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법정 스님 입적 이후 스님의 소박한 장례의식은 많은 이들에게 스님의 생애만큼이나 잔잔한 감동을 전했습니다.
문화과학팀 심수련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49재의 초재가 열린 지난 주, 스님의 유언이 공개됐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이 남긴 책은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아 시중에서 줄줄이 품절되고 있는데요.
유언으로 공개된 스님의 뜻 역시 '절판'이었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은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기 위해 절판을 당부했던 법정 스님의 유언이 공증된 문서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유언은 지난 17일 초재가 열린 길상사에서 공개됐는데요.
불가에서는 '구업'이라고 하죠. 법정스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출판물을 말빚이라고 말하며 절판을 당부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또 자신이 남긴 게 있다면 생전에 몸담았던 봉사단체 '맑고 향기롭게'에 주라고 말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언제든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법적으로 출판권은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만큼 절판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질문> 법정스님의 다비식 또한 또 다른 무소유의 실천이셨죠. 불가의 관례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답변>
큰 스님들의 장례는 7일장이 일반적인데 법정 스님의 장례는 3일장에, 다비절차도 매우 간결했습니다.
지난 14일 송광사 문수전을 떠나 스님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불교의 장례에서 쓰는 흰색 연꽃 하나 볼 수 없었고 영정사진과 비구법정이라고 쓴 위패가 전부였습니다.
큰 스님들이 입적하는 경우 법구를 모시는 꽃상여와 그 뒤를 잇는 수천 장의 만장이 뒤따르는게 관례이지만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모든 형식과 절차가 생략됐습니다.
화장을 하기 위한 다비단도 스님의 성품처럼 소박했고 헌화나 독경 같은 절차 없이 불을 붙이는 거화 의식이 바로 시작됐습니다.
다비식은 고인의 뜻 그대로 간결했지만 추모객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더 큰 아픔으로 슬퍼했습니다.
유언대로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고 유골은 49재 뒤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 뿌려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법정스님은 구도자이자 실천가로서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신분인데요. 우리 시대에 법정 스님의 입적이 남긴 것은 어떤걸까요?
<답변>
법정 스님의 일생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의 살아생전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법정 스님: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법정스님은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에서 스님은 잔솔깨비로 군불을 때고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로 생활하셨습니다.
스님은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의 오두막으로 홀연히 떠납니다.
아끼고 즐겨 읽던 책에서 조차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마저도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셨습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 -('아름다운 마무리' 中)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하셨는데요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법정스님은 1993년부터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이끌기도 하셨는데요.
무의탁 노인과 결식아동, 실직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며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 샘물같은 나눔을 전파하셨습니다.
스님이 출간한 30여 권 책 인세의 대부분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지만 회원들조차 스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지 못할만큼 나눔의 자세를 일깨운 분이기도 합니다.
불꽃과 함께 육신은 떠났지만 버리고 또 버리는 비움의 정신은 스님이 떠나신 후 더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법정 스님 입적 이후 스님의 소박한 장례의식은 많은 이들에게 스님의 생애만큼이나 잔잔한 감동을 전했습니다.
문화과학팀 심수련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49재의 초재가 열린 지난 주, 스님의 유언이 공개됐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이 남긴 책은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아 시중에서 줄줄이 품절되고 있는데요.
유언으로 공개된 스님의 뜻 역시 '절판'이었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은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기 위해 절판을 당부했던 법정 스님의 유언이 공증된 문서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유언은 지난 17일 초재가 열린 길상사에서 공개됐는데요.
불가에서는 '구업'이라고 하죠. 법정스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출판물을 말빚이라고 말하며 절판을 당부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또 자신이 남긴 게 있다면 생전에 몸담았던 봉사단체 '맑고 향기롭게'에 주라고 말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언제든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법적으로 출판권은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만큼 절판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질문> 법정스님의 다비식 또한 또 다른 무소유의 실천이셨죠. 불가의 관례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답변>
큰 스님들의 장례는 7일장이 일반적인데 법정 스님의 장례는 3일장에, 다비절차도 매우 간결했습니다.
지난 14일 송광사 문수전을 떠나 스님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불교의 장례에서 쓰는 흰색 연꽃 하나 볼 수 없었고 영정사진과 비구법정이라고 쓴 위패가 전부였습니다.
큰 스님들이 입적하는 경우 법구를 모시는 꽃상여와 그 뒤를 잇는 수천 장의 만장이 뒤따르는게 관례이지만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모든 형식과 절차가 생략됐습니다.
화장을 하기 위한 다비단도 스님의 성품처럼 소박했고 헌화나 독경 같은 절차 없이 불을 붙이는 거화 의식이 바로 시작됐습니다.
다비식은 고인의 뜻 그대로 간결했지만 추모객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더 큰 아픔으로 슬퍼했습니다.
유언대로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고 유골은 49재 뒤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 뿌려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법정스님은 구도자이자 실천가로서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신분인데요. 우리 시대에 법정 스님의 입적이 남긴 것은 어떤걸까요?
<답변>
법정 스님의 일생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의 살아생전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법정 스님: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법정스님은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에서 스님은 잔솔깨비로 군불을 때고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로 생활하셨습니다.
스님은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의 오두막으로 홀연히 떠납니다.
아끼고 즐겨 읽던 책에서 조차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마저도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셨습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 -('아름다운 마무리' 中)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하셨는데요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법정스님은 1993년부터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이끌기도 하셨는데요.
무의탁 노인과 결식아동, 실직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며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 샘물같은 나눔을 전파하셨습니다.
스님이 출간한 30여 권 책 인세의 대부분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지만 회원들조차 스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지 못할만큼 나눔의 자세를 일깨운 분이기도 합니다.
불꽃과 함께 육신은 떠났지만 버리고 또 버리는 비움의 정신은 스님이 떠나신 후 더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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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보기] 법정스님이 우리 시대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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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3-21 08:06:22
<앵커 멘트>
법정 스님 입적 이후 스님의 소박한 장례의식은 많은 이들에게 스님의 생애만큼이나 잔잔한 감동을 전했습니다.
문화과학팀 심수련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49재의 초재가 열린 지난 주, 스님의 유언이 공개됐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이 남긴 책은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아 시중에서 줄줄이 품절되고 있는데요.
유언으로 공개된 스님의 뜻 역시 '절판'이었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은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기 위해 절판을 당부했던 법정 스님의 유언이 공증된 문서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유언은 지난 17일 초재가 열린 길상사에서 공개됐는데요.
불가에서는 '구업'이라고 하죠. 법정스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출판물을 말빚이라고 말하며 절판을 당부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또 자신이 남긴 게 있다면 생전에 몸담았던 봉사단체 '맑고 향기롭게'에 주라고 말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언제든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법적으로 출판권은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만큼 절판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질문> 법정스님의 다비식 또한 또 다른 무소유의 실천이셨죠. 불가의 관례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답변>
큰 스님들의 장례는 7일장이 일반적인데 법정 스님의 장례는 3일장에, 다비절차도 매우 간결했습니다.
지난 14일 송광사 문수전을 떠나 스님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불교의 장례에서 쓰는 흰색 연꽃 하나 볼 수 없었고 영정사진과 비구법정이라고 쓴 위패가 전부였습니다.
큰 스님들이 입적하는 경우 법구를 모시는 꽃상여와 그 뒤를 잇는 수천 장의 만장이 뒤따르는게 관례이지만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모든 형식과 절차가 생략됐습니다.
화장을 하기 위한 다비단도 스님의 성품처럼 소박했고 헌화나 독경 같은 절차 없이 불을 붙이는 거화 의식이 바로 시작됐습니다.
다비식은 고인의 뜻 그대로 간결했지만 추모객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더 큰 아픔으로 슬퍼했습니다.
유언대로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고 유골은 49재 뒤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 뿌려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법정스님은 구도자이자 실천가로서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신분인데요. 우리 시대에 법정 스님의 입적이 남긴 것은 어떤걸까요?
<답변>
법정 스님의 일생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의 살아생전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법정 스님: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법정스님은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에서 스님은 잔솔깨비로 군불을 때고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로 생활하셨습니다.
스님은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의 오두막으로 홀연히 떠납니다.
아끼고 즐겨 읽던 책에서 조차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마저도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셨습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 -('아름다운 마무리' 中)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하셨는데요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법정스님은 1993년부터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이끌기도 하셨는데요.
무의탁 노인과 결식아동, 실직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며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 샘물같은 나눔을 전파하셨습니다.
스님이 출간한 30여 권 책 인세의 대부분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지만 회원들조차 스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지 못할만큼 나눔의 자세를 일깨운 분이기도 합니다.
불꽃과 함께 육신은 떠났지만 버리고 또 버리는 비움의 정신은 스님이 떠나신 후 더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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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련 기자 h2olil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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