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콜센터]② “화장실도 못 가”…반복되는 ‘콜센터 괴롭힘’ 왜?

입력 2019.12.24 (16:08) 수정 2019.12.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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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들에 대한 '직장 내 갑질'. 어쩌면 이런 괴롭힘 피해는 상사 개인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비슷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상담원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혹시 콜센터 상담 업무의 특성과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은 아닐까요.


콜센터 업무 메신저. 자리 비우는 사람을 1명으로 제한한다는 공지.콜센터 업무 메신저. 자리 비우는 사람을 1명으로 제한한다는 공지.

"13명 중 이석(자리 비움)은 1명으로 합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

한 팀에 13명이 근무하는 콜센터. 업무 메신저에 '이석은 한 명으로 제한한다'는 공지가 올라옵니다.

'이석'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리에서 떠남' 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입니다. 콜센터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리를 비우는 일, 즉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것 모두 이석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콜센터에서는 위 공지처럼 한 팀에서 몇 명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는지 제한을 둡니다. 때문에 상담원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한 콜센터에서는 1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바로 상급자에게 연락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콜센터 상담원들은 화장실 가는 것까지 관리당하는 겁니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일하는 동안, 상급자들이 고객과의 통화를 수시로 엿듣기도 합니다. 통화 품질을 관리하고 평가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하니, 근무 내내 감시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성수기가 왔으니 전원 조기 출근을 하라는 지시가 갑자기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상담사들의 하루가 관리자들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담원은 그냥 참아 넘깁니다. 그들은 왜 참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상급자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가 '생명'

일단 '임금'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상담원들의 기본급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따라서 주된 수입원은 성과에 따른 수당입니다. 성과는 단순히 고객의 전화 응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를 많이 받더라도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 점수는 관리자 권한으로 얼마든지 깎일 수 있습니다. 우선 관리자는 고객과의 통화를 듣고 '정성 평가'를 하면서 점수를 깎을 수 있습니다. 말투, 고객을 대하는 태도 등 평가 항목이 주관적이다 보니 관리자의 재량권이 커집니다. 눈 밖에 난 상담원에게 낮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또 어떤 관리자는 자신과 마찰을 빚은 직원의 근태 관리를 더 꼼꼼히 체크하면서 다른 직원들보다 점수를 짜게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점수가 깎이고, 결국 상담원의 인센티브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상급자가 업무 성과 평가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기 어렵습니다.

정재호 하이텔레서비스지회 사무장은 "급여가 워낙 박봉이기 때문에, 인센티브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렇다 보니 저항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합니다.

원-하청 관계, 내리 '실적 압박'… '최종 희생자'는 콜 상담원

콜 센터 업무가 대부분 하청으로 이뤄지는 구조도 직장 내 괴롭힘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상당수 대기업 등 원청 업체는 전화 상담 업무를 콜 전문 회사에 하청 형태로 맡깁니다. 그리고 원청에서는 주기적으로 콜 업체에 대한 실적을 보고받습니다. 그 실적이라는 것은 콜 응대 수, 고객 만족도, 영업 성공률 등입니다. 이때 실적이 미비하면 나중에 콜 회사와의 계약 관계를 종료할 수도 있고, '페널티' 개념으로 원래 주기로 한 금액보다 적은 돈을 줄 수도 있습니다. 원청이 하청 업체인 콜센터를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콜 센터 입장에서는 다음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페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 원청이 제시한 기준을 맞추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콜센터 사측이 노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상담원에게 원청의 기준을 맞출 것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콜센터에는 수익과 연결되는 다른 시설이나 기반이 없습니다. 회사의 실적은 상담원, 즉 인력에 100%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콜센터 관리자들은 상담원들을 다그쳐서 원청이 원하는 실적을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콜센터 상담원이 들려준 구체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콜센터 안에는 상황판이 있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이 이뤄져요. 근데 상황판을 봤더니, 들어오는 콜 수가 10개인데 받는 요청전화부름받음코를콜이콜 5개밖에 안되는 거예요. 그러면 전화 빨리 받으라고 다그치는 거죠. 관리자도 응대율이 안 나오면 자기가 (원청에서) 어떻게 당할 줄 아니까. 계속 상담사들을 쪼는 거예요."

이렇듯 사람을 압박하며 실적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이 과정에서 폭언, 인격모독까지 하며 상담원들을 압박하는 관리자들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원청 책임은? … '대부분 나 몰라라'

원청의 실적 압박이 결국 콜센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원청의 책임은 없을까요? 대부분의 원청 업체들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원청 업체와 상담원이 직접 고용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윤선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은 "어떤 인력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원청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콜센터 직장 내 괴롭힘 원인에 관해 설명 중인 이윤선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콜센터 직장 내 괴롭힘 원인에 관해 설명 중인 이윤선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이 지부장은 "콜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생길 경우, 원청에 도의적 책임을 물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재고해 보겠다' 정도로 끝내고, 아예 회신을 안 하거나 '고용 관계가 없다'는 답변을 한다"고 말합니다. 원청과 하청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희생을 당해도, 상담원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은 없는 겁니다.

전국 콜센터 상담원 40만 명, 처우는 '제자리걸음'

직장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KBS를 찾은 콜센터 상담원 A씨는 "제2의, 제3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고, 제 인권을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A씨처럼 인권을 찾고 싶은 콜센터 상담원들은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열악한 노동 환경을 조사해달라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이보다 더 앞서 2018년 10월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고, 올해 7월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40만 명에 이르는 전국의 콜센터 상담원들의 한숨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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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젖은 콜센터]② “화장실도 못 가”…반복되는 ‘콜센터 괴롭힘’ 왜?
    • 입력 2019-12-24 16:08:40
    • 수정2019-12-27 15:33:43
    취재K
콜센터 상담원들에 대한 '직장 내 갑질'. 어쩌면 이런 괴롭힘 피해는 상사 개인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비슷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상담원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혹시 콜센터 상담 업무의 특성과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은 아닐까요.


콜센터 업무 메신저. 자리 비우는 사람을 1명으로 제한한다는 공지.
"13명 중 이석(자리 비움)은 1명으로 합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

한 팀에 13명이 근무하는 콜센터. 업무 메신저에 '이석은 한 명으로 제한한다'는 공지가 올라옵니다.

'이석'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리에서 떠남' 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입니다. 콜센터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리를 비우는 일, 즉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것 모두 이석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콜센터에서는 위 공지처럼 한 팀에서 몇 명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는지 제한을 둡니다. 때문에 상담원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한 콜센터에서는 1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바로 상급자에게 연락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콜센터 상담원들은 화장실 가는 것까지 관리당하는 겁니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일하는 동안, 상급자들이 고객과의 통화를 수시로 엿듣기도 합니다. 통화 품질을 관리하고 평가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하니, 근무 내내 감시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성수기가 왔으니 전원 조기 출근을 하라는 지시가 갑자기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상담사들의 하루가 관리자들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담원은 그냥 참아 넘깁니다. 그들은 왜 참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상급자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가 '생명'

일단 '임금'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상담원들의 기본급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따라서 주된 수입원은 성과에 따른 수당입니다. 성과는 단순히 고객의 전화 응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를 많이 받더라도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 점수는 관리자 권한으로 얼마든지 깎일 수 있습니다. 우선 관리자는 고객과의 통화를 듣고 '정성 평가'를 하면서 점수를 깎을 수 있습니다. 말투, 고객을 대하는 태도 등 평가 항목이 주관적이다 보니 관리자의 재량권이 커집니다. 눈 밖에 난 상담원에게 낮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또 어떤 관리자는 자신과 마찰을 빚은 직원의 근태 관리를 더 꼼꼼히 체크하면서 다른 직원들보다 점수를 짜게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점수가 깎이고, 결국 상담원의 인센티브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상급자가 업무 성과 평가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기 어렵습니다.

정재호 하이텔레서비스지회 사무장은 "급여가 워낙 박봉이기 때문에, 인센티브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렇다 보니 저항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합니다.

원-하청 관계, 내리 '실적 압박'… '최종 희생자'는 콜 상담원

콜 센터 업무가 대부분 하청으로 이뤄지는 구조도 직장 내 괴롭힘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상당수 대기업 등 원청 업체는 전화 상담 업무를 콜 전문 회사에 하청 형태로 맡깁니다. 그리고 원청에서는 주기적으로 콜 업체에 대한 실적을 보고받습니다. 그 실적이라는 것은 콜 응대 수, 고객 만족도, 영업 성공률 등입니다. 이때 실적이 미비하면 나중에 콜 회사와의 계약 관계를 종료할 수도 있고, '페널티' 개념으로 원래 주기로 한 금액보다 적은 돈을 줄 수도 있습니다. 원청이 하청 업체인 콜센터를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콜 센터 입장에서는 다음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페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 원청이 제시한 기준을 맞추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콜센터 사측이 노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상담원에게 원청의 기준을 맞출 것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콜센터에는 수익과 연결되는 다른 시설이나 기반이 없습니다. 회사의 실적은 상담원, 즉 인력에 100%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콜센터 관리자들은 상담원들을 다그쳐서 원청이 원하는 실적을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콜센터 상담원이 들려준 구체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콜센터 안에는 상황판이 있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이 이뤄져요. 근데 상황판을 봤더니, 들어오는 콜 수가 10개인데 받는 요청전화부름받음코를콜이콜 5개밖에 안되는 거예요. 그러면 전화 빨리 받으라고 다그치는 거죠. 관리자도 응대율이 안 나오면 자기가 (원청에서) 어떻게 당할 줄 아니까. 계속 상담사들을 쪼는 거예요."

이렇듯 사람을 압박하며 실적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이 과정에서 폭언, 인격모독까지 하며 상담원들을 압박하는 관리자들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원청 책임은? … '대부분 나 몰라라'

원청의 실적 압박이 결국 콜센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원청의 책임은 없을까요? 대부분의 원청 업체들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원청 업체와 상담원이 직접 고용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윤선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은 "어떤 인력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원청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콜센터 직장 내 괴롭힘 원인에 관해 설명 중인 이윤선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이 지부장은 "콜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생길 경우, 원청에 도의적 책임을 물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재고해 보겠다' 정도로 끝내고, 아예 회신을 안 하거나 '고용 관계가 없다'는 답변을 한다"고 말합니다. 원청과 하청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희생을 당해도, 상담원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은 없는 겁니다.

전국 콜센터 상담원 40만 명, 처우는 '제자리걸음'

직장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KBS를 찾은 콜센터 상담원 A씨는 "제2의, 제3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고, 제 인권을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A씨처럼 인권을 찾고 싶은 콜센터 상담원들은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열악한 노동 환경을 조사해달라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이보다 더 앞서 2018년 10월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고, 올해 7월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40만 명에 이르는 전국의 콜센터 상담원들의 한숨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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