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무대 입성 2년째, 막내구단 OK저축은행이 일으킨 돌풍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이어졌다.
가슴에 '기적을 일으키자'라는 문구를 달고 뛴 OK 저축은행 선수들이 8연패를 노리던 최강 삼성화재를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물론, 김세진(41) OK저축은행 감독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놀라워하는 대이변이었다.
OK저축은행은 1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3월 7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사회를 열고 드림식스 구단의 인수기업을 선정했다.
한 시즌 동안 드림식스를 지원하며 네이밍 사용권을 얻은 러시앤캐시의 모기업 아프로서비스 그룹은 우리금융지주와 경쟁했으나, KOVO 이사회는 우리금융지주의 손을 들었다.
인수에 실패한 러시앤캐시는 제7구단 창단을 선언했고, 의욕적으로 팀을 구성했다.
2013년 8월 열린 신인지명회의에서 1라운드 2순위부터 2라운드 2순위까지 총 8명에 대한 지명권을 얻은 러시앤캐시는 경기대 트리오 '세터 이민규-레프트 송희채-레프트 송명근'을 한꺼번에 영입했다.
러시앤캐시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첫 시즌(2013-2014)의 출발은 참혹했다.
개막과 동시에 8연패 늪에 빠진 러시앤캐시는 2라운드 3번째 경기인 2013년 12월 5일 LIG손해보험와 경기에서야 시즌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패배의 쓴맛을 보며 젊은 선수들이 성장했다.
최연소 사령탑 김세진 감독과 젊은 선수들은 매 경기를 함께 복기하며 실수를 줄여나갔다. 동시에 "이기고 싶다"는 의욕을 키웠다.
러시앤캐시는 3∼6라운드를 매 라운드 3승 3패로 마치며 한국전력을 밀어내고 7개 구단 중 6위에 올랐다.
OK저축은행으로 팀 명을 바꾸고 새 출발 하면서 분위기도 달라졌다.
1라운드 5승 1패로 1위에 오른 OK저축은행은 6라운드 초반까지 삼성화재와 선두 경쟁을 펼쳤고, 정규리그 2위로 창단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OK저축은행이 정규리그에서 일으킨 바람은 한국전력과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으로 변했고, 삼성화재와 격돌한 챔피언결정전에서는 A급 태풍이 됐다.
돌풍과 태풍의 근원지는 OK저축은행 구단 내부였다.
경기대 3학년 재학 중이던 2013년 신인 지명회의에 나서 러시앤캐시 창단 멤버로 합류한 이민규·송명근·이민규는 경기를 더할수록 성장했다.
2013-2014시즌 총 416점을 올렸던 레프트 송명근은 이번 시즌 514득점하며 팀의 확실한 토종 에이스로 우뚝 섰다.
수비형 레프트 송희채는 수비력뿐 아니라, 공격과 블로킹까지 일취월장했다.
2013-2014시즌 155득점, 블로킹 성공 24개를 기록한 송희채는 이번 시즌 259득점, 65블로킹을 기록했다.
이민규의 토스는 더 빠르고, 노련해졌다. 김세진 감독이 "차기 국가대표 주전 세터"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여기에 리베로 정성현이 서브 리시브 성공률을 63.04%(지난 시즌 57.9%)까지 끌어올리면서 수비가 한결 탄탄해졌다.
로버트랜디 시몬(쿠바)의 영입은 화룡점정이었다.
세계적인 센터 출신으로, 국내 무대에서는 라이트 공격수 역할을 하면서도 센터가 가진 장점도 선보인 시몬 덕에 OK저축은행은 위기에도 강한 팀으로 거듭났다.
젊은 사령탑 김세진 감독은 '엄한 아버지'와 '친근한 형님', 두 가지 표정을 수시로 바꾸며 선수단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네가 그렇게 배구를 잘하나"라고 꾸짖었지만, 최선을 다한 뒤 나온 실수에는 "나도 현역 시절에 실수 많이 했어"라고 선수의 마음을 매만졌다.
현역 시절 '한국 최고의 수비형 레프트'로 꼽힌 석진욱 코치는 강훈련으로 OK저축은행 리시브 라인을 국내 최정상급으로 조련했다.
모기업은 기존 구단도 놀랄 정도의 확실한 '포상'을 약속하고 지키며 선수단의 의욕을 더 키웠다.
'경험 부족'은 젊은 선수단의 패기로 떨쳐냈다. '플레이오프를 거친 체력 문제'도 젊은 선수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 프로배구에 OK저축은행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