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과격무장조직 IS에 의한 일본인 인질사태는 결국 2명의 인질이 모두 참혹하게 살해되는 최악의 결과로 끝나면서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접한 가족들의 반응과 언론의 보도 행태는 다른 관점에서 기자에게 상당히 생경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1일 IS가 그간 인질로 잡고 있던 프리랜서 언론인 고토 겐지씨를 살해했다는 영상을 공개한 뒤 고토씨의 어머니가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사실 본 기자에겐 그 시점에 어머니가 기자회견에 나선 것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왜냐하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과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언론이나 당사자나 회견이 무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더욱 생소하게 느껴진 것은 고토씨 어머니의 첫 발언이었습니다.
“제 아들 겐지로 인해 여러분 모두에게 많은 걱정과 고생을 끼친 것에 대해 깊이 사죄드립니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고토씨 어머니는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가장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죄했습니다. 지난달 25일 고토씨와 함께 인질로 잡혀 있던 유카와씨가 앞서 살해당한 후 NHK 인터뷰에 응한 유카와씨 아버지의 첫 마디도
“모든 분들게 크게 폐를 끼쳐 정말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극한 상황에서 놀랍도록 차분하게 일본 국민을 향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에겐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본사회엔 다른 사람들에게
“메이와쿠” 즉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강한 사회규범이 존재합니다.
학자에 따라 에도시대의 통치관행에서 그 뿌리를 찾기도 하는데요. 당시 통치자들은 구성원들을 각종 계급과 직종으로 서열화하고 각자 직분을 다하도록 강력한 규율을 동원해 통제했습니다. 정해진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통치자가 정한 규율을 어길 경우 엄격한 처벌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런 관행은 촌락단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공동체의 규범을 위반하는 경우 해당 주민이나 가족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처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문화의 ‘이지메’(왕따) 관행이 이같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개항과 근대화를 거쳐 현대사회에 들어선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사회규범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일본의 가정에선 어릴 때부터 이 규범을 가장 중요한 생활원칙으로 강조하며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규범도 결국 같은 맥락인데요. 그 이면에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책임을 우선 강조하는 일본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달 초 니가타에서 40대 남녀 3명이 스키장의 정규코스를 벗어나 스노보드를 타다가 조난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40여시간만에 경찰 헬기에 극적으로 구조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는데요. 미처 몸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은 곧장 기자회견에 나와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 사죄했습니다. 기자의 눈엔 그 모습 역시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졌는데요.
언론이 전하는 공개사죄를 접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정한 규칙을 지켜야한다는 일본 특유의 강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은 다른 민주주의 나라들과는 상당히 다른 문화적 관행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생각해 볼만한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