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 마이너스일 때도 있어…거액 차명계좌 양태와 배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둘러싼 논란이 조현오(57) 전 경찰청장의 법정구속으로 2년6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20일 "피고인이 지목한 계좌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청와대 행정관 2명 명의의 시중은행 계좌 4개를 지목했지만, 거래 내역 등으로 미뤄 도저히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관련 의혹은 2010년 3월31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조 전 청장이 서울청 소속 5개 기동단 팀장급 이상 460여명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내뱉은 발언으로 인해 불거졌다.
조 전 청장은 당시 "바로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누구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의혹이었다.
조 전 청장은 검찰 조사와 법정 진술에서 "2010년 3월께 나보다 정보력이 훨씬 뛰어나고 믿을만한 유력인사에게 우연히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다"며 "강연에서 말한 것은 그에게 들은 그대로"라고 발언의 근거를 설명했다.
그는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후 같은 해 12월 검찰 관계자 2명에게서 더 자세한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추가로 진술했다.
조 전 청장은 "유력인사나 검찰 관계자가 누군지는 절대 밝힐 수 없다"면서 대신 법정에서 청와대 전 행정관 박모씨와 윤모씨 명의의 시중은행 계좌 4개에 대한 검찰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는 이 계좌들이 강연에서 언급한 계좌이며,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이전에 발행된 헌 수표를 계좌에 입금해뒀다가 퇴임 후 꺼내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의 돈이 계좌에 입금된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판사는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사는 두 행정관 명의 계좌의 잔고가 평균 수백만원대에 불과했고 심지어 마이너스일 때도 있었던 점, 초등학교 급식비 등 소규모 지출이 많았고 거액이 입금된 것은 개인 전세보증금 등 일부였던 점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윤 전 행정관은 지난 6일 증인신문에서 "피고인이 지목한 계좌는 내 개인계좌였다"며 "간혹 권양숙 여사가 은행에 직접 갈 수 없어서 현금을 받고 대신 돈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에 이 판사는 "권양숙 여사의 비서였던 행정관들이 사적인 용도로 계좌를 사용했을 수 있다"며 "이는 피고인이 말한 '거액의 차명계좌' 모습과는 완전히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의 근거 없는 발언으로 국민 사이에 너무나도 큰 국론 분열이 일어났고 검찰도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게 됐다"며 "차명계좌가 진정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