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얼마 전에 고인의 유품을 수습하는 유품정리 전문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화장로 기사들의 이야기 들려드릴까 합니다
화장로 기사, 좀 생소하게 들리실텐데요,
화장장에서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일까지 하는 직업이라죠
네, 무려 천 도에 이르는 뜨거운 화장로에 매일같이 있다보면 살갗이 다 벗겨질 정도라 남자들도 힘겨워한다는데요,
여기 당당하게 도전한 20대 여성들이 있습니다
고된 일이지만 고인 한사람 한사람 정성어린 손길로 하늘에 보내다보면,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데요
김기흥 기자, 여성 최초 화장로 기사들의 하루를 담아오셨다고요
<기자 멘트>
매일 마주치는 죽음과 슬픔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자신들은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으로 했던 화장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성탄절 다음날 지하철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생아의 시신이었는데요
외롭게 간 아이의 가는 길을 지켜주고자 작은 관에 과자와 꽃 그리고 노잣돈을 한 가득 넣어줬다고 합니다.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서울 추모공원, 이 곳에 화장로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장례기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남자 직원들 틈에 보이는 이 분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이해루, 박소연 씹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화장장에 오는 고인을 화장을 한 뒤 유족들에게 인계하는 작업입니다."
하루 시작은 화장로와 화로 그리고 고인을 모시는 대차를 청소 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 쪽은 청소용역(회사)에서 무섭다고 청소를 안 해주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청소를 해야합니다."
오열하는 가족들과 고인이 이별의 시간이 지나면, 고인을 맞이하기 위해 박소연 씨가 옵니다.
<녹취> "지금부터 고 000님을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
유가족을 대신 해 고인을 모셔가는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슬픈 모습을 볼 때, 처음에는 저도 동요되기도 했었지만 직업상 그러면 안되기 때문에 감정조절을 열심히 하고있습니다."
화로의 온도는 보통 800~1000℃정도,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분 동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지켜봅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부장품으로 책, 성경책, 휴대전화를 넣는 경우가 있어 혹시라도 사고가 생길까봐 주의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직업이지만 남성들도 힘들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한만성(동료직원) : "(여자로써 일하기가) 모든 것이 다 힘들죠. (화장로 안이) 덥고 뜨거운 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여자로써 많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많이 기특해요."
화장로로 들어가기 전 해루 씨는 안경을 바꿔 씁니다.
바로 뜨거운 화로의 열기 때문인데요.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에서 (화로가) 나오면 열기가 뜨겁기 때문에 안경 렌즈 코팅이 녹아서 작업할 때는 전에 쓰던 것을 쓰고 있어요."
이렇게 뜨거운 화로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살갗이 벗겨지고, 자칫 방심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늘 긴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위험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거든요. 화장하는 총 과정 중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박소연 씨는 체대에서 태권도를 전공하던 중, 부상으로 진로를 장묘문화 연구로 바꿨고 자연히 장례기사에 관심이 갔다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택했고, 제가 전공 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 년 동안 장례지도사 일을 하던 이해루 씨는, 주변의 편견과 맞서기 위해 도전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주변의 반응에) 오기가 났던 거 같아요. '너는 못할 것이다. 너는 안된다'고 하면 '내가 왜 못하냐? 난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있어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직장 동료가 되었습니다.
화장장에서 일하는 만큼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초를 피워서 촛농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이었어요. 이 눈물까지 직접 닦으면서 조금이나마 정성을 표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하지만) 유가족들 앞에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표현 할 수 없어 힘들 거라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고인과 부장품이 한 줌 재로 변하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욕심부리며 사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제 삶이 더 값지고 알차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빡빡한 업무, 뜨거운 화로의 열기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만, 자신의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고인의 유품을 수습하는 유품정리 전문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화장로 기사들의 이야기 들려드릴까 합니다
화장로 기사, 좀 생소하게 들리실텐데요,
화장장에서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일까지 하는 직업이라죠
네, 무려 천 도에 이르는 뜨거운 화장로에 매일같이 있다보면 살갗이 다 벗겨질 정도라 남자들도 힘겨워한다는데요,
여기 당당하게 도전한 20대 여성들이 있습니다
고된 일이지만 고인 한사람 한사람 정성어린 손길로 하늘에 보내다보면,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데요
김기흥 기자, 여성 최초 화장로 기사들의 하루를 담아오셨다고요
<기자 멘트>
매일 마주치는 죽음과 슬픔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자신들은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으로 했던 화장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성탄절 다음날 지하철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생아의 시신이었는데요
외롭게 간 아이의 가는 길을 지켜주고자 작은 관에 과자와 꽃 그리고 노잣돈을 한 가득 넣어줬다고 합니다.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서울 추모공원, 이 곳에 화장로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장례기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남자 직원들 틈에 보이는 이 분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이해루, 박소연 씹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화장장에 오는 고인을 화장을 한 뒤 유족들에게 인계하는 작업입니다."
하루 시작은 화장로와 화로 그리고 고인을 모시는 대차를 청소 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 쪽은 청소용역(회사)에서 무섭다고 청소를 안 해주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청소를 해야합니다."
오열하는 가족들과 고인이 이별의 시간이 지나면, 고인을 맞이하기 위해 박소연 씨가 옵니다.
<녹취> "지금부터 고 000님을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
유가족을 대신 해 고인을 모셔가는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슬픈 모습을 볼 때, 처음에는 저도 동요되기도 했었지만 직업상 그러면 안되기 때문에 감정조절을 열심히 하고있습니다."
화로의 온도는 보통 800~1000℃정도,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분 동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지켜봅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부장품으로 책, 성경책, 휴대전화를 넣는 경우가 있어 혹시라도 사고가 생길까봐 주의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직업이지만 남성들도 힘들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한만성(동료직원) : "(여자로써 일하기가) 모든 것이 다 힘들죠. (화장로 안이) 덥고 뜨거운 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여자로써 많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많이 기특해요."
화장로로 들어가기 전 해루 씨는 안경을 바꿔 씁니다.
바로 뜨거운 화로의 열기 때문인데요.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에서 (화로가) 나오면 열기가 뜨겁기 때문에 안경 렌즈 코팅이 녹아서 작업할 때는 전에 쓰던 것을 쓰고 있어요."
이렇게 뜨거운 화로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살갗이 벗겨지고, 자칫 방심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늘 긴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위험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거든요. 화장하는 총 과정 중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박소연 씨는 체대에서 태권도를 전공하던 중, 부상으로 진로를 장묘문화 연구로 바꿨고 자연히 장례기사에 관심이 갔다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택했고, 제가 전공 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 년 동안 장례지도사 일을 하던 이해루 씨는, 주변의 편견과 맞서기 위해 도전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주변의 반응에) 오기가 났던 거 같아요. '너는 못할 것이다. 너는 안된다'고 하면 '내가 왜 못하냐? 난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있어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직장 동료가 되었습니다.
화장장에서 일하는 만큼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초를 피워서 촛농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이었어요. 이 눈물까지 직접 닦으면서 조금이나마 정성을 표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하지만) 유가족들 앞에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표현 할 수 없어 힘들 거라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고인과 부장품이 한 줌 재로 변하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욕심부리며 사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제 삶이 더 값지고 알차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빡빡한 업무, 뜨거운 화로의 열기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만, 자신의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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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포착] 섭씨 1000도 화장장, 여자가 지킨다?
-
- 입력 2012-02-24 09:02:59
<앵커 멘트>
얼마 전에 고인의 유품을 수습하는 유품정리 전문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화장로 기사들의 이야기 들려드릴까 합니다
화장로 기사, 좀 생소하게 들리실텐데요,
화장장에서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일까지 하는 직업이라죠
네, 무려 천 도에 이르는 뜨거운 화장로에 매일같이 있다보면 살갗이 다 벗겨질 정도라 남자들도 힘겨워한다는데요,
여기 당당하게 도전한 20대 여성들이 있습니다
고된 일이지만 고인 한사람 한사람 정성어린 손길로 하늘에 보내다보면,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데요
김기흥 기자, 여성 최초 화장로 기사들의 하루를 담아오셨다고요
<기자 멘트>
매일 마주치는 죽음과 슬픔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자신들은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으로 했던 화장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성탄절 다음날 지하철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생아의 시신이었는데요
외롭게 간 아이의 가는 길을 지켜주고자 작은 관에 과자와 꽃 그리고 노잣돈을 한 가득 넣어줬다고 합니다.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서울 추모공원, 이 곳에 화장로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장례기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남자 직원들 틈에 보이는 이 분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이해루, 박소연 씹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화장장에 오는 고인을 화장을 한 뒤 유족들에게 인계하는 작업입니다."
하루 시작은 화장로와 화로 그리고 고인을 모시는 대차를 청소 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 쪽은 청소용역(회사)에서 무섭다고 청소를 안 해주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청소를 해야합니다."
오열하는 가족들과 고인이 이별의 시간이 지나면, 고인을 맞이하기 위해 박소연 씨가 옵니다.
<녹취> "지금부터 고 000님을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
유가족을 대신 해 고인을 모셔가는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슬픈 모습을 볼 때, 처음에는 저도 동요되기도 했었지만 직업상 그러면 안되기 때문에 감정조절을 열심히 하고있습니다."
화로의 온도는 보통 800~1000℃정도,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분 동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지켜봅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부장품으로 책, 성경책, 휴대전화를 넣는 경우가 있어 혹시라도 사고가 생길까봐 주의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직업이지만 남성들도 힘들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한만성(동료직원) : "(여자로써 일하기가) 모든 것이 다 힘들죠. (화장로 안이) 덥고 뜨거운 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여자로써 많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많이 기특해요."
화장로로 들어가기 전 해루 씨는 안경을 바꿔 씁니다.
바로 뜨거운 화로의 열기 때문인데요.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화장로에서 (화로가) 나오면 열기가 뜨겁기 때문에 안경 렌즈 코팅이 녹아서 작업할 때는 전에 쓰던 것을 쓰고 있어요."
이렇게 뜨거운 화로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살갗이 벗겨지고, 자칫 방심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늘 긴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위험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거든요. 화장하는 총 과정 중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박소연 씨는 체대에서 태권도를 전공하던 중, 부상으로 진로를 장묘문화 연구로 바꿨고 자연히 장례기사에 관심이 갔다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택했고, 제가 전공 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 년 동안 장례지도사 일을 하던 이해루 씨는, 주변의 편견과 맞서기 위해 도전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해루(장례기사) : "(주변의 반응에) 오기가 났던 거 같아요. '너는 못할 것이다. 너는 안된다'고 하면 '내가 왜 못하냐? 난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있어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직장 동료가 되었습니다.
화장장에서 일하는 만큼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초를 피워서 촛농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이었어요. 이 눈물까지 직접 닦으면서 조금이나마 정성을 표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하지만) 유가족들 앞에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표현 할 수 없어 힘들 거라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소연(장례기사) : "고인과 부장품이 한 줌 재로 변하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욕심부리며 사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제 삶이 더 값지고 알차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빡빡한 업무, 뜨거운 화로의 열기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만, 자신의 정성어린 손길로 고인이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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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기자 he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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