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적인 나라인데요.. 해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이 곳에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죠?
네. 극우 기독교 광신자가 폭탄을 터트리고 총을 난사해 70여 명을 살해한 건데요. 노르웨이는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인종간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다지기 위해, 다시금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아픔을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노르웨이 현지를 박장범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아름답고 조용한 북유럽의 대표 도시 오슬로, 금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도시를 감싸던 순간,
<녹취> “맥박이 뛰고 있나요?”
<녹취> “거기 아무도 없나요?”
오슬로 도심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 바로 옆에서 대형 폭탄 테러가 일어납니다. 도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피투성이 가 된 채 쓰러졌습니다. 이 폭발은 끔찍한 참사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오슬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우퇴위아 섬, 집권 노동당 청년 캠프가 열리던 이 섬에 경찰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나타납니다. 오슬로 폭탄테러를 설명하겠다며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이 남성은 곧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로 변합니다. 테러범 안드레아스 브레이비크.
<녹취> 하나 바나지니(캠프 참가자) : “그는 경찰처럼 보였어요. 복장을 갖춰입고 총도 가지고 있었어요.”
순수하고 어린 청소년들을 향해 그는 무차별 총기 난사를 시작합니다. 소년과 소녀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의 땅, 우퇴위아는 섬 이었습니다. 육지를 향해 수영하는 사람도, 바다에 막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브레이비크의 조준 사격에 희생됩니다.
<녹취> 우퇴위아섬 생존자 : “배로 달아나려고 헤엄을 치는데 범인이 저를 향해 총을 쐈어요.”
총에 맞아 숨지고 바다에 빠져 익사한 희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68명.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입니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몸 안에서 터지는 특수총알 덤덤탄을 사용했을 정도로 치밀하고 잔혹했습니다.
우퇴위야섬에서 들려온 믿기 힘든 끔찍한 소식에 노르웨이는 경악했습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된 나라에서 일어난 참극이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녹취> 라쉬 우스베크(오슬로 시민) : “충격적입니다.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습니다.”
<녹취> 오토 스텔라쉬(오슬로 시민) : “한 사람이 모두를 죽였어요. 게다가 그는 노르웨이 사람입니다.”
오슬로 대성당을 비롯해 노르웨이 전역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이 거행됐습니다. 국왕과 왕비도 울었고 의붓오빠를 잃은 왕세자빈은 오열했습니다. 거리의 시민들도 악몽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쉽사리 일상의 순간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녹취> 레모이 브아우스타(오슬로 시민) : “마와 할머니로서 얼마나 슬픈일인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녹취> 일 마샤(오슬로 시민) :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들을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테러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브레이비크.. 냉담한 표정 속에 참혹한 살인마의 광기가 숨겨져있습니다. 그는 기사단의 복장을 하고 공개 발언을 할 기회를 달라는 테러범의 요구를 오슬로 법원은 단호히 봉쇄했습니다. 법정 진술에서 이슬람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성전을 시작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집권 노동당을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합니다. 단독범행이라던 당초 진술을 뒤집고 2개의 관련 조직이 더 있다며 스스로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반 이슬람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 브레이비크의 진술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슬림을 비롯한 노르웨이 내 이민자 사회는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다네 누엔(이민자) : “이 곳에 온 이후 이런 인종주의는 처음입니다. 관용적이고 개방된 사회라 더 충격입니다.”
<녹취> 담 나레마치(이민자) : “무슨 일이 생길지 정말 무서워요. 그 조직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텐데 두렵습니다.”
이렇듯 유럽 내 소수이자 약자인 이민사회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 극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선동 수법입니다. 브레이비크도 1997년부터 10여년 동안 노르웨이 극우정당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영국의 극우단체와도 빈번한 접촉을 가진 사실도 확인돼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둔 영국 정부가 긴급국가안보회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극우주의는 지난 9.11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그 세력을 넓혀왔습니다. 특히, 최근 유럽 각국의 재정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가고 세금이 올라가는 등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이민자 배척과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득세했습니다. 극우정당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브레이비크와 같은 공격성향을 가진 개인을 부추기고 자극하고 있습니다.
<녹취> 매튜 굿윈(영국 교수) : “극우파들은 사회를 문명 충돌의 상태로 몰고가려고 합니다.”
노르웨이로서는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내부의 적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이 곳은 오슬로 시내에 있는 이슬람사원 입니다. 무슬림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테러 이후 이곳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 해온 노르웨이의 핵심 가치가 폭력과 테러에 의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 곳 이슬람 사원 내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저 남성은 바로 노르웨이의 왕세자, 그 옆에는 외무장관과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각계 지도자들이 브레이비크의 테러 이후 동요하고 있는 무슬림들을 위해 사원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상호 이해와 융합을 통해 평화로운 삶을 유지해 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노르웨이 외무장관도 테러 때문에 바뀌는 것은 없다면서 이민자 수용 정책도 변함없이 추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요나스 스퇴뢰(노르웨이 외무장관) : “이민정책에 변화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는 확고하고 우리의 열린 가치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에는 열린 가치를 지키려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테러범의 광기어린 행동에 분노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손에 손에 장미꽃을 들고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이 머리위로 힘차게 들어올린 장미는 평화와 관용, 사랑을 상징합니다. 인구 50만 명 남짓한 오슬로에서만 15만 명이 행진에 참가했고 노르웨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이 평화대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녹취> 아나 라이스턴(오슬로 시민) :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안심됩니다. 노르웨이가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러브고트(오슬로 시민) : “악마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단결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되기 시작한 이 평화 대행진에는 왕족에서부터 총리, 시민들까지 참가해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테러범의 잔혹한 범행과 폭력에 노르웨이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녹취> 스톨텐베르그(노르웨이 총리) : “악마가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조국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테러는 마침내 노벨 평화상의 땅에 상륙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끔찍한 테러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화합, 관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르웨이인은 다시 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적인 나라인데요.. 해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이 곳에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죠?
네. 극우 기독교 광신자가 폭탄을 터트리고 총을 난사해 70여 명을 살해한 건데요. 노르웨이는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인종간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다지기 위해, 다시금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아픔을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노르웨이 현지를 박장범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아름답고 조용한 북유럽의 대표 도시 오슬로, 금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도시를 감싸던 순간,
<녹취> “맥박이 뛰고 있나요?”
<녹취> “거기 아무도 없나요?”
오슬로 도심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 바로 옆에서 대형 폭탄 테러가 일어납니다. 도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피투성이 가 된 채 쓰러졌습니다. 이 폭발은 끔찍한 참사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오슬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우퇴위아 섬, 집권 노동당 청년 캠프가 열리던 이 섬에 경찰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나타납니다. 오슬로 폭탄테러를 설명하겠다며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이 남성은 곧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로 변합니다. 테러범 안드레아스 브레이비크.
<녹취> 하나 바나지니(캠프 참가자) : “그는 경찰처럼 보였어요. 복장을 갖춰입고 총도 가지고 있었어요.”
순수하고 어린 청소년들을 향해 그는 무차별 총기 난사를 시작합니다. 소년과 소녀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의 땅, 우퇴위아는 섬 이었습니다. 육지를 향해 수영하는 사람도, 바다에 막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브레이비크의 조준 사격에 희생됩니다.
<녹취> 우퇴위아섬 생존자 : “배로 달아나려고 헤엄을 치는데 범인이 저를 향해 총을 쐈어요.”
총에 맞아 숨지고 바다에 빠져 익사한 희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68명.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입니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몸 안에서 터지는 특수총알 덤덤탄을 사용했을 정도로 치밀하고 잔혹했습니다.
우퇴위야섬에서 들려온 믿기 힘든 끔찍한 소식에 노르웨이는 경악했습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된 나라에서 일어난 참극이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녹취> 라쉬 우스베크(오슬로 시민) : “충격적입니다.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습니다.”
<녹취> 오토 스텔라쉬(오슬로 시민) : “한 사람이 모두를 죽였어요. 게다가 그는 노르웨이 사람입니다.”
오슬로 대성당을 비롯해 노르웨이 전역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이 거행됐습니다. 국왕과 왕비도 울었고 의붓오빠를 잃은 왕세자빈은 오열했습니다. 거리의 시민들도 악몽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쉽사리 일상의 순간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녹취> 레모이 브아우스타(오슬로 시민) : “마와 할머니로서 얼마나 슬픈일인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녹취> 일 마샤(오슬로 시민) :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들을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테러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브레이비크.. 냉담한 표정 속에 참혹한 살인마의 광기가 숨겨져있습니다. 그는 기사단의 복장을 하고 공개 발언을 할 기회를 달라는 테러범의 요구를 오슬로 법원은 단호히 봉쇄했습니다. 법정 진술에서 이슬람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성전을 시작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집권 노동당을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합니다. 단독범행이라던 당초 진술을 뒤집고 2개의 관련 조직이 더 있다며 스스로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반 이슬람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 브레이비크의 진술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슬림을 비롯한 노르웨이 내 이민자 사회는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다네 누엔(이민자) : “이 곳에 온 이후 이런 인종주의는 처음입니다. 관용적이고 개방된 사회라 더 충격입니다.”
<녹취> 담 나레마치(이민자) : “무슨 일이 생길지 정말 무서워요. 그 조직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텐데 두렵습니다.”
이렇듯 유럽 내 소수이자 약자인 이민사회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 극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선동 수법입니다. 브레이비크도 1997년부터 10여년 동안 노르웨이 극우정당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영국의 극우단체와도 빈번한 접촉을 가진 사실도 확인돼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둔 영국 정부가 긴급국가안보회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극우주의는 지난 9.11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그 세력을 넓혀왔습니다. 특히, 최근 유럽 각국의 재정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가고 세금이 올라가는 등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이민자 배척과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득세했습니다. 극우정당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브레이비크와 같은 공격성향을 가진 개인을 부추기고 자극하고 있습니다.
<녹취> 매튜 굿윈(영국 교수) : “극우파들은 사회를 문명 충돌의 상태로 몰고가려고 합니다.”
노르웨이로서는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내부의 적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이 곳은 오슬로 시내에 있는 이슬람사원 입니다. 무슬림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테러 이후 이곳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 해온 노르웨이의 핵심 가치가 폭력과 테러에 의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 곳 이슬람 사원 내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저 남성은 바로 노르웨이의 왕세자, 그 옆에는 외무장관과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각계 지도자들이 브레이비크의 테러 이후 동요하고 있는 무슬림들을 위해 사원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상호 이해와 융합을 통해 평화로운 삶을 유지해 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노르웨이 외무장관도 테러 때문에 바뀌는 것은 없다면서 이민자 수용 정책도 변함없이 추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요나스 스퇴뢰(노르웨이 외무장관) : “이민정책에 변화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는 확고하고 우리의 열린 가치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에는 열린 가치를 지키려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테러범의 광기어린 행동에 분노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손에 손에 장미꽃을 들고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이 머리위로 힘차게 들어올린 장미는 평화와 관용, 사랑을 상징합니다. 인구 50만 명 남짓한 오슬로에서만 15만 명이 행진에 참가했고 노르웨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이 평화대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녹취> 아나 라이스턴(오슬로 시민) :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안심됩니다. 노르웨이가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러브고트(오슬로 시민) : “악마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단결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되기 시작한 이 평화 대행진에는 왕족에서부터 총리, 시민들까지 참가해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테러범의 잔혹한 범행과 폭력에 노르웨이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녹취> 스톨텐베르그(노르웨이 총리) : “악마가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조국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테러는 마침내 노벨 평화상의 땅에 상륙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끔찍한 테러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화합, 관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르웨이인은 다시 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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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리포트] 아픔을 넘어 평화와 관용으로
-
- 입력 2011-07-31 07:57:47
<앵커 멘트>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적인 나라인데요.. 해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이 곳에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죠?
네. 극우 기독교 광신자가 폭탄을 터트리고 총을 난사해 70여 명을 살해한 건데요. 노르웨이는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인종간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다지기 위해, 다시금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아픔을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노르웨이 현지를 박장범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아름답고 조용한 북유럽의 대표 도시 오슬로, 금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도시를 감싸던 순간,
<녹취> “맥박이 뛰고 있나요?”
<녹취> “거기 아무도 없나요?”
오슬로 도심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 바로 옆에서 대형 폭탄 테러가 일어납니다. 도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피투성이 가 된 채 쓰러졌습니다. 이 폭발은 끔찍한 참사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오슬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우퇴위아 섬, 집권 노동당 청년 캠프가 열리던 이 섬에 경찰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나타납니다. 오슬로 폭탄테러를 설명하겠다며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이 남성은 곧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로 변합니다. 테러범 안드레아스 브레이비크.
<녹취> 하나 바나지니(캠프 참가자) : “그는 경찰처럼 보였어요. 복장을 갖춰입고 총도 가지고 있었어요.”
순수하고 어린 청소년들을 향해 그는 무차별 총기 난사를 시작합니다. 소년과 소녀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의 땅, 우퇴위아는 섬 이었습니다. 육지를 향해 수영하는 사람도, 바다에 막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브레이비크의 조준 사격에 희생됩니다.
<녹취> 우퇴위아섬 생존자 : “배로 달아나려고 헤엄을 치는데 범인이 저를 향해 총을 쐈어요.”
총에 맞아 숨지고 바다에 빠져 익사한 희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68명.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입니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몸 안에서 터지는 특수총알 덤덤탄을 사용했을 정도로 치밀하고 잔혹했습니다.
우퇴위야섬에서 들려온 믿기 힘든 끔찍한 소식에 노르웨이는 경악했습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왕이나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개방된 나라에서 일어난 참극이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녹취> 라쉬 우스베크(오슬로 시민) : “충격적입니다.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습니다.”
<녹취> 오토 스텔라쉬(오슬로 시민) : “한 사람이 모두를 죽였어요. 게다가 그는 노르웨이 사람입니다.”
오슬로 대성당을 비롯해 노르웨이 전역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이 거행됐습니다. 국왕과 왕비도 울었고 의붓오빠를 잃은 왕세자빈은 오열했습니다. 거리의 시민들도 악몽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쉽사리 일상의 순간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녹취> 레모이 브아우스타(오슬로 시민) : “마와 할머니로서 얼마나 슬픈일인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녹취> 일 마샤(오슬로 시민) :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들을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테러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브레이비크.. 냉담한 표정 속에 참혹한 살인마의 광기가 숨겨져있습니다. 그는 기사단의 복장을 하고 공개 발언을 할 기회를 달라는 테러범의 요구를 오슬로 법원은 단호히 봉쇄했습니다. 법정 진술에서 이슬람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성전을 시작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집권 노동당을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합니다. 단독범행이라던 당초 진술을 뒤집고 2개의 관련 조직이 더 있다며 스스로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반 이슬람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 브레이비크의 진술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슬림을 비롯한 노르웨이 내 이민자 사회는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다네 누엔(이민자) : “이 곳에 온 이후 이런 인종주의는 처음입니다. 관용적이고 개방된 사회라 더 충격입니다.”
<녹취> 담 나레마치(이민자) : “무슨 일이 생길지 정말 무서워요. 그 조직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텐데 두렵습니다.”
이렇듯 유럽 내 소수이자 약자인 이민사회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 극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선동 수법입니다. 브레이비크도 1997년부터 10여년 동안 노르웨이 극우정당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영국의 극우단체와도 빈번한 접촉을 가진 사실도 확인돼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둔 영국 정부가 긴급국가안보회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극우주의는 지난 9.11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그 세력을 넓혀왔습니다. 특히, 최근 유럽 각국의 재정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가고 세금이 올라가는 등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이민자 배척과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득세했습니다. 극우정당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브레이비크와 같은 공격성향을 가진 개인을 부추기고 자극하고 있습니다.
<녹취> 매튜 굿윈(영국 교수) : “극우파들은 사회를 문명 충돌의 상태로 몰고가려고 합니다.”
노르웨이로서는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내부의 적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이 곳은 오슬로 시내에 있는 이슬람사원 입니다. 무슬림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테러 이후 이곳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 해온 노르웨이의 핵심 가치가 폭력과 테러에 의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 곳 이슬람 사원 내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저 남성은 바로 노르웨이의 왕세자, 그 옆에는 외무장관과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각계 지도자들이 브레이비크의 테러 이후 동요하고 있는 무슬림들을 위해 사원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상호 이해와 융합을 통해 평화로운 삶을 유지해 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노르웨이 외무장관도 테러 때문에 바뀌는 것은 없다면서 이민자 수용 정책도 변함없이 추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요나스 스퇴뢰(노르웨이 외무장관) : “이민정책에 변화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는 확고하고 우리의 열린 가치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에는 열린 가치를 지키려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테러범의 광기어린 행동에 분노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손에 손에 장미꽃을 들고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이 머리위로 힘차게 들어올린 장미는 평화와 관용, 사랑을 상징합니다. 인구 50만 명 남짓한 오슬로에서만 15만 명이 행진에 참가했고 노르웨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이 평화대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녹취> 아나 라이스턴(오슬로 시민) :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안심됩니다. 노르웨이가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러브고트(오슬로 시민) : “악마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단결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되기 시작한 이 평화 대행진에는 왕족에서부터 총리, 시민들까지 참가해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테러범의 잔혹한 범행과 폭력에 노르웨이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녹취> 스톨텐베르그(노르웨이 총리) : “악마가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조국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테러는 마침내 노벨 평화상의 땅에 상륙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끔찍한 테러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화합, 관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르웨이인은 다시 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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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범 기자 newsgu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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