진의 번 아웃이 심해지자, 결국 이대목동병원은 이달부터 매주 수요일 야간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문을 닫고 있습니다. 병원 차원의 결정이었지만 의사인 남 교수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습니다.
“이 사태 이후에 저희가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어요. 그 환자분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데...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저 혼자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 골절이면 정형외과 진료가 안 되고, 얼굴을 꿰매야하면 성형외과 야간 당직이 없어졌기 때문에 치료를 못 하고요. 다음으로는 정말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필수의료 환자들. 가령 쌍둥이를 임신했고 기저질환이 있는데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다라고 하면 코로나19 격리실도 필요하고 특수 질환 대비도 돼야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과 산부인과 의사가 다 있어야 해요. 산모인 환자가 응급실을 못 찾았다, 심지어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았다 이런 것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데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런 거죠. 마지막으로 너무 경증이라 굳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경우. 가령 젊은 사람인데 약간 설사하고 배가 아프다거나,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거나 하는 2차 병원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환자분들도 저희가 못 받고 있어요. 이러다보면 이제 (찾아오는 환자의) 반 이상은 못 받아요. 그러면 이분들이 각자 또 병원에 문의해서 찾아가거나 119에 전화를 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건데, 이런 거 자체가 동선이 길어지다보니 ‘응급실 대란’이라고 이름 붙인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교수들이 지키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탱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더이상 응급 의료만이 문제가 아닐 거라고 남 교수는 말했습니다.
“당뇨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라면, 이분은 당뇨 환자만 보고 논문을 쓰고 연구해서 그 환자만 관리를 해야하는데 지금은 병동, 중환자실 당직을 서고 타과 환자까지 보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냥 일반 내과 의사가 된 거죠.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까지 다 하다 보니까... 이런 것들도 사회적으로 안 좋아요. 원래 이분들의 일이 있는 건데 지금 임시방편으로 인력을 메우고 있는 거니까요. (중략) 전공의들이 졸업해서 전문의가 돼서 또 많은 환자를 보는 거고, 이 체계대로 진행이 돼야 의료 체계가 붕괴가 안 되고 그나마 살아있는 거거든요. (중략) 제가 일하는 곳은 교육도 담당하는 곳이에요. 전문의를 계속 키워내야 하고, 실제로 제가 가르쳐서 내보낸 전문의들도 많이 있죠. 대학병원인 만큼 토론도 하고 발표도 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서로 같이 의견을 교환해보고 하면서 더 안전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근데 지금 전혀 그게 안 되니까 괴로운 거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 밤, 출근을 앞둔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취재진을 배웅하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
■ 환자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져…정부·의료계, 타협점 찾아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응급 환자와 보호자들은 정부와 의료계가 한발씩 양보해 신속히 의료공백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난달 말 남편이 급성 복막염으로 2차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5시간 동안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남편을 잃은 B 씨. 그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얘기처럼, 왜 우리 남편이 이런 상황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면서 “정부와 의사가 뭐 때문에 저렇게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편처럼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고령인 엄마가 사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지실까봐, 그럼 응급실을 또 찾지 못하게 될까봐 엄마한테 이 소식을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의료계 양쪽 다 타협점을 찾아서 빨리 이런 상황이 극복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또 의료공백 속 적기에 응급 치료를 받지 못 한 채 숨진 환자들에 대해 국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재난’ 상황에 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환자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 7일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80대 어머니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3차 병원 응급실을 직접 찾아갔지만 ‘중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곧바로 진료를 거절 당했다는 이 모 씨. 이 씨의 어머니는 119 구급대로 이송돼 다른 3차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패혈성 쇼크로 숨졌습니다. 이 씨는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분이 굉장히 급한 수술이었다고 했다. 의정 갈등이 안 일어났으면 우리 어머니는 당연히 처음 병원에서 응급 환자로 피 검사부터 해서 신속히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제대로 된 응급 처치를 받고도 돌아가셨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너무 억울하다”며 “의정 갈등을 누가 만들었나. 의사와 정부 양쪽에 다 문제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추석날 뇌병변 장애가 있는 큰딸이 머리를 다쳐 피가 나는 상황에서 6시간 가까이 치료를 못 받았다고 제보한 한 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걱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의료공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미 내년 추석 연휴가 며칠인지까지 세어봤다고 했습니다.
“내년이면 추석 연휴가 최장 10일이 되더라고요. 당장 10월에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까지 공휴일이 많고 하다 보니까 많이 불안합니다. 의사분들도 힘드시겠지만 정부하고 말씀을 잘 나누시길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뺑뺑이 많이 돈다는 말씀하시는데 그런 현실이 다가오는 게 너무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의료공백이 길어질수록 저희 아이들 같은 소외 계층과 중증 장애인은 의료 혜택을 받지 못 합니다. 아이가 다쳤을 때 여기저기서 거부를 하게 된다면 돌아다니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많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29일) 밤 10시 30분 KBS1에서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 <더 보다> ‘응급실은 지금’ 편에서, 응급실 밤샘 취재와 의료진, 구급대원 인터뷰 등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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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9-29 07: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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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으로는 잔잔한데 아슬아슬합니다.”
기자가 만난 119 구급대원 A 씨는 추석 이후 구급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차분한 불안’이 감돌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면 응급실에 걸어 들어가는 환자는 병원에서 받아주고, 구급차 타고 온 환자는 안 받아준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반대로 돼야 할 것 같은데... 참 마음이 아파요. 어쨌든 그런 부분이 홍보 아닌 홍보가 돼서 그런지 요즘 출동 건수가 좀 완화된 부분도 있고요. 그렇다고 계속 발생하던 환자가 급격히 줄지는 않았을 텐데.” ―119 구급대원 A 씨 |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응급실 내원 환자는 13,691명으로 평시의 77%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경증 · 비응급으로 분류된 환자는 평시의 68% 인원만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치료가 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응급실 방문을 자제하면서, 응급실 내원 환자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구급대원 A 씨는 “가을엔 등산하시는 분들이 늘어 심정지 발생이 많아지고, 기온이 바뀌면서 뇌졸중 등 환자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며 앞으로의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10년 이상 구급 현장에서만 일한 그는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모른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현장 구급대원 “의료공백 후 ‘뺑뺑이’ 더 심해져”…중증 환자 이송마저 지연
A 씨는 기존에도 문제였던 ‘응급실 뺑뺑이’가 의료공백 이후 더 심해졌음을 체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더 힘들어진 부분은, 3차 병원에선 2차 가라 하고 2차 병원에선 3차 가라 하고. 똑같은 케이스의 환자를 얘기해도 그렇게 서로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얘기하시니까... 저희 측에서는 환자가 잘못될 수도 있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병원에서 판단해야 할 일이 구급대한테 자꾸 전가되는 부분이 좀 크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부분이 되게 힘이 들고요. 저희는 분명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중략) 병원에 환자를 데려가면, 거기서 사람을 말로 압박하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 근처는 병원이 없어요? 왜 안 된대요?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이런 식으로. 제 후임도 실제 거기에 주눅이 들어서 병원 인계를 못 하겠다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19 구급대원 A 씨 |
A 씨는 병원이 환자 수용을 거절하는 일이 반복되는 현상이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상태를 과소평가하게 하고, 구급대원들을 무감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급대가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 이송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방청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소방청 자료를 보면, 올해 3월에서 8월까지 구급대가 응급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 경우는 모두 13,940건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11,426건)보다 22% 증가한 수치입니다.
더 최근인 9월 1~2주 서울 지역 통계를 이해식 의원실(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을 통해 확인해보니, 119 구급대가 이송한 환자 10,188명 중 431명은 병원 이송까지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전체 이송 환자의 4.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비중이 1.7배 늘어난 것입니다.
현장 구급대원인 A 씨가 인터뷰에 나선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방청이 최근 일선 소방서에 공문을 내려보내 “최근 방송과 인터뷰 등에서 개인적 의견이 조직 전체의 공식적 입장으로 오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며 “개인적 언론 접촉이 필요한 경우 소방관서장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소방청은 또 “언론 대응과 관련해 부적정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경위 및 내용 등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관련 절차에 따라 적의조치할 예정”이라면서 징계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A 씨는 그럼에도 위태로운 응급 의료의 현실을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알리고 싶어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의사들이 돌아오더라도 구급대원들이 일일이 응급실에 전화를 하고 가야하는 등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응급실 뺑뺑이는 계속될 것”이라며 “응급의료체계의 첫 단추인 병원 전 단계에 대해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응급실 의사 “내 뒤에 동료가 없다…응급실은 아비규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소속 남궁인 교수는 이번 추석을 응급실에서 보냈습니다.
명절에 당직을 서는 건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 추석 근무는 특별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2017년 이래, 명절에 다른 의사 없이 혼자 근무를 선 적은 올 추석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남 교수가 일하는 이대목동병원에서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인턴·전공의 10여 명이 지난 2월 20일 응급실을 떠났습니다. 또 응급의학과 전문의 12명 중 4명이 사직하면서 지금은 전문의 8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응급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존엔 전공의를 포함해 3~4명이 함께 하던 응급실 당직이 의사 1명의 몫이 된 겁니다.
“정말 혼자서 이 환자를 다 봐도 되는 걸까? 아픈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 아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정지라든지 중환자는 언제든 발생하는데. 그럼 이런 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수용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결국은 제 일인데. 제가 욕심 내서 환자를 다 받다보면 진짜 이게… 내 뒤에는 동료가 없고, 나랑 같이 상의할 사람도 없고, 이걸 다 책임져야 하다니. 아비규환이다라는 생각이 들죠. (중략) 지금 이 모든 결정과 판독과 모든 걸 동시에 제가 혼자 해야 되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힘들뿐더러 안전하지도 않아요. 제대로 된 의료가 아닙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의료진의 번 아웃이 심해지자, 결국 이대목동병원은 이달부터 매주 수요일 야간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문을 닫고 있습니다. 병원 차원의 결정이었지만 의사인 남 교수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습니다.
“이 사태 이후에 저희가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어요. 그 환자분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데...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저 혼자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 골절이면 정형외과 진료가 안 되고, 얼굴을 꿰매야하면 성형외과 야간 당직이 없어졌기 때문에 치료를 못 하고요. 다음으로는 정말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필수의료 환자들. 가령 쌍둥이를 임신했고 기저질환이 있는데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다라고 하면 코로나19 격리실도 필요하고 특수 질환 대비도 돼야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과 산부인과 의사가 다 있어야 해요. 산모인 환자가 응급실을 못 찾았다, 심지어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았다 이런 것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데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런 거죠. 마지막으로 너무 경증이라 굳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경우. 가령 젊은 사람인데 약간 설사하고 배가 아프다거나,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거나 하는 2차 병원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환자분들도 저희가 못 받고 있어요. 이러다보면 이제 (찾아오는 환자의) 반 이상은 못 받아요. 그러면 이분들이 각자 또 병원에 문의해서 찾아가거나 119에 전화를 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건데, 이런 거 자체가 동선이 길어지다보니 ‘응급실 대란’이라고 이름 붙인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교수들이 지키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탱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더이상 응급 의료만이 문제가 아닐 거라고 남 교수는 말했습니다.
“당뇨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라면, 이분은 당뇨 환자만 보고 논문을 쓰고 연구해서 그 환자만 관리를 해야하는데 지금은 병동, 중환자실 당직을 서고 타과 환자까지 보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냥 일반 내과 의사가 된 거죠.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까지 다 하다 보니까... 이런 것들도 사회적으로 안 좋아요. 원래 이분들의 일이 있는 건데 지금 임시방편으로 인력을 메우고 있는 거니까요. (중략) 전공의들이 졸업해서 전문의가 돼서 또 많은 환자를 보는 거고, 이 체계대로 진행이 돼야 의료 체계가 붕괴가 안 되고 그나마 살아있는 거거든요. (중략) 제가 일하는 곳은 교육도 담당하는 곳이에요. 전문의를 계속 키워내야 하고, 실제로 제가 가르쳐서 내보낸 전문의들도 많이 있죠. 대학병원인 만큼 토론도 하고 발표도 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서로 같이 의견을 교환해보고 하면서 더 안전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근데 지금 전혀 그게 안 되니까 괴로운 거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 환자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져…정부·의료계, 타협점 찾아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응급 환자와 보호자들은 정부와 의료계가 한발씩 양보해 신속히 의료공백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난달 말 남편이 급성 복막염으로 2차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5시간 동안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남편을 잃은 B 씨. 그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얘기처럼, 왜 우리 남편이 이런 상황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면서 “정부와 의사가 뭐 때문에 저렇게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편처럼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고령인 엄마가 사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지실까봐, 그럼 응급실을 또 찾지 못하게 될까봐 엄마한테 이 소식을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의료계 양쪽 다 타협점을 찾아서 빨리 이런 상황이 극복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또 의료공백 속 적기에 응급 치료를 받지 못 한 채 숨진 환자들에 대해 국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재난’ 상황에 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7일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80대 어머니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3차 병원 응급실을 직접 찾아갔지만 ‘중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곧바로 진료를 거절 당했다는 이 모 씨. 이 씨의 어머니는 119 구급대로 이송돼 다른 3차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패혈성 쇼크로 숨졌습니다. 이 씨는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분이 굉장히 급한 수술이었다고 했다. 의정 갈등이 안 일어났으면 우리 어머니는 당연히 처음 병원에서 응급 환자로 피 검사부터 해서 신속히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제대로 된 응급 처치를 받고도 돌아가셨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너무 억울하다”며 “의정 갈등을 누가 만들었나. 의사와 정부 양쪽에 다 문제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추석날 뇌병변 장애가 있는 큰딸이 머리를 다쳐 피가 나는 상황에서 6시간 가까이 치료를 못 받았다고 제보한 한 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걱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의료공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미 내년 추석 연휴가 며칠인지까지 세어봤다고 했습니다.
“내년이면 추석 연휴가 최장 10일이 되더라고요. 당장 10월에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까지 공휴일이 많고 하다 보니까 많이 불안합니다. 의사분들도 힘드시겠지만 정부하고 말씀을 잘 나누시길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뺑뺑이 많이 돈다는 말씀하시는데 그런 현실이 다가오는 게 너무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의료공백이 길어질수록 저희 아이들 같은 소외 계층과 중증 장애인은 의료 혜택을 받지 못 합니다. 아이가 다쳤을 때 여기저기서 거부를 하게 된다면 돌아다니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많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29일) 밤 10시 30분 KBS1에서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 <더 보다> ‘응급실은 지금’ 편에서, 응급실 밤샘 취재와 의료진, 구급대원 인터뷰 등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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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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