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습 피해 광주로…광주항공대 사진·육성 최초 공개
입력 2025.08.14 (19:09)
수정 2025.08.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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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의 방공호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전쟁 말기 연합군의 공습의 흔적입니다.
이즈미시에 있던 해군항공대가 광주로 이전한 이유입니다.
광주에서는 1944년 후반부터 일제의 해군항공기지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그 흔적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즈미시에서 현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훈련기지에서 실전 기지로, 전쟁 말기 특공기지를 운용했던 곳인 만큼 관련 증언이나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서남해안 일제 군사시설과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광복 80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일본 현지에서 확보한 광주항공기지의 사진과 부대원의 일기, 육성 기록을 이어서 공개합니다.
먼저 사진을 통해 본 일제 광주항공기지의 모습 이성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 이즈미시의 옛 해군 비행기지입니다.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형 폭격기용 콘크리트 격납고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조종사 훈련을 맡았던 당시 일본 이즈미 해군항공대는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실전 기지로 전환합니다.
대신 조종사 교육은 광주비행장으로 이전합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 평화학습가이드 : "공습을 당하기 때문에 훈련소를 놔둘 상황이 아니었죠. 실전기지가 된 겁니다. 훈련기지는 광주로 이전한 거죠."]
광주로 옮겨온 건 1945년 3월...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일본군 사진에는 광주 비행장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지휘소와 지붕이 있는 격납고, 또 3~4층 높이로 보이는 관제탑 등 전쟁 중인데도 비행장 시설을 제대로 갖췄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관제탑이죠, 이런 시설이 광주에 있었다는 건 지금 도면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네요. 이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중폭격 훈련을 바라보는 군인들과 중간연습기 3대가 나란히 이륙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중간연습기입니다. 이 아래 폭탄을 붙이는 겁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250킬로그램 폭탄 사진과 공중폭격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을 볼 때 광주에서도 이른바 '자살 특공훈련'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폭탄을 (기체와) 볼트·너트로 고정했습니다. 투하하는 장치는 없습니다. 가서 충돌하는 거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군 연습항공대는 광주에 온 지 두 달 만에 실전 부대인 제5항공함대에 배속됐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쪽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다른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인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에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 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의 방공호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전쟁 말기 연합군의 공습의 흔적입니다.
이즈미시에 있던 해군항공대가 광주로 이전한 이유입니다.
광주에서는 1944년 후반부터 일제의 해군항공기지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그 흔적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즈미시에서 현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훈련기지에서 실전 기지로, 전쟁 말기 특공기지를 운용했던 곳인 만큼 관련 증언이나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서남해안 일제 군사시설과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광복 80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일본 현지에서 확보한 광주항공기지의 사진과 부대원의 일기, 육성 기록을 이어서 공개합니다.
먼저 사진을 통해 본 일제 광주항공기지의 모습 이성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 이즈미시의 옛 해군 비행기지입니다.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형 폭격기용 콘크리트 격납고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조종사 훈련을 맡았던 당시 일본 이즈미 해군항공대는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실전 기지로 전환합니다.
대신 조종사 교육은 광주비행장으로 이전합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 평화학습가이드 : "공습을 당하기 때문에 훈련소를 놔둘 상황이 아니었죠. 실전기지가 된 겁니다. 훈련기지는 광주로 이전한 거죠."]
광주로 옮겨온 건 1945년 3월...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일본군 사진에는 광주 비행장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지휘소와 지붕이 있는 격납고, 또 3~4층 높이로 보이는 관제탑 등 전쟁 중인데도 비행장 시설을 제대로 갖췄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관제탑이죠, 이런 시설이 광주에 있었다는 건 지금 도면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네요. 이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중폭격 훈련을 바라보는 군인들과 중간연습기 3대가 나란히 이륙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중간연습기입니다. 이 아래 폭탄을 붙이는 겁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250킬로그램 폭탄 사진과 공중폭격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을 볼 때 광주에서도 이른바 '자살 특공훈련'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폭탄을 (기체와) 볼트·너트로 고정했습니다. 투하하는 장치는 없습니다. 가서 충돌하는 거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군 연습항공대는 광주에 온 지 두 달 만에 실전 부대인 제5항공함대에 배속됐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쪽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다른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인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에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 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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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4 19:09:16
- 수정2025-08-14 19:56:10

[앵커]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의 방공호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전쟁 말기 연합군의 공습의 흔적입니다.
이즈미시에 있던 해군항공대가 광주로 이전한 이유입니다.
광주에서는 1944년 후반부터 일제의 해군항공기지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그 흔적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즈미시에서 현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훈련기지에서 실전 기지로, 전쟁 말기 특공기지를 운용했던 곳인 만큼 관련 증언이나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서남해안 일제 군사시설과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광복 80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일본 현지에서 확보한 광주항공기지의 사진과 부대원의 일기, 육성 기록을 이어서 공개합니다.
먼저 사진을 통해 본 일제 광주항공기지의 모습 이성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 이즈미시의 옛 해군 비행기지입니다.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형 폭격기용 콘크리트 격납고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조종사 훈련을 맡았던 당시 일본 이즈미 해군항공대는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실전 기지로 전환합니다.
대신 조종사 교육은 광주비행장으로 이전합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 평화학습가이드 : "공습을 당하기 때문에 훈련소를 놔둘 상황이 아니었죠. 실전기지가 된 겁니다. 훈련기지는 광주로 이전한 거죠."]
광주로 옮겨온 건 1945년 3월...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일본군 사진에는 광주 비행장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지휘소와 지붕이 있는 격납고, 또 3~4층 높이로 보이는 관제탑 등 전쟁 중인데도 비행장 시설을 제대로 갖췄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관제탑이죠, 이런 시설이 광주에 있었다는 건 지금 도면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네요. 이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중폭격 훈련을 바라보는 군인들과 중간연습기 3대가 나란히 이륙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중간연습기입니다. 이 아래 폭탄을 붙이는 겁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250킬로그램 폭탄 사진과 공중폭격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을 볼 때 광주에서도 이른바 '자살 특공훈련'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폭탄을 (기체와) 볼트·너트로 고정했습니다. 투하하는 장치는 없습니다. 가서 충돌하는 거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군 연습항공대는 광주에 온 지 두 달 만에 실전 부대인 제5항공함대에 배속됐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쪽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다른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인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에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 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의 방공호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전쟁 말기 연합군의 공습의 흔적입니다.
이즈미시에 있던 해군항공대가 광주로 이전한 이유입니다.
광주에서는 1944년 후반부터 일제의 해군항공기지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그 흔적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즈미시에서 현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훈련기지에서 실전 기지로, 전쟁 말기 특공기지를 운용했던 곳인 만큼 관련 증언이나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서남해안 일제 군사시설과 광주 해군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광복 80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일본 현지에서 확보한 광주항공기지의 사진과 부대원의 일기, 육성 기록을 이어서 공개합니다.
먼저 사진을 통해 본 일제 광주항공기지의 모습 이성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 이즈미시의 옛 해군 비행기지입니다.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형 폭격기용 콘크리트 격납고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조종사 훈련을 맡았던 당시 일본 이즈미 해군항공대는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실전 기지로 전환합니다.
대신 조종사 교육은 광주비행장으로 이전합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 평화학습가이드 : "공습을 당하기 때문에 훈련소를 놔둘 상황이 아니었죠. 실전기지가 된 겁니다. 훈련기지는 광주로 이전한 거죠."]
광주로 옮겨온 건 1945년 3월...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일본군 사진에는 광주 비행장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지휘소와 지붕이 있는 격납고, 또 3~4층 높이로 보이는 관제탑 등 전쟁 중인데도 비행장 시설을 제대로 갖췄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관제탑이죠, 이런 시설이 광주에 있었다는 건 지금 도면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네요. 이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중폭격 훈련을 바라보는 군인들과 중간연습기 3대가 나란히 이륙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이건 중간연습기입니다. 이 아래 폭탄을 붙이는 겁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250킬로그램 폭탄 사진과 공중폭격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을 볼 때 광주에서도 이른바 '자살 특공훈련'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前後事)회의 마쓰에 대표 : "폭탄을 (기체와) 볼트·너트로 고정했습니다. 투하하는 장치는 없습니다. 가서 충돌하는 거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군 연습항공대는 광주에 온 지 두 달 만에 실전 부대인 제5항공함대에 배속됐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쪽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다른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인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에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 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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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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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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