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필리핀 빛바랜 ‘피플파워’

입력 2006.03.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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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필리핀 정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와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아로요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초 강수로 맞대응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두 차례나 대통령을 몰아냈던 필리핀 민중의 힘, 피플 파워의 향방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조현진 순회특파원이 마닐라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6년 마르코스, 2001년 에스트라다, 민중의 힘으로 두 차례나 대통령을 몰아냈던 필리핀 피플 파워의 진앙지, EDSA 가도에 필리핀 국민들이 다시 집결했습니다. 5천여 명의 시위대는 한 목소리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습니다.

<현장음> "아로요는 물러나라"

<인터뷰>세자르 레이에스 (마닐라 시민): "필리핀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로요 대통령은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필리핀 경찰은 물대포와 최류탄을 쏘며 해산하려 했지만 시위대는 마닐라 시내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86년 1차 피플파워의 주역,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인터뷰>코라손 아키노 (前대통령): "아로요 대통령, 나는 당신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길 요청합니다. "

한창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시각, 아로요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 아로요 대통령은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면서 나라가 명백한 위협에 처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공화국이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쿠데타 음모를 중지시켰습니다. 이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해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됐습니다. 학교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말라카냥 대통령 궁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철조망과 컨테이너로 4중, 5중의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시내 곳곳에 군과 경찰이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후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군부 인사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며 반대파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 이후 반란과 시위 주동혐의로 체포된 인사가 백 여명에 이릅니다. 언론은 시위 내용을 방송하는 것이 금지됐고 신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습니다.

<인터뷰>콘치타 올리바레스 (데일리 트리뷴 발행인): "우리 신문이 아로요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탄압하는 겁니다. 이 정부는 언론인들이 공포심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물론 카스트로 부통령과 라모스 전 대통령까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했습니다. 해병사령관의 직위 해제에 항의하는 해병 대원 백여 명이 마닐라 시내에 있는 해병사령부에서 무장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발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증시와 환율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국민들의 불만이 정점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큰 혼란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종교계 때문입니다. 카톨릭 주교단은 야당과 시민들에게 폭력 시위를 자제하고 직접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은 일단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을 뿐입니다. 우선 경제가 문제입니다. 국가 예산의 1/3을 외채 이자를 갚는 데 쓰고 국민의 40%가 절대 빈곤층인 상황입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최근 부가세를 10%에서 12%로 높이면서 물가도 폭등했습니다.

여기다 남편과 아들의 뇌물수수, 지난 대선의 개표조작 의혹까지 겹치면서 아로요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습니다. 집권 기간 공식, 비공식 쿠데타 시도가 여섯 차례나 일어날 만큼 군 내부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것도 불안 요소입니다.

<인터뷰>지메 올리베로스 (마닐라 시민): "(아로요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필리핀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필리핀 정치평론가들은 지금의 필리핀 상황이 마르코스가 쫓겨나기 2년 전인 지난 84년과 흡사하다고 분석합니다.

당시 경제가 악화되고 부패가 만연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군부가 동요할 조짐을 보이자 마르코스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국민의 불만을 억눌렀습니다.

마르코스는 2년을 버텼지만 아로요 대통령은 얼마나 견딜지, 아니면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 경제를 살리고 군과 민심을 다스릴 묘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 필리핀의 정국이 짙은 안개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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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필리핀 빛바랜 ‘피플파워’
    • 입력 2006-03-03 10:28:5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필리핀 정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와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아로요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초 강수로 맞대응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두 차례나 대통령을 몰아냈던 필리핀 민중의 힘, 피플 파워의 향방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조현진 순회특파원이 마닐라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6년 마르코스, 2001년 에스트라다, 민중의 힘으로 두 차례나 대통령을 몰아냈던 필리핀 피플 파워의 진앙지, EDSA 가도에 필리핀 국민들이 다시 집결했습니다. 5천여 명의 시위대는 한 목소리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습니다. <현장음> "아로요는 물러나라" <인터뷰>세자르 레이에스 (마닐라 시민): "필리핀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로요 대통령은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필리핀 경찰은 물대포와 최류탄을 쏘며 해산하려 했지만 시위대는 마닐라 시내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86년 1차 피플파워의 주역,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인터뷰>코라손 아키노 (前대통령): "아로요 대통령, 나는 당신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길 요청합니다. " 한창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시각, 아로요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 아로요 대통령은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면서 나라가 명백한 위협에 처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공화국이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쿠데타 음모를 중지시켰습니다. 이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해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됐습니다. 학교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말라카냥 대통령 궁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철조망과 컨테이너로 4중, 5중의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시내 곳곳에 군과 경찰이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후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군부 인사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며 반대파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 이후 반란과 시위 주동혐의로 체포된 인사가 백 여명에 이릅니다. 언론은 시위 내용을 방송하는 것이 금지됐고 신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습니다. <인터뷰>콘치타 올리바레스 (데일리 트리뷴 발행인): "우리 신문이 아로요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탄압하는 겁니다. 이 정부는 언론인들이 공포심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물론 카스트로 부통령과 라모스 전 대통령까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했습니다. 해병사령관의 직위 해제에 항의하는 해병 대원 백여 명이 마닐라 시내에 있는 해병사령부에서 무장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발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증시와 환율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국민들의 불만이 정점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큰 혼란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종교계 때문입니다. 카톨릭 주교단은 야당과 시민들에게 폭력 시위를 자제하고 직접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은 일단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을 뿐입니다. 우선 경제가 문제입니다. 국가 예산의 1/3을 외채 이자를 갚는 데 쓰고 국민의 40%가 절대 빈곤층인 상황입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최근 부가세를 10%에서 12%로 높이면서 물가도 폭등했습니다. 여기다 남편과 아들의 뇌물수수, 지난 대선의 개표조작 의혹까지 겹치면서 아로요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습니다. 집권 기간 공식, 비공식 쿠데타 시도가 여섯 차례나 일어날 만큼 군 내부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것도 불안 요소입니다. <인터뷰>지메 올리베로스 (마닐라 시민): "(아로요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필리핀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필리핀 정치평론가들은 지금의 필리핀 상황이 마르코스가 쫓겨나기 2년 전인 지난 84년과 흡사하다고 분석합니다. 당시 경제가 악화되고 부패가 만연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군부가 동요할 조짐을 보이자 마르코스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국민의 불만을 억눌렀습니다. 마르코스는 2년을 버텼지만 아로요 대통령은 얼마나 견딜지, 아니면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 경제를 살리고 군과 민심을 다스릴 묘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 필리핀의 정국이 짙은 안개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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