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주 목요일, 올해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시험제도도 시험을 보는 학생도 예년과 다르지만 한가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언론의 보도 태도 였습니다.
수능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형화된 언론 보도는 특히 좀처럼 없어지지 않은 학벌 중심의 사회를 더욱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떠들썩한 수능 보도, 뭐가 문젠지 박진현 기자와 진단해봅니다.
<질문>
박 기자, 언론이 보여주는 수능 풍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답변>
네, 세대가 바뀌고 제도도 변했지만 언론 보도는 그대로였습니다.
올해 역시 관행적인 중계식 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 언론에 비친 수능 시험 날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녹취> “수능대박!"
<녹취> KBS (11.10) 김준범 :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후배들은 뜨겁게 선배들을 응원했습니다.”
<녹취> MBC (11.10) 조국현 : “수험생을 태운 차량과 오토바이는 아슬아슬 곡예운전도 불사합니다.”
<녹취> SBS (11.10) 문준모 : “자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하는 어머니의 기원은 언제나 간절합니다.”
후배들의 응원, 긴박한 수송작전 그리고 부모님들의 간절한 기도.
공식과 같은 이러한 장면들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작년에도,
<녹취> KBS (10.11.18) 류호성 : “응원 열기가 뜨거운 고사장 앞….”
그리고 재작년에도,
<녹취> MBC (09.11.12) 박주린 : "경찰차부터 택배 오토바이까지 열심히 실어나르고, 교문 앞에 내려서는 100m 달리기 선수가 돼 뛰어 들어갑니다."
심지어 30년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SBS (11.08) 최효안 : “고사장 밖에서 문제 잘 풀기를 기원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모습도 변치 않는 풍경입니다.“
신문들도 다름없습니다.
전국의 유명 사찰이나 기도처에서 두 손을 모은 학부모들의 모습을 지면에 실었습니다.
수능이 대학 입학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 언론들이 만들어 나가는 수능 이미지는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양정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이렇게 집중적으로 각 신문의 첫 면으로 도배되고, 그런 나라가 전무합니다, 전 세계에서. 관심도가 그렇게 많이 높을 수도 있지만,어떻게 보면 그런 관심도에 대해서 기름을 더 붓는 것처럼 언론에서 더 과대포장해서, 과대 확대해서 하는 부분이 있고요.”
언론에 의해 뜨거운 교육열로 포장된 수능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외신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카타르의 민영 방송사인 알자지라는 수능 당일, 시험장을 찾아 현장의 열기를 전했습니다.
영국의 BBC는 “한국에선 수능으로 미래의 연봉과 지위가 결정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CNN은 “한국 학생들의 지옥은 수능일에 끝나”며 “힘든 입시제도가 청소년 자살률 증가의 원인이기도 하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질문>
떠들썩하고 관행적인 보도 행태도 문제지만, 명문대 중심의 보도내용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죠?
<답변>
그렇습니다. 언론은 수능을 잘 보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부각시켰는데요.
‘명문대’, 그리고 ‘주요 학과’를 내세우며 학교와 전공 서열화에 앞장서는 모습이었습니다.
수능일이 다가오자, 신문들은 앞 다퉈 이른바 명문대생들과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공통된 내용이었습니다.
<녹취> 조선 (11.3) F1면 : "남은 일주일 동안에는 어떻게 수능시험 공부를 마무리해야 할까? 서울대 고은혜, 김새롬 양, 이상윤 군의 조언을 들어봤다."
<녹취> 중앙 (10.19) S1면 : “지금부터는 정리를 해야죠.” 이승은(한양대 의예과 1)씨가 수능을 3주 앞둔 수험생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이대윤(서울대 인문학부 1)씨는 “수능 당일 쉬는 시간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당부했다."
또, 수능이 끝나자 올해는 몇 점이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 ‘명문대 주요학과에 갈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녹취> 동아 (11.14) 1면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최상위권 대학의 주요 학과 합격선이 390점대 중반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신문은 입시학원들의 자료를 종합해 주요 대학의 예상 합격선을 표로 만들어 지면에 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능 점수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추정치에 불과한데다 이마저도 수능 점수 10% 이내의 수험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정봅니다.
또한 제시된 입시 전략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합니다.
<녹취> 조선(11월11일) A12 : “내일부터 수시 2차... 대학별 논술 유형을 정복하라”
<녹취> 중앙(11월11일) 28면 : “변별력 낮아 중상위권 비상... 수시 ‘어려운 논술’대비를”
그렇다보니 수험생들은 정작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인터뷰> 이윤영(고3) : “현실적으로 저한테는 맞지 않다고 느껴진 거죠, 공부 방법에는.”
<인터뷰> 전지수(고3) : “기사를 통해서 보는 그런 수칙들은 예전에도 한번 이런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고. 좀 피부로 와닿진 않는 것 같아요.”
때문에 수험생 전체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대학과 전공 서열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미숙(학사모 대표) : “상위권 중심으로 보도하다보면 그런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서기도 전에 열등감 등을 크게 느낄 것입니다.”
<질문>
그런데 우리 언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졸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학벌타파를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답변>
그랬습니다. 최근 대기업과 은행권, 공기업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 확대 발표가 이어지면서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요.
당시 언론은 ‘고졸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녹취> MBC (6.14) 한동수 : “기업은행은 15년 만에 고졸 사원을 선발했고, 국민은행도 올해 8명을 채용할 예정입니다.”
지난 6월, 기업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명맥이 끊긴 고졸 행원 채용을 재개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은행권은 앞으로 3년 동안 전체 채용인원의 12%인 2,700명을 고졸자로 뽑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도 공직과 공기업에 고졸자 취업을 대폭 확대하라고 지시하면서, 고졸 인력 채용 바람은 공공기관과 일반기업체로 확산됐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런 움직임을 반기며, 학벌과 상관없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취> 동아 (7.25) 31면 오피니언 :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서고 대졸 백수가 넘쳐나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고교만 졸업해도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우리는 민간에 앞서 공공기관이 먼저 고졸자를 채용해 대학 졸업장의 거품을 뺄 필요가 있다."
<녹취> 조선 (9.14) 35면 오피니언 : "대학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대우 받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면 비싼 등록금 바쳐가면서 대학 가겠다는 학생들은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먼저 학벌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중앙 (7.15) 30면 사설 :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더 힘을 쏟는동시에 문호를 고졸자에게 더 열어야 한다. 그것이 쓸데없는 학력 인플레를 낮추는 방법이다. 대졸 실업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고졸자들이 쑥쑥 취직하는 걸 보여줘야 사회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논조는 수능이 가까워지면서 점차 옅어졌습니다.
<녹취> “우리는 투명 가방끈이다!”
<녹취> 김재홍(고등학교 3학년) : “우리 뒷세대들한테 이 체제를 물려줄 면목이 없습니다.”
대학 간판 위주의 학벌 사회를 바꾸자며 모인 ‘투명 가방끈 모임’.
이들은 수능 당일, 시험보기를 거부하고 청계광장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주목한 언론사는 드물었습니다.
고졸 시대를 앞당기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언론의 태도가 급변한 것입니다.
고졸 시대 대신 대학 찬가를 부르고 그것도 수도권 중심의 주요대학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인터뷰> 강미은(숙명여대 언론학과 교수) : “언론이 당연히 해야될 사회에 대한 역할이 있을 텐데요. 그 역할 속에서 조직의 성장과 이윤 추구를 위한 실리가 충돌울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거죠. 그래서 좋은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다가도 막상 수능처럼 예민한 부분이 닥치면 어떻게 하면 독자를 끌어올까에 초점을 맞춰서 보도를 하다보니까 큰 그림 작은 그림이 뒤엉켜서 독자들은 그냥 혼란스럽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질문>
또 한 가지, 언론이 수험생의 유의점이나 진학 관련 보도를 많이 쏟아냈는데… 지나치게 사설학원의 충고에만 귀를 기울였다고요?
<답변>
네, 대다수의 언론사들이 학교 교사보다 사설학원 진학 상담사의 조언을 전하는 데 더 많이 할애했습니다.
이 같은 보도 태도는 결국 사교육 기관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비평은 수능이 치러지기 한 달 전부터 이번 주 수요일까지의 수능 관련 보도를 분석해봤습니다.
지상파 주요뉴스의 경우 학습 전략이나, 입시 전략에 대한 조언을 해준 학원 강사와 학교 교사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5대 일간지는, 학원 강사의 발언을 인용한 경우가 학교 교사의 두 배에 가까웠습니다.
공교육 현장에도 입시와 관련한 전문 교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충고에는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겁니다.
학교에서 10년 넘게 고3 학생들을 담당해온 선생님은, 이런 보도로 인해 결국 학교 진학 지도가 위축된다고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곽영주(교사) : “언론에서 이렇게 자료들이 편중되다보면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 입시상담을 외부의 사설기관에 의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땐 학부모님들의 사교육비가 증가되고, 학교에서는 공교육의 위축 문제가 걱정스럽습니다.”
언론이 특정 학원의 이름과 진학 상담사의 사진까지 내세워 사설학원의 목소리를 충실히 보도하는 건 광고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설학원 진학 상담사의 조언이 담긴 기사와 해당 학원의 광고가 같은 날 함께 실린 사례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인터뷰> 양정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언론에서 사교육 관련된 홍보를 해주는 부분,거기에 따라서 사교육 기관들이 언론에 일종의 광고라든지 반복되기 때문에 사교육과 언론과의 유착관계 부분에 대한 것은 이제는 조금 해결을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그 결과 사설 학원들이 주최하는 입시 설명회는 만 명이 넘게 모이기도 하고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들은 특별 면담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녹취> 경향(11월14일 11면) : “이 부모는 “다들 입시 업체에서 컨설팅을 받는데 한 번에 20만원 정도로 보통 5번은 받는 것 같다. 100만원은 든다”고 덧붙였다.”
수능 시험을 전후해서 수험생들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수능에 매몰된 경쟁사회 또는 학벌사회가 가져다준 부작용임에도 언론들은 단순 사건사고로 치부했습니다.
언론이 입시 점수와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커트라인에 매몰되기 보다는 수능을 통해 우리 교육의 문제점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