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6일 공개한 추가경정 예산안은 역대 두 번째인 17조3천억원 규모다.
국회 동의 없이 가능한 '기금 증액 2조원' 카드도 함께 꺼내 들었다.
이미 증액을 확정한 공공기관 투자 증액분 1조원을 합하면 총 20조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4·1 부동산대책과 함께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정책 패키지 중에 한국은행의 금리인하가 빠진 점을 아쉬워 하지만, 악화일로인 고용시장을 지탱하고 경기 침체와 엔저 현상에 따른 중소·수출기업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발을 기대했다.
◇역대 2위 추경 17조3천억에 기금 2조 얹어 19조3천억원
이번 추경안은 종전과 달리 복잡하게 구성됐다.
세출을 늘리는 추경에 익숙하지만 이번에는 세입을 확 줄이고 드물게 볼 수 있는 기존 세출의 감액도 함께 이뤄졌기 때문이다.
추경은 세출 증가와 세입 감소에 따른 재원 조달 규모를 뜻한다.
총 17조3천억원(세입경정 12조원+세출증액 5조3천억원)은 2009년 슈퍼추경(28조4천억원)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세입 쪽에선 예고한 대로 12조원을 깎았다. 애초 예상보다 세금수입이 6조원 줄고 세외수입에서도 산업·기업은행의 주식매각이 여의치 않게 된 점을 고려해 6조원을 쳐낸 것이다.
12조원은 역대 세입 감액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추경에서 11조2천억원을 줄인 게 종전 최대치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차 추경 때는 7조2천억원을 잘라냈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을 예산편성 당시 4.0%에서 작년 12월 3.0%, 지난달 경제전망 수정에서 2.3%로 낮춘 여파다. 연초부터 세수에는 비상등이 켜진 바 있다.
세입을 줄이는 이유는 기존 세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채발행 한도는 늘려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을 보전해줘야 연말에 생길 수 있는 소규모 '재정 절벽'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세출 쪽에서는 경기 부양과 민생 안정을 위해 5조3천억원을 늘렸다.
세출 증액 규모로는 2009년 추경의 17조2천억원, 1998년 2차 추경의 6조7천억원 다음으로 많다.
그러나 국회 동의 없이 가능한 기금에서 2조원 증액했다. 부동산대책을 돕는 국민주택기금 증액이 대표적이다. 이를 포함하면 세출에서 7조3천억원이 늘게 된다. 역대 두번째로 많은 준(準) 슈퍼급 세출 증액이다.
기금 증액은 20% 이내이면 국회 동의 없이 증액할 수 있지만 20%를 넘으면 국회로부터 기금관리계획 변경안을 승인받아야 한다. 순수한 세출증액분 5조3천억원 중에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기금 증액안이 9천억원 포함돼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세출에서 3천억원을 깎은 것이다. 에너지특별회계에서 에너지·자원 공기업에 공급하려던 출자액 일부를 줄였다. 이는 세입에서 한국은행 잉여금을 2조5천억원에서 2조7천억원으로 2천억원 증액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빠듯한 재정사정에서 재정 건전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추경 재원을 여기저기서 끌어다 다원화한 대표적 사례다.
◇4·1대책과 시너지 낼지 주목…정부 "올해 성장률 0.3%포인트↑효과"
이번 추경은 기존 4·1 부동산 대책, 공공기관 투자 증액과 맞물려 있다.
4·1 대책의 핵심인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는 15일 국회 '여야정 협의체'에서 집값기준(9억원이하)을 6억원으로 낮추는데 공감대를 이루고 면적기준(85㎡이하)을 폐지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다.
가격기준을 낮추면 부자감세 논란을 피할 수 있고 면적 기준을 없애면 지방의 중대형 평수까지 대상에 포함돼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29개 주요 공공기관의 투자는 52조9천억원으로 애초보다 1조원 늘렸다.
여기에 민생 안정과 경기 회복에 초점을 맞춘 추경이 가세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추경으로 민생안정 쪽에 3조원을 투입하다 보니 보건복지노동 분야 총지출은 애초보다 2조원 늘어난 99조4천억원이 됐다. 100조원 문턱까지 올라선 것이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에 3천억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함에 따라 이를 지렛대로 총 10조5천원의 금융 지원이 가능해진다. 엔저 현상과 경기 침체로 어려운 중소기업과 수출기업엔 단비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추경의 실질 성장률 제고 효과를 올해 0.3%포인트, 내년 0.4%포인트로 봤다. 지출 확대로 올해와 내년에 각각 0.1%포인트와 0.2%포인트, 세입 보전으로 0.2%포인트씩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성장률 전망은 기존 2.3%에서 2.6%로 올라가는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시장에 경기회복 기대를 주기에 충분하다. 경기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하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3%대 성장을 회복해 연간 전체로는 2%대 후반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은 취업자 증가 폭이 월 20만명대로 떨어진 고용시장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연간 4만명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드는 효과를 내면서 취업자 증가 수가 연간 25만명에서 29만명까지 늘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