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타결’ 김영란법…재계 혼란 속 대응전략 마련 분주

입력 2015.03.02 (23:24)

수정 2015.03.03 (08:04)

여야가 2일 원내대표 간 담판을 통해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제정안을 3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하자 재계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과 함께 대응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정당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오히려 정치권과 기업 간 어두운 연결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 "기업활동 위축" 우려…유통업계 타격 불가피 = 거듭된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사실상 통과되자 재계에서는 앞으로 대관 접촉 관행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기업의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공무원을 만나는 것은 청탁을 하고 뇌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사람을 만나면 밥을 먹고 돈을 쓰게 되는데 어떻게 그걸 100만원 미만으로 따져가면서 쓰라는건지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접대문화에도 여러가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예상된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다. 공무원을 만나는 일 자체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업인과 정부 관계자의 정상적인 만남마저 위축시키게 돼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건 해도 되는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경영의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이 오히려 불법과 편법을 조장하고 정치권에 기업이 휘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법이 발효되면 불법적인 도청, 도촬이 판을 치게 되면서 마구잡이식의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된다"면서 "기업 손보기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어 이를 방지할 수단이 먼저 구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지만 경제단체들은 법안의 방향성과 취지에 대해서는 반대하기 어려운 만큼 별도 성명이나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별달리 입장을 정한 바 없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 "법안 내용을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예외적으로 허용)으로 바꾸면서 예전보다 부정청탁 등 개념의 모호성이 한결 줄어들긴 했으나 실제 법을 집행하는 과정을 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가뜩이나 내수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김영란법 통과로 선물 수요나 자영업자의 음식점 영업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백화점의 경우 일단 상품권과 선물 판매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상품권이나 선물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수요가 몰리는데 김영란법 통과로 주요 구입처인 법인들의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상품권의 경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현금에 비해 거부감이 적어서 수요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명절 선물 수요 중 법인의 단체구매가 30∼40% 정도를 차지한다"면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법인의 선물 수요가 위축되면 백화점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백화점에 선물을 주로 납품하는 중소기업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응방안 마련 잰걸음…투명사회 계기 기대도 =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려는 재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달 말 윤리경영임원협의회를 열고 김영란법의 입법 동향과 함께 법안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 바람직한 대처 방안을 공유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김영란법 시대를 맞아 기업의 윤리경영 시스템을 세밀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예전처럼 물량 위주로 공무원을 무조건 접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를 갖추고 공무원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설명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기업 영업이나 경영방식에 변화와 혼란이 있겠지만 시행이 현실로 다가온 만큼 기업들도 제도에 맞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단 법을 시행해보고 기업 경영상 어려움이나 부작용이 있다면 제도 변화를 건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법이 시행되면 적용 과정에서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오히려 경제계는 물론 사회 전체가 보다 투명해지고 깨끗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비슷한 예가 2004년 통과된 정치자금법 개정안, 일명 '오세훈법'이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 후원금 기탁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오히려 시행 이후 기업과 정치 간 어두운 연결고리를 끊는데 도움이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세훈법' 당시의 우려 등을 감안해보면 김영란법도 실제 시행된 뒤 영향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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