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후 美에 전력 증강 요청

입력 2006.02.05 (21:5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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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했던 지난 68년의 1.21사태, 이 사건 이후로 우리 정부가 대규모 전력 증강을 꾀했던 사실도 외교문서에서 밝혀졌습니다.

김덕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와대가 습격당한 1.21 사태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안전판 마련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한 필사적인 외교활동에 들어갑니다.

"북의 도발에 한미 양국이 즉시 행동으로 대응할 것을 문서로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북의 재침에 대한 즉각 대응조치를 성명 또는 각서로 한미 방위조약에 부연해 달라" 는 조약 강화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당시 국방장관은 "미 전력 도착전 45일간의 방어를 위한 전폭기 5개 대대 증강 방안 등 한국군 증강목표 계획을 미측에 전달했고 결국 1년 뒤 특별원조금 5천만 달러를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70년대 초는 국제무대에서의 남북 대결도 극심해 정부는 만국우편연합의 북한 가입을 저지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법률자문위원회 등 규모에 관계 없이 북한의 참여를 봉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서재만 (한국외대 터키어학과 교수) : "분단국가로서 비애를 느끼기도 했습니다.외교관이 품위를 잃을 정도로 해야하는 사안도 있었습니다."

내일 공개되는 문서는 지난 1947년에서 1974년 사이에 생산돼 30년이 지났으나 그간 국가 안보와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를 미뤄왔던 외교 문서 191건, 1만7천여쪽입니다.

이들 문서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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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후 美에 전력 증강 요청
    • 입력 2006-02-05 20:40:38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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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했던 지난 68년의 1.21사태, 이 사건 이후로 우리 정부가 대규모 전력 증강을 꾀했던 사실도 외교문서에서 밝혀졌습니다. 김덕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와대가 습격당한 1.21 사태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안전판 마련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한 필사적인 외교활동에 들어갑니다. "북의 도발에 한미 양국이 즉시 행동으로 대응할 것을 문서로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북의 재침에 대한 즉각 대응조치를 성명 또는 각서로 한미 방위조약에 부연해 달라" 는 조약 강화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당시 국방장관은 "미 전력 도착전 45일간의 방어를 위한 전폭기 5개 대대 증강 방안 등 한국군 증강목표 계획을 미측에 전달했고 결국 1년 뒤 특별원조금 5천만 달러를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70년대 초는 국제무대에서의 남북 대결도 극심해 정부는 만국우편연합의 북한 가입을 저지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법률자문위원회 등 규모에 관계 없이 북한의 참여를 봉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서재만 (한국외대 터키어학과 교수) : "분단국가로서 비애를 느끼기도 했습니다.외교관이 품위를 잃을 정도로 해야하는 사안도 있었습니다." 내일 공개되는 문서는 지난 1947년에서 1974년 사이에 생산돼 30년이 지났으나 그간 국가 안보와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를 미뤄왔던 외교 문서 191건, 1만7천여쪽입니다. 이들 문서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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