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없는 민족, 쿠르드의 설움

입력 2006.04.07 (13:31) 수정 2006.04.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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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터키에서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 시위대 간의 충돌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달 터키 군이 쿠르드 노동자당원 14명을 사살한 사건을 계기로 시위와 테러, 이에 맞선 강경진압의 핏빛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는데요.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역사상 단 한번도 독립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는 4천만 쿠르드인들의 한 맺힌 삶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쿠르드 인들의 눈물과 절규, 임세흠 순회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터키 동부 산악지대... 산 아래 마을 '지즈레'에서 쿠르드 전통 축제-'네브로즈'가 한창입니다. 형형색색 전통 의상에... 참가자들은 어깨춤을 쉬지 않습니다. 쿠르드족의 네브로즈 현장입니다.

원래는 새해맞이 축제였지만, 이제는 민족지도자 오잘란을 거론하는 등 정치집회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축제 열기가 달아오르자 쿠르드 노동당 PKK를 이끌다 체포된 '오잘란'의 사진이 군중들 머리 위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축제 현장 외곽... 터키 경찰이 장갑차까지 동원해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터키 쿠르드족의 중심도시 디야르바크르. 오잘란이나, 독립을 운운하면, 경찰이 투입될 것이라는 터키의 으름장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3천년 된 새해맞이 명절에도 피를 봐야하는 현실 뒤에는, 오랜 핍박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라크 등지에 4천 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소수 민족으로는 최대규모입니다. 지형적 한계와 유목에 의존하는 생활양식 때문에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습니다. 근대 들어서야 민족적 자각이 일어났고, 독립을 약속받으며 1차 대전과 터키 독립전쟁, 이란 혁명에까지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뿐이었습니다.

강대국에 의해 1923년 쿠드르인의 땅, 쿠르디스탄은 터키와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와 소련으로 분할됐습니다. 쿠르드족의 맏형겪인 터키 쿠르드족은 터키가 강한 중앙집권형 국가를 건설하면서 고난의 현대사를 겪어왔습니다.

쿠르드족 12살 소녀 렝긴... 당뇨병에 신부전증까지 앓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집에서 누워지내는 때가 많습니다. 혈당수치가 400을 넘나들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쿠르드노동당 PKK 조직원이었습니다. 렝긴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발급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인터뷰>렝긴 : "의료보험을 주정부에 신청했지만, 아버지의 죄값을 내가 치러야 한다며 거부했습니다."

렝긴과 늙은 어머니는 취재진을 만나는 동안에도 언제 터키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며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EU, 유럽연합이 터키에게 가입요건으로 쿠르드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쿠르드에 대한 압박은 교묘해졌습니다.

지방자치가 허용되고 쿠르드인 자치단체장이 당선됐지만, 실제 권력은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행정관이 휘두릅니다. 자치단체의 모든 결정은 행정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인터뷰>압둘라 데미르 바쉬(디야르바크르 시장) : "행정관이 자치단체 시장의 사무실과 집까지 영장 없이 압수 수색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쿠르드어를 쓴다고 해서 체포당하진 않지만 공공기관에서 쿠르드어를 사용할 수 없고, 쿠르드어 교육기관은 아예 없습니다. 가까스로 시작된 국영방송의 쿠르드어 방송도 누가 볼까 싶은 새벽 6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는게 전부입니다.

100여 가구가 북적이던 쿠르드 마을.. 이제 쓰러진 돌무더기만 조용히 비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90년대 중반, 산악 마을 4천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소개 작업을 벌였습니다. PKK 의 배후근거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인터뷰>마을 주민 : "군인들이 와서 닷새안에 마을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제 수도도 전기도, 학교도 없는 이곳 폐허 마을에도 도시에서 스며든 쿠르드인들이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에 협조적인 마을은 살아남았습니다. 굽이 굽이 고갯길을 돌아가야하는 해발 2천미터... 산 몇 개를 넘어 땔감을 구해온 노새가, 숨이 거칠어질 쯤이면 쿠르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돌덩이 뿐인 쿠르드족의 산악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쿠르드인들은 수백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의 방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르드 마을이 점점이 자리잡은 동쪽 산악지대로 갈수록 길가에 터키군 장갑차 수는 늘어납니다. 1킬로미터가 멀다하고 군인들의 신경질적인 검문이 반복됩니다.

90년대 이후 PKK에 대한 토벌작전이 계속됐고. 4만여 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습니다. 지난달에도 십수 명이 사살됐습니다. 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쿠르드인의 설움과 울분은 한꺼번에 폭발했습니다.

국영은행과 집권당 사무실이 공격당했고, 시위는 밤늦도록 계속됐습니다. 터키 경찰의 물대포와 곤봉 세례가 돌아왔습니다. 어디선가 총탄도 날아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10 명이 죽었습니다. 무력진압과 항의시위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어머니회'는 이렇게 희생된 자식들을 둔 쿠르드 어머니들이 모인 곳입니다. 허느 펜체는 아들 셋을 모두 PKK에 보냈습니다. 아들들은 차례로 모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허느펜체 : "많이 울었습니다. 더 이상 이 땅의 어머니들이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술탄 고요는 큰 아들을 잃었고, 둘째 아들이 총을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술탄 고요 : "둘째 아들이 형과 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말리지 않을 겁니다."

많은 쿠르드족은 그들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또 양떼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양을 치면서, 수익의 70%를 땅 사용료로 내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자치니 독립이니 하는 것들에는 도통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늙은 쿠르드 유목민에게 희망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인터뷰>쿠르드족 유목민 :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평화 말고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독립된 국가는 고사하고 당장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 쿠르드... 이들의 3천년되 한은 쿠르드 마을을 둘러싼 산처럼 높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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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없는 민족, 쿠르드의 설움
    • 입력 2006-04-07 09:21:18
    • 수정2006-04-07 13:34:4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최근 터키에서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 시위대 간의 충돌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달 터키 군이 쿠르드 노동자당원 14명을 사살한 사건을 계기로 시위와 테러, 이에 맞선 강경진압의 핏빛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는데요.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역사상 단 한번도 독립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는 4천만 쿠르드인들의 한 맺힌 삶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쿠르드 인들의 눈물과 절규, 임세흠 순회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터키 동부 산악지대... 산 아래 마을 '지즈레'에서 쿠르드 전통 축제-'네브로즈'가 한창입니다. 형형색색 전통 의상에... 참가자들은 어깨춤을 쉬지 않습니다. 쿠르드족의 네브로즈 현장입니다. 원래는 새해맞이 축제였지만, 이제는 민족지도자 오잘란을 거론하는 등 정치집회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축제 열기가 달아오르자 쿠르드 노동당 PKK를 이끌다 체포된 '오잘란'의 사진이 군중들 머리 위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축제 현장 외곽... 터키 경찰이 장갑차까지 동원해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터키 쿠르드족의 중심도시 디야르바크르. 오잘란이나, 독립을 운운하면, 경찰이 투입될 것이라는 터키의 으름장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3천년 된 새해맞이 명절에도 피를 봐야하는 현실 뒤에는, 오랜 핍박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라크 등지에 4천 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소수 민족으로는 최대규모입니다. 지형적 한계와 유목에 의존하는 생활양식 때문에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습니다. 근대 들어서야 민족적 자각이 일어났고, 독립을 약속받으며 1차 대전과 터키 독립전쟁, 이란 혁명에까지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뿐이었습니다. 강대국에 의해 1923년 쿠드르인의 땅, 쿠르디스탄은 터키와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와 소련으로 분할됐습니다. 쿠르드족의 맏형겪인 터키 쿠르드족은 터키가 강한 중앙집권형 국가를 건설하면서 고난의 현대사를 겪어왔습니다. 쿠르드족 12살 소녀 렝긴... 당뇨병에 신부전증까지 앓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집에서 누워지내는 때가 많습니다. 혈당수치가 400을 넘나들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쿠르드노동당 PKK 조직원이었습니다. 렝긴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발급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인터뷰>렝긴 : "의료보험을 주정부에 신청했지만, 아버지의 죄값을 내가 치러야 한다며 거부했습니다." 렝긴과 늙은 어머니는 취재진을 만나는 동안에도 언제 터키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며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EU, 유럽연합이 터키에게 가입요건으로 쿠르드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쿠르드에 대한 압박은 교묘해졌습니다. 지방자치가 허용되고 쿠르드인 자치단체장이 당선됐지만, 실제 권력은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행정관이 휘두릅니다. 자치단체의 모든 결정은 행정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인터뷰>압둘라 데미르 바쉬(디야르바크르 시장) : "행정관이 자치단체 시장의 사무실과 집까지 영장 없이 압수 수색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쿠르드어를 쓴다고 해서 체포당하진 않지만 공공기관에서 쿠르드어를 사용할 수 없고, 쿠르드어 교육기관은 아예 없습니다. 가까스로 시작된 국영방송의 쿠르드어 방송도 누가 볼까 싶은 새벽 6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는게 전부입니다. 100여 가구가 북적이던 쿠르드 마을.. 이제 쓰러진 돌무더기만 조용히 비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90년대 중반, 산악 마을 4천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소개 작업을 벌였습니다. PKK 의 배후근거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인터뷰>마을 주민 : "군인들이 와서 닷새안에 마을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제 수도도 전기도, 학교도 없는 이곳 폐허 마을에도 도시에서 스며든 쿠르드인들이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에 협조적인 마을은 살아남았습니다. 굽이 굽이 고갯길을 돌아가야하는 해발 2천미터... 산 몇 개를 넘어 땔감을 구해온 노새가, 숨이 거칠어질 쯤이면 쿠르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돌덩이 뿐인 쿠르드족의 산악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쿠르드인들은 수백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의 방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르드 마을이 점점이 자리잡은 동쪽 산악지대로 갈수록 길가에 터키군 장갑차 수는 늘어납니다. 1킬로미터가 멀다하고 군인들의 신경질적인 검문이 반복됩니다. 90년대 이후 PKK에 대한 토벌작전이 계속됐고. 4만여 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습니다. 지난달에도 십수 명이 사살됐습니다. 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쿠르드인의 설움과 울분은 한꺼번에 폭발했습니다. 국영은행과 집권당 사무실이 공격당했고, 시위는 밤늦도록 계속됐습니다. 터키 경찰의 물대포와 곤봉 세례가 돌아왔습니다. 어디선가 총탄도 날아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10 명이 죽었습니다. 무력진압과 항의시위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어머니회'는 이렇게 희생된 자식들을 둔 쿠르드 어머니들이 모인 곳입니다. 허느 펜체는 아들 셋을 모두 PKK에 보냈습니다. 아들들은 차례로 모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허느펜체 : "많이 울었습니다. 더 이상 이 땅의 어머니들이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술탄 고요는 큰 아들을 잃었고, 둘째 아들이 총을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술탄 고요 : "둘째 아들이 형과 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말리지 않을 겁니다." 많은 쿠르드족은 그들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또 양떼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양을 치면서, 수익의 70%를 땅 사용료로 내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자치니 독립이니 하는 것들에는 도통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늙은 쿠르드 유목민에게 희망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인터뷰>쿠르드족 유목민 :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평화 말고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독립된 국가는 고사하고 당장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 쿠르드... 이들의 3천년되 한은 쿠르드 마을을 둘러싼 산처럼 높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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