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뉴스]이번엔 남한산성…쇠말뚝 무더기로

입력 2005.10.28 (09:31) 수정 2005.10.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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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이 앞에 놓인 물건이 뭔지 궁금하시죠?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남한산성에 심어놓은 쇠말뚝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지면에 노출된 부분은 녹이 많이 슬어있죠? 이같은 쇠말뚝은 최근 남한산성에서 무려 50여개나 발견됐습니다.
한 지역에서 이처럼 많은 쇠말뚝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죠? 특히 최근 신사참배로 한.일 관계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이같은 소식은 우리 국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박지윤 아나운서. 현재 쇠말뚝은 모두 제거됐나요?

<리포트>
아닙니다. 현재도 제거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요. 워낙 정교하게 쇠말뚝을 박아 놓아서 제거 작업이 수월하지 않다고 합니다. 쇠말뚝 제거 작업 현장으로 여러분, 함께 가 보시죠.

지난 25일, 경기도 하남시 남한산성 부근에서는 일제의 소행으로 보이는 쇠말뚝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인터뷰>염상현(하남시청 건설과) : "쇠말뚝을 뽑으니까 땅이 시원하다고 하네요."

쇠말뚝 하나를 제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인원과 시간을 필요로 했는데요.

<인터뷰>방점규 (하남시청 건설과) : "(쇠말뚝을) 아주 견고하게 박았고, 뽑은 자리에는 백회가루가 있어요. 백회가루와 같이 박았기 때문에 뽑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인터뷰>염상현(하남시청 건설과) :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좋은 인물이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박은 쇠말뚝이라서 자부심을 갖고 울분을 참으며 신중하게 뽑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쇠말뚝은 모두 24개로 지난 21일, 30개가 제거된 이후에 추가로 목격된 것인데요. 1차 제거작업을 마친 시청관계자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효경(쇠말뚝 추가발견자) : "제거 마지막 날에 철수하려고 장비를 정리하다가 혹시나 (쇠말뚝이) 더 박혀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살펴봤는데, 이렇게 많이 나왔어요."

한 곳에서 이처럼 많은 쇠말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인터뷰>소윤하(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 : "같은 유형의 쇠말뚝이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이 박혀있는 것은 처음이고 놀라운 일이죠. 맑은 기운을 만들어야 하는 곳에 쇠말뚝을 박아서 그 역할을 못 하게 만든거죠."

쇠말뚝들은 그 모양이나 길이, 굵기도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땅 위로 돌출돼 부식된 상단부와 달리 말뚝 하단부는 쇠 자체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인터뷰>소윤하(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 : "부식을 방지하려고 백회가루를 사용한 것 같아요. 부식을 방지하려고 했다는 자체가 저주의 주술이죠."

남한산성 주변으로는 쇠말뚝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인터뷰>김병갑(51살/경기도 광주시 산성리) :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의 맥을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이라고 조상들에게 들었어요."

쇠말뚝은 예로부터 일제가 우리 민족의 풍수사상을 역이용해 전국 산천의 명당 자리에 지기를 끊어버릴 목적으로 박은 풍수침략의 한 증거로 여겨지는데요.

<인터뷰>서길수(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전국에 쇠말뚝을 박아놓았기 때문에 이제 장군이 나타나지 않는다, 힘 없는 민족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으로 쇠말뚝을 박은거죠."

쇠말뚝 제거 작업이 본격화 된 것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일제잔재 청산작업을 벌이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정부차원에서 제거한 쇠말뚝만도 모두 18개로 지금까지 약 200개의 쇠말뚝이 제거되었는데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쇠말뚝들이 일제의 풍수침략 용도로 쓰인 혈침이 아니라 단순한 측량용 말뚝이라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취재진이 전문가에게 물어본 결과 측량용 말뚝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인터뷰>유복모(한국측량학회 회장) : "측량은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지며 측량용 말뚝은 일정한 크기가 있고, 반드시 십자표가 있습니다. 십자표가 없는 말뚝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가치가 없어요. 그러므로 이번에 발견된 쇠말뚝을 측량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광복 60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주변 가까이에는 아직도 일제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난 95년 해체된 조선총독부 청사는 경복궁의 기를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워진 건물이었고 서울 시청 역시 일제침탈의 상징적인 건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조선왕조의 궁이었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격하시켰고 왕가의 제사를 모시던 종묘사직을 공원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있던 조선 왕족의 태실을 한 곳에 무더기로 모아 놓았는데요.

<인터뷰>서길수(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 "태실을 훼손한다는 것은 근본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태실이 위치한 곳은 명당이기 때문에 그 곳을 훼손시켜 조선의 왕통이 이어지는걸 막았던 거죠."

또한 일제는 우리의 고유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지개명까지 시행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거리인 서울시 인사동 역시 일제시대 때 바뀐 이름입니다. 인사동은 지금의 구에 해당하는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합쳐서 개명되었고 지금의 원남동과 원서동은 창경원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해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고유의 이름을 잃어버린 곳입니다.

<인터뷰>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 "지명에는 얼이 있어요. 즉, 혼이 있는거죠. 우리의 맥이 흐른다는 것과 상통하죠. (일본은) 그런 것을 단절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겁니다. 풍수맥에 말뚝을 꼽는 것과 다름없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60년. 하지만 우리 주변엔 여전히 일제의 잔재들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망언을 일삼는 이 때. 일제 과거청산은 우리가 꼭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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