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북한, 생존 위기 속 ‘핵개발’ 선택
입력 2009.10.3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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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한이 공산권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며 국제 사회로 지평을 넓힌반면, 북한은 고립감 속에, 생존에 위기를 느끼고 핵개발에 본격 나서게 됩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올림픽 개최 1년 전 북한은 김현희를 보내 대한항공기를 폭파했습니다.
<녹취>김현희(대한항공기 폭파범) : "이같은 폭력적이고 무의미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바랍니다)"
북한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림픽은 동서진영이 모두 참여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한국은 공산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수교합니다.
폴란드,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소련과의 수교는 북한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외교 성과를 상쇄시키고 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일본 등 서방과의 교섭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폭파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북한과 어느 누구도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고립과 체제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핵개발이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기존의 5 메가와트 원자로에 이어 1989년 200 메가와트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박철언(전 정무장관) : "극도의 좌절감에서 1989년에 북한정권은 핵개발이라는 마지막 수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분단 이후 치열하게 경쟁하던 남한과 북한은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쪽은 국제사회로 지평을 넓혔고, 다른 한쪽은 위상과 입지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남한이 공산권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며 국제 사회로 지평을 넓힌반면, 북한은 고립감 속에, 생존에 위기를 느끼고 핵개발에 본격 나서게 됩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올림픽 개최 1년 전 북한은 김현희를 보내 대한항공기를 폭파했습니다.
<녹취>김현희(대한항공기 폭파범) : "이같은 폭력적이고 무의미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바랍니다)"
북한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림픽은 동서진영이 모두 참여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한국은 공산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수교합니다.
폴란드,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소련과의 수교는 북한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외교 성과를 상쇄시키고 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일본 등 서방과의 교섭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폭파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북한과 어느 누구도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고립과 체제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핵개발이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기존의 5 메가와트 원자로에 이어 1989년 200 메가와트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박철언(전 정무장관) : "극도의 좌절감에서 1989년에 북한정권은 핵개발이라는 마지막 수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분단 이후 치열하게 경쟁하던 남한과 북한은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쪽은 국제사회로 지평을 넓혔고, 다른 한쪽은 위상과 입지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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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된 북한, 생존 위기 속 ‘핵개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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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9-10-30 21:00:17
<앵커 멘트>
남한이 공산권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며 국제 사회로 지평을 넓힌반면, 북한은 고립감 속에, 생존에 위기를 느끼고 핵개발에 본격 나서게 됩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올림픽 개최 1년 전 북한은 김현희를 보내 대한항공기를 폭파했습니다.
<녹취>김현희(대한항공기 폭파범) : "이같은 폭력적이고 무의미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바랍니다)"
북한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림픽은 동서진영이 모두 참여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한국은 공산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수교합니다.
폴란드,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소련과의 수교는 북한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외교 성과를 상쇄시키고 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일본 등 서방과의 교섭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폭파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북한과 어느 누구도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고립과 체제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핵개발이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기존의 5 메가와트 원자로에 이어 1989년 200 메가와트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박철언(전 정무장관) : "극도의 좌절감에서 1989년에 북한정권은 핵개발이라는 마지막 수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분단 이후 치열하게 경쟁하던 남한과 북한은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쪽은 국제사회로 지평을 넓혔고, 다른 한쪽은 위상과 입지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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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기자 chungi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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