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사건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입력 2025.04.22 (16:47)
수정 2025.04.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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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시간 : 4월 22일(화) 16:00~17:00 KBS1
■ 진행 : 김용준 기자
■ 출연 : 이백만 /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https://youtu.be/PeEcZB04-X0
◎김용준: 무덤은 땅속에 두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길 것을 요청한다. 어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미리 써둔 유언장의 일부입니다. 청빈의 삶을 살다 간 교황의 이야기 200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모시고 말씀 나눠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백만: 네. 감사합니다.
◎김용준: 반갑습니다. 잠깐 소개한 것처럼 이제 교황께서는 특별한 장식 없이 로마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간소한 무덤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셨는데 통상 제가 알기로 교황은 사후에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대성당에 안치가 되지 않나 싶은데...
▼이백만: 대부분 그렇죠.
◎김용준: 교황께서 남기신 말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이백만: 참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신 분인데 예를 들어서 역대 교황이 사도궁의 화려한 관저에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그걸 버리고 교황청 사제들이 살고 있는 공동 숙소, 그러니까 기숙사죠. 산타 마리아하우스라는 기숙사에서 사제들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같이 거기서 주무시고 그 방이 15평밖에 안 되는 숙소에서 사면서 같이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그러니까 그런 연장선상으로 봐야죠.
◎김용준: 사후에서까지 나는 이런 청빈의 삶, 청빈의 삶을 계속 살겠다. 선종 전날 부활절 미사에도 깜짝 등장하셨는데 그때 가자지구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를 촉구하셨지 않습니까?
▼이백만: 그렇죠. 그러니까 교황의 라틴어 명칭이 폰티펙스입니다. 폰티펙스를 직격하면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갈등하는 두 지역, 두 국가 두 민족 간의 화해를 시켜서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요. 그게 평화의 사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김용준: 교황께서 이제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의 확대를 주도하기도 하셨고 역사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까요?
▼이백만: 그러니까 우리 앵커께서 잘 아시다시피 여러 종교 가운데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왜냐하면 2천 년이 넘는 종교인 데다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신교나 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여성 목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목사나 성공회의 신부들은 결혼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그게 허용이 안 돼요. 그래서 많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랄지, 여성단체에서 왜 가톨릭은 여성에게 사제를 허용하지 않느냐.
◎김용준: 배척하느냐.
▼이백만: 그리고 왜 사제들한테 독신을 요구하느냐. 그걸 좀 허용해 달라 해서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은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상당히 거기에 대해서 접근하는 입장을 취했고 그것과 또 별개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혁 교황이라 한 이유는 교황청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그래서 교황청의 인사를 혁신했습니다. 문제가 된 인사가들이 있었죠. 성 추문이랄지 재산 문제랄지 가차 없이 다 처단했습니다. 참 제가 옆에서 볼 때 좀 매정할 정도로 이렇게 인사 조치를 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그동안 소외받았던 여성이나 흑인 아니면 동남아, 이런 분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유흥식 추기경, 대전 교구장이 있죠. 그분이 교황청의 아주 중요 보직인 성직자부 장관에 보임된 것도 그런 차원이고 최근에 작년에 여성이죠. 유명한 수녀이신데 그분이 행정부 장관이 됐어요.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김용준: 그 정도로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이셨다.
▼이백만: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이제 바티칸 은행이 신문에 많이 났지 않습니까? 안 좋은 문제로 자금 세탁의 하나의 거취 아니냐, 사실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죠. 교황님이 취임하고 나서 바티칸 은행의 은행장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을 완전히 고쳤어요. 지금은 그런 거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개혁을 아주 과감하게 추진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 아까 그 옆에서 보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백만 대사께서도 직접 만나보셨죠.
▼이백만: 그렇죠.
◎김용준: 우리 교황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했다. 실제 옆에서 보셨을 때 어떤 분이셨어요?
▼이백만: 그걸 제가 표현하기는 좀 참 부족합니다마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로마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영하로 안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영하로 내려갈 때가 있어요. 한 10도, 5도 내려가면 동사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바티칸 앞에 보면 노숙자가 많습니다. 홈리스들이. 죽어요.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그걸 보고 교황님께서 교황청의 바티칸에 있는 버스 대형 버스 있지 않습니까? 그걸 다 개조해서 그 노숙자들이 살게 한 거예요. 아주 그냥 큰 감동을 줬죠.
◎김용준: 법적인 예로 보면 정말 그 정도로 가난한 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교황께서 즉위 이후에 첫 아시아 순방국 기억하면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하셨어요. 각별한 우리와의 인연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에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시면서 이게 세월호 유족에게 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좀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이 말씀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백만: 그때 앵커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월호 문제가 발생해서 정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간의 의견이 다 달라서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그때 교황님께서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한국에 와서 시상식도 하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고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 앞에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고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냐. 그래서 이제 노란 리본을 차고 다니니까 패용하고 미사를 하니까 어떤 분이 그걸 패용하시면 정치적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단호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 어디 있냐. 유명한 말을 남겼죠. 최근에는 유흥식 추기경이 정의 앞에 중립 없다 이런 말도 하셨는데 그러니까 기계적 중립이라는 게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이제 교황님께서는 기계적 중립을 아주 배격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알겠습니다. 또 하나가 우리나라의 평화 문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교황께서 직접 북한 방북 계획도 원래는 있었다. 그런데 이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대사님께서 당시에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하셨어요.
▼이백만: 그렇습니다. 제가 대사로 취임해서 처음에 하게 되면 신임장 제정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교황님께 말씀드렸죠. 남북 관계가 어렵습니다. 북한을 방문하셔서 축복해 주시고 북한 동포들한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왜 가지 않겠느냐. 기회 되면 가겠다 하고 방북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습니다. 그때가 2018년 2월 16일 설날입니다. 그래서 남북문제도 어려웠고 북미 관계도 어려웠던 상태였는데 그때가 동계올림픽이 막 시작할 때였고. 교황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상당히 고무가 됐었고 그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월에 바티칸을 방문하셔서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님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하는 뜻을 전달하니까 교황님께서 그래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가겠다. 그게 소노 디스포니빌레입니다. 제가 그래서 이 책에다가 그걸 다 적었습니다. 저번 주에 출판을 했는데 교황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건강이 허락했더라면 언제든지 북한을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 정무적 차원과 선교적 차원, 사목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데 정무적으로는 아시다시피 교황님이 가시면 혼자 가는 게 아니고 전용기로 가는데 수행 기자가 다 갑니다. 바티칸의 교황청의 출입 기자가 140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KBS도 물론 가겠죠. 순안공항에 교황님의 전용기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될 겁니다. 전 세계만방에. 귀국할 때까지 그리고 거기에 수행원들이 가게 되고 기자들이 100여 명 가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곧 북한의 체제 개방을 유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북한으로서도 지금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데 외교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죠. 그리고 그건 정무적으로는 그렇고 또 사목적으로는 북한의 선교 개방입니다. 종교 시장을... 종교 시장이라 하면 좀 이상합니다마는 종교를 지금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으로 좀 개방해 달라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거의 수용할 입장이 됐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워낙 사이가 좋게 됐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었죠. 그런데 이제 하노이 노 딜로 2019년 2월 2차 북미 협상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무산됐습니다마는 그게 만약에 성공됐더라면 아마 한반도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교황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모들한테 했답니다. 평양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고. 서울과 워싱턴에 인공기가 휘날리는 세상을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했던 제가 2천... 이임할 때 교황님을 뵀습니다. 교황님 뵀을 때 그런 말씀하시죠. 그때 또 내가 물어봤죠. 교황님 가셔야죠? 북한? 가고 말고 기회가 되면 가야지 하면서 그때 하신 말씀이 남북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게 나의 꿈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김용준: 지금까지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수자와 약자 화해와 용서, 개혁과 청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이 같은 행보는 향후 중요한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4월 22일 화요일 사사건건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진행 : 김용준 기자
■ 출연 : 이백만 /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https://youtu.be/PeEcZB04-X0
◎김용준: 무덤은 땅속에 두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길 것을 요청한다. 어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미리 써둔 유언장의 일부입니다. 청빈의 삶을 살다 간 교황의 이야기 200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모시고 말씀 나눠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백만: 네. 감사합니다.
◎김용준: 반갑습니다. 잠깐 소개한 것처럼 이제 교황께서는 특별한 장식 없이 로마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간소한 무덤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셨는데 통상 제가 알기로 교황은 사후에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대성당에 안치가 되지 않나 싶은데...
▼이백만: 대부분 그렇죠.
◎김용준: 교황께서 남기신 말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이백만: 참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신 분인데 예를 들어서 역대 교황이 사도궁의 화려한 관저에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그걸 버리고 교황청 사제들이 살고 있는 공동 숙소, 그러니까 기숙사죠. 산타 마리아하우스라는 기숙사에서 사제들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같이 거기서 주무시고 그 방이 15평밖에 안 되는 숙소에서 사면서 같이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그러니까 그런 연장선상으로 봐야죠.
◎김용준: 사후에서까지 나는 이런 청빈의 삶, 청빈의 삶을 계속 살겠다. 선종 전날 부활절 미사에도 깜짝 등장하셨는데 그때 가자지구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를 촉구하셨지 않습니까?
▼이백만: 그렇죠. 그러니까 교황의 라틴어 명칭이 폰티펙스입니다. 폰티펙스를 직격하면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갈등하는 두 지역, 두 국가 두 민족 간의 화해를 시켜서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요. 그게 평화의 사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김용준: 교황께서 이제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의 확대를 주도하기도 하셨고 역사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까요?
▼이백만: 그러니까 우리 앵커께서 잘 아시다시피 여러 종교 가운데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왜냐하면 2천 년이 넘는 종교인 데다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신교나 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여성 목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목사나 성공회의 신부들은 결혼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그게 허용이 안 돼요. 그래서 많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랄지, 여성단체에서 왜 가톨릭은 여성에게 사제를 허용하지 않느냐.
◎김용준: 배척하느냐.
▼이백만: 그리고 왜 사제들한테 독신을 요구하느냐. 그걸 좀 허용해 달라 해서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은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상당히 거기에 대해서 접근하는 입장을 취했고 그것과 또 별개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혁 교황이라 한 이유는 교황청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그래서 교황청의 인사를 혁신했습니다. 문제가 된 인사가들이 있었죠. 성 추문이랄지 재산 문제랄지 가차 없이 다 처단했습니다. 참 제가 옆에서 볼 때 좀 매정할 정도로 이렇게 인사 조치를 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그동안 소외받았던 여성이나 흑인 아니면 동남아, 이런 분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유흥식 추기경, 대전 교구장이 있죠. 그분이 교황청의 아주 중요 보직인 성직자부 장관에 보임된 것도 그런 차원이고 최근에 작년에 여성이죠. 유명한 수녀이신데 그분이 행정부 장관이 됐어요.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김용준: 그 정도로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이셨다.
▼이백만: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이제 바티칸 은행이 신문에 많이 났지 않습니까? 안 좋은 문제로 자금 세탁의 하나의 거취 아니냐, 사실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죠. 교황님이 취임하고 나서 바티칸 은행의 은행장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을 완전히 고쳤어요. 지금은 그런 거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개혁을 아주 과감하게 추진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 아까 그 옆에서 보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백만 대사께서도 직접 만나보셨죠.
▼이백만: 그렇죠.
◎김용준: 우리 교황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했다. 실제 옆에서 보셨을 때 어떤 분이셨어요?
▼이백만: 그걸 제가 표현하기는 좀 참 부족합니다마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로마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영하로 안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영하로 내려갈 때가 있어요. 한 10도, 5도 내려가면 동사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바티칸 앞에 보면 노숙자가 많습니다. 홈리스들이. 죽어요.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그걸 보고 교황님께서 교황청의 바티칸에 있는 버스 대형 버스 있지 않습니까? 그걸 다 개조해서 그 노숙자들이 살게 한 거예요. 아주 그냥 큰 감동을 줬죠.
◎김용준: 법적인 예로 보면 정말 그 정도로 가난한 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교황께서 즉위 이후에 첫 아시아 순방국 기억하면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하셨어요. 각별한 우리와의 인연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에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시면서 이게 세월호 유족에게 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좀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이 말씀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백만: 그때 앵커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월호 문제가 발생해서 정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간의 의견이 다 달라서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그때 교황님께서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한국에 와서 시상식도 하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고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 앞에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고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냐. 그래서 이제 노란 리본을 차고 다니니까 패용하고 미사를 하니까 어떤 분이 그걸 패용하시면 정치적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단호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 어디 있냐. 유명한 말을 남겼죠. 최근에는 유흥식 추기경이 정의 앞에 중립 없다 이런 말도 하셨는데 그러니까 기계적 중립이라는 게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이제 교황님께서는 기계적 중립을 아주 배격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알겠습니다. 또 하나가 우리나라의 평화 문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교황께서 직접 북한 방북 계획도 원래는 있었다. 그런데 이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대사님께서 당시에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하셨어요.
▼이백만: 그렇습니다. 제가 대사로 취임해서 처음에 하게 되면 신임장 제정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교황님께 말씀드렸죠. 남북 관계가 어렵습니다. 북한을 방문하셔서 축복해 주시고 북한 동포들한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왜 가지 않겠느냐. 기회 되면 가겠다 하고 방북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습니다. 그때가 2018년 2월 16일 설날입니다. 그래서 남북문제도 어려웠고 북미 관계도 어려웠던 상태였는데 그때가 동계올림픽이 막 시작할 때였고. 교황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상당히 고무가 됐었고 그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월에 바티칸을 방문하셔서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님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하는 뜻을 전달하니까 교황님께서 그래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가겠다. 그게 소노 디스포니빌레입니다. 제가 그래서 이 책에다가 그걸 다 적었습니다. 저번 주에 출판을 했는데 교황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건강이 허락했더라면 언제든지 북한을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 정무적 차원과 선교적 차원, 사목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데 정무적으로는 아시다시피 교황님이 가시면 혼자 가는 게 아니고 전용기로 가는데 수행 기자가 다 갑니다. 바티칸의 교황청의 출입 기자가 140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KBS도 물론 가겠죠. 순안공항에 교황님의 전용기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될 겁니다. 전 세계만방에. 귀국할 때까지 그리고 거기에 수행원들이 가게 되고 기자들이 100여 명 가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곧 북한의 체제 개방을 유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북한으로서도 지금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데 외교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죠. 그리고 그건 정무적으로는 그렇고 또 사목적으로는 북한의 선교 개방입니다. 종교 시장을... 종교 시장이라 하면 좀 이상합니다마는 종교를 지금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으로 좀 개방해 달라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거의 수용할 입장이 됐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워낙 사이가 좋게 됐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었죠. 그런데 이제 하노이 노 딜로 2019년 2월 2차 북미 협상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무산됐습니다마는 그게 만약에 성공됐더라면 아마 한반도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교황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모들한테 했답니다. 평양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고. 서울과 워싱턴에 인공기가 휘날리는 세상을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했던 제가 2천... 이임할 때 교황님을 뵀습니다. 교황님 뵀을 때 그런 말씀하시죠. 그때 또 내가 물어봤죠. 교황님 가셔야죠? 북한? 가고 말고 기회가 되면 가야지 하면서 그때 하신 말씀이 남북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게 나의 꿈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김용준: 지금까지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수자와 약자 화해와 용서, 개혁과 청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이 같은 행보는 향후 중요한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4월 22일 화요일 사사건건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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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사사건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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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22 16:47:18
- 수정2025-04-22 17:35:23

■ 방송 시간 : 4월 22일(화) 16:00~17:00 KBS1
■ 진행 : 김용준 기자
■ 출연 : 이백만 /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https://youtu.be/PeEcZB04-X0
◎김용준: 무덤은 땅속에 두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길 것을 요청한다. 어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미리 써둔 유언장의 일부입니다. 청빈의 삶을 살다 간 교황의 이야기 200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모시고 말씀 나눠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백만: 네. 감사합니다.
◎김용준: 반갑습니다. 잠깐 소개한 것처럼 이제 교황께서는 특별한 장식 없이 로마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간소한 무덤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셨는데 통상 제가 알기로 교황은 사후에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대성당에 안치가 되지 않나 싶은데...
▼이백만: 대부분 그렇죠.
◎김용준: 교황께서 남기신 말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이백만: 참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신 분인데 예를 들어서 역대 교황이 사도궁의 화려한 관저에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그걸 버리고 교황청 사제들이 살고 있는 공동 숙소, 그러니까 기숙사죠. 산타 마리아하우스라는 기숙사에서 사제들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같이 거기서 주무시고 그 방이 15평밖에 안 되는 숙소에서 사면서 같이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그러니까 그런 연장선상으로 봐야죠.
◎김용준: 사후에서까지 나는 이런 청빈의 삶, 청빈의 삶을 계속 살겠다. 선종 전날 부활절 미사에도 깜짝 등장하셨는데 그때 가자지구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를 촉구하셨지 않습니까?
▼이백만: 그렇죠. 그러니까 교황의 라틴어 명칭이 폰티펙스입니다. 폰티펙스를 직격하면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갈등하는 두 지역, 두 국가 두 민족 간의 화해를 시켜서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요. 그게 평화의 사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김용준: 교황께서 이제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의 확대를 주도하기도 하셨고 역사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까요?
▼이백만: 그러니까 우리 앵커께서 잘 아시다시피 여러 종교 가운데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왜냐하면 2천 년이 넘는 종교인 데다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신교나 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여성 목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목사나 성공회의 신부들은 결혼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그게 허용이 안 돼요. 그래서 많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랄지, 여성단체에서 왜 가톨릭은 여성에게 사제를 허용하지 않느냐.
◎김용준: 배척하느냐.
▼이백만: 그리고 왜 사제들한테 독신을 요구하느냐. 그걸 좀 허용해 달라 해서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은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상당히 거기에 대해서 접근하는 입장을 취했고 그것과 또 별개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혁 교황이라 한 이유는 교황청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그래서 교황청의 인사를 혁신했습니다. 문제가 된 인사가들이 있었죠. 성 추문이랄지 재산 문제랄지 가차 없이 다 처단했습니다. 참 제가 옆에서 볼 때 좀 매정할 정도로 이렇게 인사 조치를 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그동안 소외받았던 여성이나 흑인 아니면 동남아, 이런 분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유흥식 추기경, 대전 교구장이 있죠. 그분이 교황청의 아주 중요 보직인 성직자부 장관에 보임된 것도 그런 차원이고 최근에 작년에 여성이죠. 유명한 수녀이신데 그분이 행정부 장관이 됐어요.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김용준: 그 정도로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이셨다.
▼이백만: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이제 바티칸 은행이 신문에 많이 났지 않습니까? 안 좋은 문제로 자금 세탁의 하나의 거취 아니냐, 사실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죠. 교황님이 취임하고 나서 바티칸 은행의 은행장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을 완전히 고쳤어요. 지금은 그런 거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개혁을 아주 과감하게 추진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 아까 그 옆에서 보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백만 대사께서도 직접 만나보셨죠.
▼이백만: 그렇죠.
◎김용준: 우리 교황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했다. 실제 옆에서 보셨을 때 어떤 분이셨어요?
▼이백만: 그걸 제가 표현하기는 좀 참 부족합니다마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로마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영하로 안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영하로 내려갈 때가 있어요. 한 10도, 5도 내려가면 동사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바티칸 앞에 보면 노숙자가 많습니다. 홈리스들이. 죽어요.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그걸 보고 교황님께서 교황청의 바티칸에 있는 버스 대형 버스 있지 않습니까? 그걸 다 개조해서 그 노숙자들이 살게 한 거예요. 아주 그냥 큰 감동을 줬죠.
◎김용준: 법적인 예로 보면 정말 그 정도로 가난한 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교황께서 즉위 이후에 첫 아시아 순방국 기억하면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하셨어요. 각별한 우리와의 인연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에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시면서 이게 세월호 유족에게 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좀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이 말씀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백만: 그때 앵커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월호 문제가 발생해서 정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간의 의견이 다 달라서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그때 교황님께서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한국에 와서 시상식도 하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고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 앞에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고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냐. 그래서 이제 노란 리본을 차고 다니니까 패용하고 미사를 하니까 어떤 분이 그걸 패용하시면 정치적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단호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 어디 있냐. 유명한 말을 남겼죠. 최근에는 유흥식 추기경이 정의 앞에 중립 없다 이런 말도 하셨는데 그러니까 기계적 중립이라는 게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이제 교황님께서는 기계적 중립을 아주 배격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알겠습니다. 또 하나가 우리나라의 평화 문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교황께서 직접 북한 방북 계획도 원래는 있었다. 그런데 이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대사님께서 당시에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하셨어요.
▼이백만: 그렇습니다. 제가 대사로 취임해서 처음에 하게 되면 신임장 제정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교황님께 말씀드렸죠. 남북 관계가 어렵습니다. 북한을 방문하셔서 축복해 주시고 북한 동포들한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왜 가지 않겠느냐. 기회 되면 가겠다 하고 방북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습니다. 그때가 2018년 2월 16일 설날입니다. 그래서 남북문제도 어려웠고 북미 관계도 어려웠던 상태였는데 그때가 동계올림픽이 막 시작할 때였고. 교황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상당히 고무가 됐었고 그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월에 바티칸을 방문하셔서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님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하는 뜻을 전달하니까 교황님께서 그래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가겠다. 그게 소노 디스포니빌레입니다. 제가 그래서 이 책에다가 그걸 다 적었습니다. 저번 주에 출판을 했는데 교황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건강이 허락했더라면 언제든지 북한을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 정무적 차원과 선교적 차원, 사목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데 정무적으로는 아시다시피 교황님이 가시면 혼자 가는 게 아니고 전용기로 가는데 수행 기자가 다 갑니다. 바티칸의 교황청의 출입 기자가 140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KBS도 물론 가겠죠. 순안공항에 교황님의 전용기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될 겁니다. 전 세계만방에. 귀국할 때까지 그리고 거기에 수행원들이 가게 되고 기자들이 100여 명 가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곧 북한의 체제 개방을 유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북한으로서도 지금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데 외교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죠. 그리고 그건 정무적으로는 그렇고 또 사목적으로는 북한의 선교 개방입니다. 종교 시장을... 종교 시장이라 하면 좀 이상합니다마는 종교를 지금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으로 좀 개방해 달라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거의 수용할 입장이 됐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워낙 사이가 좋게 됐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었죠. 그런데 이제 하노이 노 딜로 2019년 2월 2차 북미 협상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무산됐습니다마는 그게 만약에 성공됐더라면 아마 한반도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교황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모들한테 했답니다. 평양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고. 서울과 워싱턴에 인공기가 휘날리는 세상을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했던 제가 2천... 이임할 때 교황님을 뵀습니다. 교황님 뵀을 때 그런 말씀하시죠. 그때 또 내가 물어봤죠. 교황님 가셔야죠? 북한? 가고 말고 기회가 되면 가야지 하면서 그때 하신 말씀이 남북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게 나의 꿈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김용준: 지금까지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수자와 약자 화해와 용서, 개혁과 청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이 같은 행보는 향후 중요한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4월 22일 화요일 사사건건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진행 : 김용준 기자
■ 출연 : 이백만 /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https://youtu.be/PeEcZB04-X0
◎김용준: 무덤은 땅속에 두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길 것을 요청한다. 어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미리 써둔 유언장의 일부입니다. 청빈의 삶을 살다 간 교황의 이야기 200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모시고 말씀 나눠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백만: 네. 감사합니다.
◎김용준: 반갑습니다. 잠깐 소개한 것처럼 이제 교황께서는 특별한 장식 없이 로마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간소한 무덤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셨는데 통상 제가 알기로 교황은 사후에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대성당에 안치가 되지 않나 싶은데...
▼이백만: 대부분 그렇죠.
◎김용준: 교황께서 남기신 말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이백만: 참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신 분인데 예를 들어서 역대 교황이 사도궁의 화려한 관저에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그걸 버리고 교황청 사제들이 살고 있는 공동 숙소, 그러니까 기숙사죠. 산타 마리아하우스라는 기숙사에서 사제들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같이 거기서 주무시고 그 방이 15평밖에 안 되는 숙소에서 사면서 같이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그러니까 그런 연장선상으로 봐야죠.
◎김용준: 사후에서까지 나는 이런 청빈의 삶, 청빈의 삶을 계속 살겠다. 선종 전날 부활절 미사에도 깜짝 등장하셨는데 그때 가자지구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를 촉구하셨지 않습니까?
▼이백만: 그렇죠. 그러니까 교황의 라틴어 명칭이 폰티펙스입니다. 폰티펙스를 직격하면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갈등하는 두 지역, 두 국가 두 민족 간의 화해를 시켜서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요. 그게 평화의 사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김용준: 교황께서 이제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의 확대를 주도하기도 하셨고 역사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까요?
▼이백만: 그러니까 우리 앵커께서 잘 아시다시피 여러 종교 가운데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왜냐하면 2천 년이 넘는 종교인 데다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신교나 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여성 목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목사나 성공회의 신부들은 결혼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그게 허용이 안 돼요. 그래서 많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랄지, 여성단체에서 왜 가톨릭은 여성에게 사제를 허용하지 않느냐.
◎김용준: 배척하느냐.
▼이백만: 그리고 왜 사제들한테 독신을 요구하느냐. 그걸 좀 허용해 달라 해서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은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상당히 거기에 대해서 접근하는 입장을 취했고 그것과 또 별개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혁 교황이라 한 이유는 교황청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그래서 교황청의 인사를 혁신했습니다. 문제가 된 인사가들이 있었죠. 성 추문이랄지 재산 문제랄지 가차 없이 다 처단했습니다. 참 제가 옆에서 볼 때 좀 매정할 정도로 이렇게 인사 조치를 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그동안 소외받았던 여성이나 흑인 아니면 동남아, 이런 분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유흥식 추기경, 대전 교구장이 있죠. 그분이 교황청의 아주 중요 보직인 성직자부 장관에 보임된 것도 그런 차원이고 최근에 작년에 여성이죠. 유명한 수녀이신데 그분이 행정부 장관이 됐어요.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김용준: 그 정도로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이셨다.
▼이백만: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이제 바티칸 은행이 신문에 많이 났지 않습니까? 안 좋은 문제로 자금 세탁의 하나의 거취 아니냐, 사실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죠. 교황님이 취임하고 나서 바티칸 은행의 은행장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을 완전히 고쳤어요. 지금은 그런 거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개혁을 아주 과감하게 추진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 아까 그 옆에서 보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백만 대사께서도 직접 만나보셨죠.
▼이백만: 그렇죠.
◎김용준: 우리 교황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했다. 실제 옆에서 보셨을 때 어떤 분이셨어요?
▼이백만: 그걸 제가 표현하기는 좀 참 부족합니다마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로마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영하로 안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영하로 내려갈 때가 있어요. 한 10도, 5도 내려가면 동사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바티칸 앞에 보면 노숙자가 많습니다. 홈리스들이. 죽어요.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그걸 보고 교황님께서 교황청의 바티칸에 있는 버스 대형 버스 있지 않습니까? 그걸 다 개조해서 그 노숙자들이 살게 한 거예요. 아주 그냥 큰 감동을 줬죠.
◎김용준: 법적인 예로 보면 정말 그 정도로 가난한 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교황께서 즉위 이후에 첫 아시아 순방국 기억하면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하셨어요. 각별한 우리와의 인연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에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시면서 이게 세월호 유족에게 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좀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이 말씀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백만: 그때 앵커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월호 문제가 발생해서 정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간의 의견이 다 달라서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그때 교황님께서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한국에 와서 시상식도 하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고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 앞에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고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냐. 그래서 이제 노란 리본을 차고 다니니까 패용하고 미사를 하니까 어떤 분이 그걸 패용하시면 정치적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단호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 어디 있냐. 유명한 말을 남겼죠. 최근에는 유흥식 추기경이 정의 앞에 중립 없다 이런 말도 하셨는데 그러니까 기계적 중립이라는 게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이제 교황님께서는 기계적 중립을 아주 배격하신 분입니다.
◎김용준: 알겠습니다. 또 하나가 우리나라의 평화 문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교황께서 직접 북한 방북 계획도 원래는 있었다. 그런데 이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대사님께서 당시에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하셨어요.
▼이백만: 그렇습니다. 제가 대사로 취임해서 처음에 하게 되면 신임장 제정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교황님께 말씀드렸죠. 남북 관계가 어렵습니다. 북한을 방문하셔서 축복해 주시고 북한 동포들한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왜 가지 않겠느냐. 기회 되면 가겠다 하고 방북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습니다. 그때가 2018년 2월 16일 설날입니다. 그래서 남북문제도 어려웠고 북미 관계도 어려웠던 상태였는데 그때가 동계올림픽이 막 시작할 때였고. 교황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상당히 고무가 됐었고 그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월에 바티칸을 방문하셔서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님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하는 뜻을 전달하니까 교황님께서 그래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가겠다. 그게 소노 디스포니빌레입니다. 제가 그래서 이 책에다가 그걸 다 적었습니다. 저번 주에 출판을 했는데 교황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건강이 허락했더라면 언제든지 북한을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 정무적 차원과 선교적 차원, 사목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데 정무적으로는 아시다시피 교황님이 가시면 혼자 가는 게 아니고 전용기로 가는데 수행 기자가 다 갑니다. 바티칸의 교황청의 출입 기자가 140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KBS도 물론 가겠죠. 순안공항에 교황님의 전용기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될 겁니다. 전 세계만방에. 귀국할 때까지 그리고 거기에 수행원들이 가게 되고 기자들이 100여 명 가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곧 북한의 체제 개방을 유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북한으로서도 지금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데 외교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죠. 그리고 그건 정무적으로는 그렇고 또 사목적으로는 북한의 선교 개방입니다. 종교 시장을... 종교 시장이라 하면 좀 이상합니다마는 종교를 지금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으로 좀 개방해 달라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거의 수용할 입장이 됐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워낙 사이가 좋게 됐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었죠. 그런데 이제 하노이 노 딜로 2019년 2월 2차 북미 협상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무산됐습니다마는 그게 만약에 성공됐더라면 아마 한반도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교황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모들한테 했답니다. 평양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고. 서울과 워싱턴에 인공기가 휘날리는 세상을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했던 제가 2천... 이임할 때 교황님을 뵀습니다. 교황님 뵀을 때 그런 말씀하시죠. 그때 또 내가 물어봤죠. 교황님 가셔야죠? 북한? 가고 말고 기회가 되면 가야지 하면서 그때 하신 말씀이 남북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게 나의 꿈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김용준: 지금까지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수자와 약자 화해와 용서, 개혁과 청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이 같은 행보는 향후 중요한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4월 22일 화요일 사사건건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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