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맨홀 아이들’ 겨울나기

입력 2006.01.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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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은 이렇게 춘절을 맞아서 들떠 있지만 이웃나라 몽골은 춥기만 합니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는 몽골의 노숙자들, 특히 거리로 내몰린 어린이, 청소년들은 이 모진 겨울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요? 이병도 순회 특파원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3구역의 도로 한 복판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피해 땅 속 맨홀로 잠을 자러 들어온 청소년들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지금 여기서 산 지 8년 됐어요."

대개는 고아이거나 가출 청소년들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어떻게 여기서 생활하게 됐어요?) 고아가 됐어요."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왜 집에서 나왔어요?)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이들이 사는 맨홀 속으로 직접 들어가봤습니다. 현재 바깥의 기온은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씹니다. 하지만 이 맨홀 안은 들어오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합니다. 이 맨홀 바닥으로 난방용 배관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난방배관의 따뜻한 기운을 빌려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8명이 모여 잠을 잡니다.

<녹취> 뭉근사르 (17살): "(몇 살이에요?) 17살이요.(남녀 함께 지내는데 불편하지 않아요?) 모두 친구니까 괜찮아요. 누가 뭐 얻어오면 같이 나눠 먹고..."

추위는 이렇게라도 피할 수 있지만 배고픔은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빵과 음료 등 먹을 것을 건네자 단숨에 먹어 치웁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요?) 식당에서 음식 쓰레기 버린 것 먹어요."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집니다.

<녹취> "함부로 들어오면 되냐? 나가라!"

어른 노숙자들이 자기네 구역이라며 이들을 쫓아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이렇게 어른들이 자주 와요?) 자주 와요. 어른들이 맨홀에 들어와서 때려요."

배고픔에 시달리고 맨홀에서 쫓겨나는 생활이 거듭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뇨. 집에 가면 나가라고 쫓아서 가고 싶지 않아요."

노숙자 가족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주택가 맨홀을 찾았습니다. 먹다남은 음식과 물, 두 조각의 빵이 이들 가족의 하루 양식입니다. 이 40대 여성 노숙자는 얼마 전 뜨거운 난방 배관 위에서 잠을 자다 화상을 입었습니다.

<녹취> "뜨거운 스팀에 화상 입었어요. 여기 보세요. 이렇게 화상 입었어요."

맨홀 노숙자들에게 이같은 경우는 다반사, 하지만 돈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따깁니다.

<녹취> "(아프지 않아요?) 아파요 열나고 밤에 잠도 못자요 열나고 아프고 쑤시고... 병원 가서 연고 하나 받았는데 잘 낫지가 않아요."

몽골에서 맨홀 노숙자가 생겨난 것은 10여년 전 사회주의 붕괴 이후입니다. 시장경제의 바람 속에 물가가 50배 이상 폭등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90년대 초 2천 명을 넘었던 노숙자가 현재 200여 명으로 줄었다고 하지만 이는 정부의 통계상 수치일 뿐입니다.

이보다 두 세배는 더 많을 것이란 게 국제 자선단체들의 추산입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노숙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몽골의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지거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청소년들이 부랑아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울란바토르 시 외곽에 있는 시립 어린이 복지시설, 4살부터 18살까지의 거리 아이들 150 명이 살고 있습니다. 거리를 떠돌며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돈을 구걸하던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녹취>바트첸겔 (15살): "병모아서 돈벌기도 했고 추울 때 가게 들어가서 몸 녹이고 가게 문닫으면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서 몸 녹이고 나와요. 여기 오니까 옷도 깨긋하고 침대도 깨끗하고 너무 좋았어요. 다 키워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이들에게 거리 생활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녹취> 오치르 도르지 (13살): "(맨홀생활은 어땠어요?)따뜻한 것 빼곤 다 나빴어요. 먹을 것도 없고 같이 사는 어른들이 먹을 거 안주고 자기들만 먹고 우리가 스스로 찾아먹었어요. 어른들이 일 시키고 돈 갖다주지 않으면 때렸어요. 그 어른들 피해 다니다가 또 잡혀서 맞았어요."

거리아이들이 이 곳에 오면 처음엔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녹취> 툭스자르갈 (지도교사): "담배 피고 술이나 마약을 하거나 폭행을 자주 당해서 난폭해진 아이들이 오고 그 아이들은 적응에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이곳에서 한 두주 정도면 거의 대부분이 적응한다는 게 시설 측의 설명입니다.

<인터뷰>"(이 그림은 누구죠?) 산타할아버지요!(누가 그렸니?)우리 방 큰 언니요."

난생 처음 음악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마음의 안정도 찾습니다. 재봉과 목공 등 기본적인 직업 교육을 통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문제는 이같은 시설이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몽골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이 곳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곳마저도 예산과 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시설의 올해 예산은 우리 돈으로 1억 5천만 원 정도, 하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두 배는 더 필요합니다.

<인터뷰>나랑델게르 (교육센터 원장): "수도관이라든지 전기 시스템이 다 낙후됐고 교체하려면 경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것조차도 할 예산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맨홀 노숙자들이 좀처럼 줄지 않자 몽골 정부도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전국의 빈곤층 어린이 60여만 명에게 매달 3천 원 정도씩 모두 20억 원가량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복지 예산이 40억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예산의 한계에 부딪히긴 마찬가집니다.

<녹취>다그바도르 (몽골 사회복지노동부 국장): "가장 어려운 문제점은 역시 재정문젭니다. 모든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도 돈이 모자라는 거죠. 지금은 필요 예산의 4-5%정도만 확보하는 상황입니다."

몽골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 안팎, 국민 80% 가량이 하루 천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로 돌아선 지난 15년 동안 어느 정도 경제성장은 이뤘다고 하지만 사회복지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날 땅 속 맨홀과 거리를 떠도는 몽골 노숙자들의 모습은 시장경제로 거듭 나려는 몽골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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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맨홀 아이들’ 겨울나기
    • 입력 2006-01-27 10:14:0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은 이렇게 춘절을 맞아서 들떠 있지만 이웃나라 몽골은 춥기만 합니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는 몽골의 노숙자들, 특히 거리로 내몰린 어린이, 청소년들은 이 모진 겨울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요? 이병도 순회 특파원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3구역의 도로 한 복판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피해 땅 속 맨홀로 잠을 자러 들어온 청소년들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지금 여기서 산 지 8년 됐어요." 대개는 고아이거나 가출 청소년들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어떻게 여기서 생활하게 됐어요?) 고아가 됐어요."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왜 집에서 나왔어요?)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이들이 사는 맨홀 속으로 직접 들어가봤습니다. 현재 바깥의 기온은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씹니다. 하지만 이 맨홀 안은 들어오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합니다. 이 맨홀 바닥으로 난방용 배관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난방배관의 따뜻한 기운을 빌려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8명이 모여 잠을 잡니다. <녹취> 뭉근사르 (17살): "(몇 살이에요?) 17살이요.(남녀 함께 지내는데 불편하지 않아요?) 모두 친구니까 괜찮아요. 누가 뭐 얻어오면 같이 나눠 먹고..." 추위는 이렇게라도 피할 수 있지만 배고픔은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빵과 음료 등 먹을 것을 건네자 단숨에 먹어 치웁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요?) 식당에서 음식 쓰레기 버린 것 먹어요."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집니다. <녹취> "함부로 들어오면 되냐? 나가라!" 어른 노숙자들이 자기네 구역이라며 이들을 쫓아냅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이렇게 어른들이 자주 와요?) 자주 와요. 어른들이 맨홀에 들어와서 때려요." 배고픔에 시달리고 맨홀에서 쫓겨나는 생활이 거듭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녹취> 맨홀 노숙 청소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뇨. 집에 가면 나가라고 쫓아서 가고 싶지 않아요." 노숙자 가족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주택가 맨홀을 찾았습니다. 먹다남은 음식과 물, 두 조각의 빵이 이들 가족의 하루 양식입니다. 이 40대 여성 노숙자는 얼마 전 뜨거운 난방 배관 위에서 잠을 자다 화상을 입었습니다. <녹취> "뜨거운 스팀에 화상 입었어요. 여기 보세요. 이렇게 화상 입었어요." 맨홀 노숙자들에게 이같은 경우는 다반사, 하지만 돈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따깁니다. <녹취> "(아프지 않아요?) 아파요 열나고 밤에 잠도 못자요 열나고 아프고 쑤시고... 병원 가서 연고 하나 받았는데 잘 낫지가 않아요." 몽골에서 맨홀 노숙자가 생겨난 것은 10여년 전 사회주의 붕괴 이후입니다. 시장경제의 바람 속에 물가가 50배 이상 폭등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90년대 초 2천 명을 넘었던 노숙자가 현재 200여 명으로 줄었다고 하지만 이는 정부의 통계상 수치일 뿐입니다. 이보다 두 세배는 더 많을 것이란 게 국제 자선단체들의 추산입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노숙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몽골의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지거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청소년들이 부랑아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울란바토르 시 외곽에 있는 시립 어린이 복지시설, 4살부터 18살까지의 거리 아이들 150 명이 살고 있습니다. 거리를 떠돌며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돈을 구걸하던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녹취>바트첸겔 (15살): "병모아서 돈벌기도 했고 추울 때 가게 들어가서 몸 녹이고 가게 문닫으면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서 몸 녹이고 나와요. 여기 오니까 옷도 깨긋하고 침대도 깨끗하고 너무 좋았어요. 다 키워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이들에게 거리 생활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녹취> 오치르 도르지 (13살): "(맨홀생활은 어땠어요?)따뜻한 것 빼곤 다 나빴어요. 먹을 것도 없고 같이 사는 어른들이 먹을 거 안주고 자기들만 먹고 우리가 스스로 찾아먹었어요. 어른들이 일 시키고 돈 갖다주지 않으면 때렸어요. 그 어른들 피해 다니다가 또 잡혀서 맞았어요." 거리아이들이 이 곳에 오면 처음엔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녹취> 툭스자르갈 (지도교사): "담배 피고 술이나 마약을 하거나 폭행을 자주 당해서 난폭해진 아이들이 오고 그 아이들은 적응에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이곳에서 한 두주 정도면 거의 대부분이 적응한다는 게 시설 측의 설명입니다. <인터뷰>"(이 그림은 누구죠?) 산타할아버지요!(누가 그렸니?)우리 방 큰 언니요." 난생 처음 음악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마음의 안정도 찾습니다. 재봉과 목공 등 기본적인 직업 교육을 통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문제는 이같은 시설이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몽골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이 곳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곳마저도 예산과 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시설의 올해 예산은 우리 돈으로 1억 5천만 원 정도, 하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두 배는 더 필요합니다. <인터뷰>나랑델게르 (교육센터 원장): "수도관이라든지 전기 시스템이 다 낙후됐고 교체하려면 경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것조차도 할 예산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맨홀 노숙자들이 좀처럼 줄지 않자 몽골 정부도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전국의 빈곤층 어린이 60여만 명에게 매달 3천 원 정도씩 모두 20억 원가량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복지 예산이 40억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예산의 한계에 부딪히긴 마찬가집니다. <녹취>다그바도르 (몽골 사회복지노동부 국장): "가장 어려운 문제점은 역시 재정문젭니다. 모든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도 돈이 모자라는 거죠. 지금은 필요 예산의 4-5%정도만 확보하는 상황입니다." 몽골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 안팎, 국민 80% 가량이 하루 천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로 돌아선 지난 15년 동안 어느 정도 경제성장은 이뤘다고 하지만 사회복지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날 땅 속 맨홀과 거리를 떠도는 몽골 노숙자들의 모습은 시장경제로 거듭 나려는 몽골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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