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현장...성수대교 붕괴사고

입력 1994.10.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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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사고현장은 목격자들의 증언 그대로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구조가 조금만 더 빨리 시작됐더라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분노도 또 여기에 있습니다.

이춘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춘호 기자 :

앙상한 철골구조, 어지러이 널린 콘크리트 잔해. 마치 폭격후의 폐허를 연상시킵니다. 휴지 조각처럼 구겨진 시내버스와 널브러진 승용차들이 사고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시내버스는, 붕괴상황을 모른 채 달리다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등교길의 학생과 출근길의 시민들은, 제대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어이없이 숨져갔습니다.


김민자 (서울 안암국교 교사) :

‘쾅’하면서 차가 막 이렇게 요동을 좌우를 치더라구요. 눈을 감았는데 떠보니까 물속이에요.


이춘호 기자 :

오늘 사고는, 하마터면 더 큰 참사를 불러올 뻔했습니다. 다리가 붕괴된 시각은 아침 7시40분. 하루 교통량만 해도 십만대가 넘는 성수대교의 러시아워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내려앉은 50m 길이의 상판위에는 30여대의 차량이 통과했을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사고 순간, 뒤엉킨 차량들로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밤새 내린 비로 사고당시 차량통행이 훨씬 줄었습니다. 사고 순간이 짧은 것도 더 이상의 참사를 막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 승합차와 함께 떨어졌다 극적으로 살아난 전경들의 헌신적인 구조도 희생자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군.소방당국은 40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는 늑장구조로 시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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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벼락 현장...성수대교 붕괴사고
    • 입력 1994-10-21 21:00:00
    뉴스 9

이윤성 앵커 :

사고현장은 목격자들의 증언 그대로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구조가 조금만 더 빨리 시작됐더라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분노도 또 여기에 있습니다.

이춘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춘호 기자 :

앙상한 철골구조, 어지러이 널린 콘크리트 잔해. 마치 폭격후의 폐허를 연상시킵니다. 휴지 조각처럼 구겨진 시내버스와 널브러진 승용차들이 사고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시내버스는, 붕괴상황을 모른 채 달리다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등교길의 학생과 출근길의 시민들은, 제대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어이없이 숨져갔습니다.


김민자 (서울 안암국교 교사) :

‘쾅’하면서 차가 막 이렇게 요동을 좌우를 치더라구요. 눈을 감았는데 떠보니까 물속이에요.


이춘호 기자 :

오늘 사고는, 하마터면 더 큰 참사를 불러올 뻔했습니다. 다리가 붕괴된 시각은 아침 7시40분. 하루 교통량만 해도 십만대가 넘는 성수대교의 러시아워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내려앉은 50m 길이의 상판위에는 30여대의 차량이 통과했을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사고 순간, 뒤엉킨 차량들로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밤새 내린 비로 사고당시 차량통행이 훨씬 줄었습니다. 사고 순간이 짧은 것도 더 이상의 참사를 막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 승합차와 함께 떨어졌다 극적으로 살아난 전경들의 헌신적인 구조도 희생자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군.소방당국은 40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는 늑장구조로 시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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