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서 만나 국밥 들고 거리로…촛불 광장의 순간들
입력 2024.12.15 (08:01)
수정 2024.12.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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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두 번째 탄핵안 표결이 진행된 어제(14일), 전주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촛불 광장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 거리 가득 메운 1만 명 "대통령을 탄핵하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1시간 앞두고 전북 전주에서도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비로 젖은 땅에 사람들은 철퍼덕 나앉았고, 촛불은 하나둘 피어올랐습니다. 경찰에 신고된 집회 구간은 700m, 거리는 금세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주최 측 계산으로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1만 5천 명에 달했습니다.
어제 오후, 전북 전주시 풍패지관 앞에서 열린 ‘전북도민대회’
700m 집회 구간이 참가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 사우나에서 뜻을 모으다…"온탕만한 국밥 끓이자"
매일 아침 목욕탕에서 만난다는 '남원 아줌마'들은 거리에서 국밥을 끓였습니다. 미역국과 시래기 된장국입니다. '전 여사'는 비상계엄 사태 뒤로는 사우나에서 땀을 빼도 개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에 목욕탕 멤버 '임 여사'에게 함께 집회에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멤버 모두가 온탕에 모였을 때, 임 여사는 제안을 하나 덧붙입니다. 기왕 갈 거면, 날도 추운데 참가자들에게 국밥 한 그릇씩 대접하자는 의견입니다. 만장일치 뜻이 모아졌고, 여사님들은 각자 집에서 300~500인분씩 국을 끓였습니다. 그렇게 2천 명에게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아침 목욕탕 모임 ‘남원 아줌마들’은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국밥을 준비했습니다.
‘남원 아줌마들’은 이날 국밥 2천 인분을 끓였습니다.
■ 잔칫집 전 부치듯 '호떡 나눔'
'선결제 나눔'도 잇따랐습니다. 집회장 근처 분식집엔 잔칫집 마냥 기름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진안 사람이라는데, 이름은 안 밝히고 대신 카드를 건네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호떡과 어묵을 내어주라고 했답니다. 가게에 자주 들르는 어느 손님도 선뜻 '선결제'했습니다. 모두 호떡 300개, 어묵 650개입니다.
분식집 주인 소미선 씨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호떡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소미선 씨는 화장실을 개방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가게 한편을 내어줬습니다.
■ "내 가수는 민주주의 세상에 살아야 해"
지난번 취재 때 알게 된 응원봉을 또 봤습니다. '초록 빛깔 육면체', 단번에 저 두 분은 엔시티즌(아이돌 NCT 팬덤)이겠구나 했습니다.
28살 육소진 씨는 비상계엄 전엔 자신의 응원봉에 가수 이름을 붙여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응원봉에 붙였다고, 이건 굉장한 의미라고 역설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문화가 없고, 가수도 팬들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응원봉을 챙겨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했습니다.
응원봉에 가수가 아닌 사람의 이름을 처음 달았다는 육소진 씨
엔시티 응원봉을 들고나온 강유진, 육소진 씨
■ 손뜨개질 팻말 "탄핵 크리스마스"
응원봉만큼이나 눈길을 끈 집회 도구가 하나 있습니다. 한땀 한땀 손뜨개질로 만든 손팻말입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도록 초록과 빨강으로 글을 새겼는데 "내란수괴 탄핵하고 연말에는 좀 쉽시다"라고 적혔습니다.
뜨개질 손팻말 주인은 27살 직장인 온누리 씨입니다. 본인이 바느질한 건 아니고 친구가 만들어 보내줬다고 합니다. 육 씨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거리에 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한겨울만 골라서 이러는지, 빨리 탄핵하고 따뜻한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육소진 씨가 손뜨개질로 제작한 손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합니다
오후 5시, 탄핵안 가결이 선포되자 59살 이혜숙 씨는 함께 집회에 나온 직장 동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성토로 가득했던 광장은 환희가 넘쳐흐릅니다.
이 씨는 울컥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라며 맘을 다잡고 말을 이었습니다.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할 때까지 거리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오후 5시, 탄핵안이 가결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 탄핵안이 가결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 "아이야,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야"
집회가 다 갈무리될 무렵, 박병섭 씨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내와 9살 아들, 6살 딸까지 온 가족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아들은 다 컸는데, 딸은 아직 너무 어려 조금 걱정됐다고 합니다. 시린 추위도 그렇지만, 인파가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되려 "사람 되게 많다"라며 인파 쪽으로 아빠 소매를 끌었다고 합니다.
어린 딸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답니다. 박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야"
박병섭 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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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나서 만나 국밥 들고 거리로…촛불 광장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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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15 08:01:07
- 수정2024-12-15 08:01:54
두 번째 탄핵안 표결이 진행된 어제(14일), 전주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촛불 광장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br />
■ 거리 가득 메운 1만 명 "대통령을 탄핵하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1시간 앞두고 전북 전주에서도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비로 젖은 땅에 사람들은 철퍼덕 나앉았고, 촛불은 하나둘 피어올랐습니다. 경찰에 신고된 집회 구간은 700m, 거리는 금세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주최 측 계산으로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1만 5천 명에 달했습니다.
■ 사우나에서 뜻을 모으다…"온탕만한 국밥 끓이자"
매일 아침 목욕탕에서 만난다는 '남원 아줌마'들은 거리에서 국밥을 끓였습니다. 미역국과 시래기 된장국입니다. '전 여사'는 비상계엄 사태 뒤로는 사우나에서 땀을 빼도 개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에 목욕탕 멤버 '임 여사'에게 함께 집회에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멤버 모두가 온탕에 모였을 때, 임 여사는 제안을 하나 덧붙입니다. 기왕 갈 거면, 날도 추운데 참가자들에게 국밥 한 그릇씩 대접하자는 의견입니다. 만장일치 뜻이 모아졌고, 여사님들은 각자 집에서 300~500인분씩 국을 끓였습니다. 그렇게 2천 명에게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 잔칫집 전 부치듯 '호떡 나눔'
'선결제 나눔'도 잇따랐습니다. 집회장 근처 분식집엔 잔칫집 마냥 기름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진안 사람이라는데, 이름은 안 밝히고 대신 카드를 건네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호떡과 어묵을 내어주라고 했답니다. 가게에 자주 들르는 어느 손님도 선뜻 '선결제'했습니다. 모두 호떡 300개, 어묵 650개입니다.
■ "내 가수는 민주주의 세상에 살아야 해"
지난번 취재 때 알게 된 응원봉을 또 봤습니다. '초록 빛깔 육면체', 단번에 저 두 분은 엔시티즌(아이돌 NCT 팬덤)이겠구나 했습니다.
28살 육소진 씨는 비상계엄 전엔 자신의 응원봉에 가수 이름을 붙여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응원봉에 붙였다고, 이건 굉장한 의미라고 역설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문화가 없고, 가수도 팬들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응원봉을 챙겨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했습니다.
■ 손뜨개질 팻말 "탄핵 크리스마스"
응원봉만큼이나 눈길을 끈 집회 도구가 하나 있습니다. 한땀 한땀 손뜨개질로 만든 손팻말입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도록 초록과 빨강으로 글을 새겼는데 "내란수괴 탄핵하고 연말에는 좀 쉽시다"라고 적혔습니다.
뜨개질 손팻말 주인은 27살 직장인 온누리 씨입니다. 본인이 바느질한 건 아니고 친구가 만들어 보내줬다고 합니다. 육 씨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거리에 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한겨울만 골라서 이러는지, 빨리 탄핵하고 따뜻한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합니다
오후 5시, 탄핵안 가결이 선포되자 59살 이혜숙 씨는 함께 집회에 나온 직장 동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성토로 가득했던 광장은 환희가 넘쳐흐릅니다.
이 씨는 울컥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라며 맘을 다잡고 말을 이었습니다.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할 때까지 거리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 "아이야,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야"
집회가 다 갈무리될 무렵, 박병섭 씨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내와 9살 아들, 6살 딸까지 온 가족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아들은 다 컸는데, 딸은 아직 너무 어려 조금 걱정됐다고 합니다. 시린 추위도 그렇지만, 인파가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되려 "사람 되게 많다"라며 인파 쪽으로 아빠 소매를 끌었다고 합니다.
어린 딸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답니다. 박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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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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