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린교’ 추정 돌다리 발견

입력 2009.09.14 (22:09) 수정 2009.09.1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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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걸었던 돌다리, 기린교는 그동안 겸재 정선의 그림 안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요.
이 기린교가 발견됐습니다. 이중근 기자입니다.

<리포트>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져있는 인왕산.

인왕산 자락의 옥인동은 예로부터 계곡 물이 맑고 물소리가 아름다워 조선시대에는 수성동이라 불렸습니다.

조선 영조때 만든 한양도성도에는 수성동 계곡에 기린교라는 돌다리가 표시돼 있습니다.

조선전기 시서화에 능했던 안평대군의 집터에 있던 다립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 계곡에도 기린교가 그려져 있습니다.

60년대까지 전해지다 도시개발로 사라진 것으로만 알았던 이 기린교로 보이는 다리가 발견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흙에 덮이고 철제 난간이 생겼지만 계곡 아래쪽에서 보면 돌다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이 3.7미터, 넓이 30센티미터. 주변에서 구했을 법한 긴돌 두개로 만든 자연과 어우러진 옛 기린교 모습 그대롭니다.

<인터뷰> 나신균(서울 종로구청 학예사) : "옛 문헌과 현장 답사를 통해 이 다리가 조선시대 기린교라는 것을 확인."

조선시대 서울에 만든 다리는 모두 80여 개.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살아남은 작은 돌다리가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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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기린교’ 추정 돌다리 발견
    • 입력 2009-09-14 21:35:31
    • 수정2009-09-15 07: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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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걸었던 돌다리, 기린교는 그동안 겸재 정선의 그림 안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요. 이 기린교가 발견됐습니다. 이중근 기자입니다. <리포트>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져있는 인왕산. 인왕산 자락의 옥인동은 예로부터 계곡 물이 맑고 물소리가 아름다워 조선시대에는 수성동이라 불렸습니다. 조선 영조때 만든 한양도성도에는 수성동 계곡에 기린교라는 돌다리가 표시돼 있습니다. 조선전기 시서화에 능했던 안평대군의 집터에 있던 다립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 계곡에도 기린교가 그려져 있습니다. 60년대까지 전해지다 도시개발로 사라진 것으로만 알았던 이 기린교로 보이는 다리가 발견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흙에 덮이고 철제 난간이 생겼지만 계곡 아래쪽에서 보면 돌다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이 3.7미터, 넓이 30센티미터. 주변에서 구했을 법한 긴돌 두개로 만든 자연과 어우러진 옛 기린교 모습 그대롭니다. <인터뷰> 나신균(서울 종로구청 학예사) : "옛 문헌과 현장 답사를 통해 이 다리가 조선시대 기린교라는 것을 확인." 조선시대 서울에 만든 다리는 모두 80여 개.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살아남은 작은 돌다리가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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