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실향민 외치는 ‘청춘부라보’
입력 2025.04.12 (08:51)
수정 2025.04.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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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북한 황해도가 보이는 섬, 교동도는 6.25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교동도에는 아직도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향민들을 위해 아픈 기억을 위로하고, 따뜻한 웃음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장예진 리포터가 교동도를 찾아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 강화군 교동도입니다.
시장 한편, 작은 가게 안으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어르신들.
["고향이 그리워도…언제나 외로워라."]
마음속 깊이 품어둔 옛 노래를 불러보는데요.
곧 특별한 수업이 시작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원주민들과 실향민들이 함께하는 노래 교실이에요."]
금세 교실 안이 구성진 노랫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제곡 '굳세어라 금순아' 현일 선생님의 1953년도 노래입니다."]
박자가 서툴고 음정은 불안해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습니다.
6살에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은 추억이 깃든 가사를 따라 부르며,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원경/강화군 교동면 : "울면 (북한군이) 총 쏠 수 있다고 그래서 울지도 못하고 교동면 인사리라는 동네로 피난 온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살았네. 여기서 그냥 자랐잖아요. 계속 자라고 여기서 결혼하고, 좋은 곳으로 생각해요. 편안히 살 수 있는 곳."]
손뼉을 치며 장단에 몸을 맡기는 어르신들 사이로 장광팔 선생이 흥을 돋웁니다.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할아버지가 원래 개성 분이거든요.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실향민 어르신들 위해서 해드릴 게 없을까 해서 제가 8년 전부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를 풍미한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아들로 아버지의 끼와 정을 이어받아 노래와 웃음을 전하고 있었는데요.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104살 되시거든요. 어르신들을 제가 아버님처럼 어머님처럼 생각하고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 보면 굉장히 즐겁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 건너 고향 땅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동도 실향민들은 함께 모여 고향 음식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면서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척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북녘 고향은 실향민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은 고향 시장을 떠올리며 이곳에 장터를 열었고, 그 정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자리한 ‘청춘 부라보’는 연백 실향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 가게 이름에서 그렇게 ‘청춘부라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입니다.
정갈하게 놓인 재료들 사이로, 17살에 교동도에 온 민옥순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한데요.
이북 음식을 마주할 때면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는 실향민들.
[채제옥/강화군 교동면 : "가족이 다 모여 앉아서 옹기종기 강아지떡 해 먹고 만두 빚어서 먹고 이러던 생각이 이제 90이 넘어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고향식 만두도 떠올려봅니다.
[유경호/강화군 교동면 : "고향에서는 꿩 있지 꿩. 꿩을 사냥해 꿩고기를 넣고 해 여기다가."]
청춘 부라보의 손윤경 대표는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민옥순/강화군 교동면 : "사장이 잘해. (어떻게 잘해요?) 엄마, 아버지 먹을 거 사주고 그냥 밥 사주고 그러잖아. 딸 같지."]
손 대표는 실향민의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르신들 살아계실 때 함께 하자 그래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이북식 떡은 대룡시장의 이색 먹거리가 되었는데요.
[박성백/관광객 : "(방금 드신 떡 어떤 떡인지 알고 계세요?) 모르겠어요. (이게 강아지떡이라는 건데, 어떠셨어요?) 맛 참 좋네요. 진짜 좋네요."]
강아지떡은 일제 강점기 찹쌀을 수탈해 간 일본군의 눈을 피해 먹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여기에 팥을 집어넣고, 인절미 아닌 척 변장했대요. 그리고 순사가 와서 ‘너희들 인절미 해 먹지’그러면 ‘아니요, 이거 인절미 아니고요. 이건 강아지 새끼들 먹일 떡이에요’ 라고 한 거예요."]
쫄깃하고 담백한 식감이 입맛을 사로잡는데요.
["(콩가루가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죠?) 교동산 콩가루로 만든 이북식 강아지떡이에요. 팥도 천일염하고 조청만 들어가요."]
청춘 부라보는 실향민들을 위한 작은 기록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봉열/강화군 교동면 : "1956년도에 찍은 사진이야."]
강화도에서 전시관을 운영 중인 손 대표는 실향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곳을 마련하게 됐다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게 됐어요.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공간에서 함께 하셨던 그 영상들 잘 정리해서 어르신들 활동을 남기고 싶습니다."]
실향민들이 남기는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들이 보낸 시간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기는데요. 고향 땅을 한 번이라도 디딜 수 있기를, 이들만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새겨지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마을 사진관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곱게 단장한 얼굴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입니다.
오늘은 ‘장수 사진’을 남기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김한나/사회복지사 : "영정 사진이 아닌 장수 사진을 찍어서 우리 이 사진을 오늘 제일 예쁠 때 찍어 놓고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 이런 의미로 촬영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조심스레 자세를 잡아보는 어르신들.
["어머니 이제 살인미소만, 하나, 둘."]
긴 시간 함께했던 이웃이 하나둘 떠나갈 때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방형길/강화군 교동면 : "(실향민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어떠세요?) 마음이 내 형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고 슬프고 애통하지."]
노래 한곡, 장수 사진 한 장에는 실향민들의 꿈도 함께 담겨지는데요.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그분들의 소원인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는 걸 접해보지도 못하고 가시게 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그걸 함께 공유하면서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닿을 수 없어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대대손손 전해지길, 그래서 어떻게든 귀향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교동도는, 오늘도 꿈꾸고 있습니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북한 황해도가 보이는 섬, 교동도는 6.25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교동도에는 아직도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향민들을 위해 아픈 기억을 위로하고, 따뜻한 웃음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장예진 리포터가 교동도를 찾아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 강화군 교동도입니다.
시장 한편, 작은 가게 안으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어르신들.
["고향이 그리워도…언제나 외로워라."]
마음속 깊이 품어둔 옛 노래를 불러보는데요.
곧 특별한 수업이 시작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원주민들과 실향민들이 함께하는 노래 교실이에요."]
금세 교실 안이 구성진 노랫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제곡 '굳세어라 금순아' 현일 선생님의 1953년도 노래입니다."]
박자가 서툴고 음정은 불안해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습니다.
6살에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은 추억이 깃든 가사를 따라 부르며,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원경/강화군 교동면 : "울면 (북한군이) 총 쏠 수 있다고 그래서 울지도 못하고 교동면 인사리라는 동네로 피난 온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살았네. 여기서 그냥 자랐잖아요. 계속 자라고 여기서 결혼하고, 좋은 곳으로 생각해요. 편안히 살 수 있는 곳."]
손뼉을 치며 장단에 몸을 맡기는 어르신들 사이로 장광팔 선생이 흥을 돋웁니다.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할아버지가 원래 개성 분이거든요.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실향민 어르신들 위해서 해드릴 게 없을까 해서 제가 8년 전부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를 풍미한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아들로 아버지의 끼와 정을 이어받아 노래와 웃음을 전하고 있었는데요.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104살 되시거든요. 어르신들을 제가 아버님처럼 어머님처럼 생각하고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 보면 굉장히 즐겁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 건너 고향 땅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동도 실향민들은 함께 모여 고향 음식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면서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척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북녘 고향은 실향민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은 고향 시장을 떠올리며 이곳에 장터를 열었고, 그 정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자리한 ‘청춘 부라보’는 연백 실향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 가게 이름에서 그렇게 ‘청춘부라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입니다.
정갈하게 놓인 재료들 사이로, 17살에 교동도에 온 민옥순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한데요.
이북 음식을 마주할 때면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는 실향민들.
[채제옥/강화군 교동면 : "가족이 다 모여 앉아서 옹기종기 강아지떡 해 먹고 만두 빚어서 먹고 이러던 생각이 이제 90이 넘어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고향식 만두도 떠올려봅니다.
[유경호/강화군 교동면 : "고향에서는 꿩 있지 꿩. 꿩을 사냥해 꿩고기를 넣고 해 여기다가."]
청춘 부라보의 손윤경 대표는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민옥순/강화군 교동면 : "사장이 잘해. (어떻게 잘해요?) 엄마, 아버지 먹을 거 사주고 그냥 밥 사주고 그러잖아. 딸 같지."]
손 대표는 실향민의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르신들 살아계실 때 함께 하자 그래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이북식 떡은 대룡시장의 이색 먹거리가 되었는데요.
[박성백/관광객 : "(방금 드신 떡 어떤 떡인지 알고 계세요?) 모르겠어요. (이게 강아지떡이라는 건데, 어떠셨어요?) 맛 참 좋네요. 진짜 좋네요."]
강아지떡은 일제 강점기 찹쌀을 수탈해 간 일본군의 눈을 피해 먹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여기에 팥을 집어넣고, 인절미 아닌 척 변장했대요. 그리고 순사가 와서 ‘너희들 인절미 해 먹지’그러면 ‘아니요, 이거 인절미 아니고요. 이건 강아지 새끼들 먹일 떡이에요’ 라고 한 거예요."]
쫄깃하고 담백한 식감이 입맛을 사로잡는데요.
["(콩가루가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죠?) 교동산 콩가루로 만든 이북식 강아지떡이에요. 팥도 천일염하고 조청만 들어가요."]
청춘 부라보는 실향민들을 위한 작은 기록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봉열/강화군 교동면 : "1956년도에 찍은 사진이야."]
강화도에서 전시관을 운영 중인 손 대표는 실향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곳을 마련하게 됐다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게 됐어요.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공간에서 함께 하셨던 그 영상들 잘 정리해서 어르신들 활동을 남기고 싶습니다."]
실향민들이 남기는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들이 보낸 시간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기는데요. 고향 땅을 한 번이라도 디딜 수 있기를, 이들만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새겨지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마을 사진관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곱게 단장한 얼굴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입니다.
오늘은 ‘장수 사진’을 남기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김한나/사회복지사 : "영정 사진이 아닌 장수 사진을 찍어서 우리 이 사진을 오늘 제일 예쁠 때 찍어 놓고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 이런 의미로 촬영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조심스레 자세를 잡아보는 어르신들.
["어머니 이제 살인미소만, 하나, 둘."]
긴 시간 함께했던 이웃이 하나둘 떠나갈 때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방형길/강화군 교동면 : "(실향민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어떠세요?) 마음이 내 형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고 슬프고 애통하지."]
노래 한곡, 장수 사진 한 장에는 실향민들의 꿈도 함께 담겨지는데요.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그분들의 소원인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는 걸 접해보지도 못하고 가시게 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그걸 함께 공유하면서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닿을 수 없어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대대손손 전해지길, 그래서 어떻게든 귀향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교동도는, 오늘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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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북한 황해도가 보이는 섬, 교동도는 6.25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교동도에는 아직도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향민들을 위해 아픈 기억을 위로하고, 따뜻한 웃음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장예진 리포터가 교동도를 찾아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 강화군 교동도입니다.
시장 한편, 작은 가게 안으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어르신들.
["고향이 그리워도…언제나 외로워라."]
마음속 깊이 품어둔 옛 노래를 불러보는데요.
곧 특별한 수업이 시작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원주민들과 실향민들이 함께하는 노래 교실이에요."]
금세 교실 안이 구성진 노랫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제곡 '굳세어라 금순아' 현일 선생님의 1953년도 노래입니다."]
박자가 서툴고 음정은 불안해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습니다.
6살에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은 추억이 깃든 가사를 따라 부르며,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원경/강화군 교동면 : "울면 (북한군이) 총 쏠 수 있다고 그래서 울지도 못하고 교동면 인사리라는 동네로 피난 온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살았네. 여기서 그냥 자랐잖아요. 계속 자라고 여기서 결혼하고, 좋은 곳으로 생각해요. 편안히 살 수 있는 곳."]
손뼉을 치며 장단에 몸을 맡기는 어르신들 사이로 장광팔 선생이 흥을 돋웁니다.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할아버지가 원래 개성 분이거든요.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실향민 어르신들 위해서 해드릴 게 없을까 해서 제가 8년 전부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를 풍미한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아들로 아버지의 끼와 정을 이어받아 노래와 웃음을 전하고 있었는데요.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104살 되시거든요. 어르신들을 제가 아버님처럼 어머님처럼 생각하고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 보면 굉장히 즐겁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 건너 고향 땅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동도 실향민들은 함께 모여 고향 음식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면서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척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북녘 고향은 실향민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은 고향 시장을 떠올리며 이곳에 장터를 열었고, 그 정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자리한 ‘청춘 부라보’는 연백 실향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 가게 이름에서 그렇게 ‘청춘부라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입니다.
정갈하게 놓인 재료들 사이로, 17살에 교동도에 온 민옥순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한데요.
이북 음식을 마주할 때면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는 실향민들.
[채제옥/강화군 교동면 : "가족이 다 모여 앉아서 옹기종기 강아지떡 해 먹고 만두 빚어서 먹고 이러던 생각이 이제 90이 넘어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고향식 만두도 떠올려봅니다.
[유경호/강화군 교동면 : "고향에서는 꿩 있지 꿩. 꿩을 사냥해 꿩고기를 넣고 해 여기다가."]
청춘 부라보의 손윤경 대표는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민옥순/강화군 교동면 : "사장이 잘해. (어떻게 잘해요?) 엄마, 아버지 먹을 거 사주고 그냥 밥 사주고 그러잖아. 딸 같지."]
손 대표는 실향민의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르신들 살아계실 때 함께 하자 그래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이북식 떡은 대룡시장의 이색 먹거리가 되었는데요.
[박성백/관광객 : "(방금 드신 떡 어떤 떡인지 알고 계세요?) 모르겠어요. (이게 강아지떡이라는 건데, 어떠셨어요?) 맛 참 좋네요. 진짜 좋네요."]
강아지떡은 일제 강점기 찹쌀을 수탈해 간 일본군의 눈을 피해 먹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여기에 팥을 집어넣고, 인절미 아닌 척 변장했대요. 그리고 순사가 와서 ‘너희들 인절미 해 먹지’그러면 ‘아니요, 이거 인절미 아니고요. 이건 강아지 새끼들 먹일 떡이에요’ 라고 한 거예요."]
쫄깃하고 담백한 식감이 입맛을 사로잡는데요.
["(콩가루가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죠?) 교동산 콩가루로 만든 이북식 강아지떡이에요. 팥도 천일염하고 조청만 들어가요."]
청춘 부라보는 실향민들을 위한 작은 기록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봉열/강화군 교동면 : "1956년도에 찍은 사진이야."]
강화도에서 전시관을 운영 중인 손 대표는 실향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곳을 마련하게 됐다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게 됐어요.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공간에서 함께 하셨던 그 영상들 잘 정리해서 어르신들 활동을 남기고 싶습니다."]
실향민들이 남기는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들이 보낸 시간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기는데요. 고향 땅을 한 번이라도 디딜 수 있기를, 이들만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새겨지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마을 사진관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곱게 단장한 얼굴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입니다.
오늘은 ‘장수 사진’을 남기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김한나/사회복지사 : "영정 사진이 아닌 장수 사진을 찍어서 우리 이 사진을 오늘 제일 예쁠 때 찍어 놓고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 이런 의미로 촬영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조심스레 자세를 잡아보는 어르신들.
["어머니 이제 살인미소만, 하나, 둘."]
긴 시간 함께했던 이웃이 하나둘 떠나갈 때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방형길/강화군 교동면 : "(실향민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어떠세요?) 마음이 내 형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고 슬프고 애통하지."]
노래 한곡, 장수 사진 한 장에는 실향민들의 꿈도 함께 담겨지는데요.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그분들의 소원인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는 걸 접해보지도 못하고 가시게 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그걸 함께 공유하면서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닿을 수 없어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대대손손 전해지길, 그래서 어떻게든 귀향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교동도는, 오늘도 꿈꾸고 있습니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북한 황해도가 보이는 섬, 교동도는 6.25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교동도에는 아직도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향민들을 위해 아픈 기억을 위로하고, 따뜻한 웃음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장예진 리포터가 교동도를 찾아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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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인다는 곳, 강화군 교동도입니다.
시장 한편, 작은 가게 안으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어르신들.
["고향이 그리워도…언제나 외로워라."]
마음속 깊이 품어둔 옛 노래를 불러보는데요.
곧 특별한 수업이 시작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원주민들과 실향민들이 함께하는 노래 교실이에요."]
금세 교실 안이 구성진 노랫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제곡 '굳세어라 금순아' 현일 선생님의 1953년도 노래입니다."]
박자가 서툴고 음정은 불안해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습니다.
6살에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은 추억이 깃든 가사를 따라 부르며,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원경/강화군 교동면 : "울면 (북한군이) 총 쏠 수 있다고 그래서 울지도 못하고 교동면 인사리라는 동네로 피난 온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살았네. 여기서 그냥 자랐잖아요. 계속 자라고 여기서 결혼하고, 좋은 곳으로 생각해요. 편안히 살 수 있는 곳."]
손뼉을 치며 장단에 몸을 맡기는 어르신들 사이로 장광팔 선생이 흥을 돋웁니다.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할아버지가 원래 개성 분이거든요.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실향민 어르신들 위해서 해드릴 게 없을까 해서 제가 8년 전부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를 풍미한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아들로 아버지의 끼와 정을 이어받아 노래와 웃음을 전하고 있었는데요.
[장광팔/가수·노래 강사 :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104살 되시거든요. 어르신들을 제가 아버님처럼 어머님처럼 생각하고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 보면 굉장히 즐겁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 건너 고향 땅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동도 실향민들은 함께 모여 고향 음식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면서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척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북녘 고향은 실향민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은 고향 시장을 떠올리며 이곳에 장터를 열었고, 그 정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자리한 ‘청춘 부라보’는 연백 실향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 가게 이름에서 그렇게 ‘청춘부라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입니다.
정갈하게 놓인 재료들 사이로, 17살에 교동도에 온 민옥순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한데요.
이북 음식을 마주할 때면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는 실향민들.
[채제옥/강화군 교동면 : "가족이 다 모여 앉아서 옹기종기 강아지떡 해 먹고 만두 빚어서 먹고 이러던 생각이 이제 90이 넘어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고향식 만두도 떠올려봅니다.
[유경호/강화군 교동면 : "고향에서는 꿩 있지 꿩. 꿩을 사냥해 꿩고기를 넣고 해 여기다가."]
청춘 부라보의 손윤경 대표는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민옥순/강화군 교동면 : "사장이 잘해. (어떻게 잘해요?) 엄마, 아버지 먹을 거 사주고 그냥 밥 사주고 그러잖아. 딸 같지."]
손 대표는 실향민의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르신들 살아계실 때 함께 하자 그래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이북식 떡은 대룡시장의 이색 먹거리가 되었는데요.
[박성백/관광객 : "(방금 드신 떡 어떤 떡인지 알고 계세요?) 모르겠어요. (이게 강아지떡이라는 건데, 어떠셨어요?) 맛 참 좋네요. 진짜 좋네요."]
강아지떡은 일제 강점기 찹쌀을 수탈해 간 일본군의 눈을 피해 먹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여기에 팥을 집어넣고, 인절미 아닌 척 변장했대요. 그리고 순사가 와서 ‘너희들 인절미 해 먹지’그러면 ‘아니요, 이거 인절미 아니고요. 이건 강아지 새끼들 먹일 떡이에요’ 라고 한 거예요."]
쫄깃하고 담백한 식감이 입맛을 사로잡는데요.
["(콩가루가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죠?) 교동산 콩가루로 만든 이북식 강아지떡이에요. 팥도 천일염하고 조청만 들어가요."]
청춘 부라보는 실향민들을 위한 작은 기록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최봉열/강화군 교동면 : "1956년도에 찍은 사진이야."]
강화도에서 전시관을 운영 중인 손 대표는 실향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곳을 마련하게 됐다고 합니다.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게 됐어요.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공간에서 함께 하셨던 그 영상들 잘 정리해서 어르신들 활동을 남기고 싶습니다."]
실향민들이 남기는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들이 보낸 시간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기는데요. 고향 땅을 한 번이라도 디딜 수 있기를, 이들만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새겨지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마을 사진관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곱게 단장한 얼굴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입니다.
오늘은 ‘장수 사진’을 남기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김한나/사회복지사 : "영정 사진이 아닌 장수 사진을 찍어서 우리 이 사진을 오늘 제일 예쁠 때 찍어 놓고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 이런 의미로 촬영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조심스레 자세를 잡아보는 어르신들.
["어머니 이제 살인미소만, 하나, 둘."]
긴 시간 함께했던 이웃이 하나둘 떠나갈 때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방형길/강화군 교동면 : "(실향민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어떠세요?) 마음이 내 형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고 슬프고 애통하지."]
노래 한곡, 장수 사진 한 장에는 실향민들의 꿈도 함께 담겨지는데요.
[손윤경/교동 청춘부라보 대표 : "그분들의 소원인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는 걸 접해보지도 못하고 가시게 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그걸 함께 공유하면서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닿을 수 없어도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대대손손 전해지길, 그래서 어떻게든 귀향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교동도는, 오늘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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