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 없다”

입력 2014.12.20 (08:20) 수정 2014.12.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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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베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 승부수를 띄워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고, 그래서 우경화와 역사왜곡이 더 심해질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전례 없이 강경한 대일 역사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2월 13일은 77년 전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의 난징을 함락시켜 난징대학살을 시작한 날인데요.

난징에서는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일제의 만행 알리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시진핑 주석은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 없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난징 현지에서는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입증하는 영상과 자료들이 잇따라 공개돼 찾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그 현장을 김태욱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 13일.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이 맥없이 일본군에 함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찾아온 재앙, 일본군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시작된 겁니다.

그이듬해 1월말까지 6주 동안 무참히 희생된 시민은 중국 추산으로 무려 30만 명..

바로 난징대학살입니다.

당시 14살 소녀였던 천뀌이샹 할머니..

77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뀌이샹 할머니(당시 14세) : "보이는대로 다 죽였어요. 도처에 다 시신이었어요. 다리 아래에 시신이 산처럼 쌓여서, 밟고 건널 수 있을 정도였어요."

양췌이잉 할머니도 당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 4명을 잃었습니다.

희생자는 대부분 피난갈 돈이 없어 남아있던 가난한 농민들이었습니다.

<인터뷰> 양췌이잉 할머니(당시 13세) :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피난가지 못했어요. 일본군이 난징에서 난민구에 모아서 (학살했어요)"

학살의 현장에 세워진 난징대학살 희생동포 기념관..

집단 매장된 유골을 드러내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이원(초등학생) : "일본군이 우리 난징동포에게 너무 나쁜 짓을 했어요. 이걸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기념관 한 켠을 둘러싼 거대한 벽이 추모객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난징대학살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그 위에 빼곡히 새겨져있습니다.

이 벽은 이른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립니다.

중국인들은 '용서할 수 있지만 잊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용서조차 베풀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이 지금까지도 난징대학살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열린 난징대학살 국가추모식..

중국정부는 올해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격상하고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했습니다.

반성은 커녕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에 대한 경고인 셈입니다.

<인터뷰> 시진핑(중국 국가주석) : "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을 의미합니다.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범죄를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또 시대가 변해도 역사는 바뀌지 않으며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도 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시진핑 정부의 대일 역사공세는 전례 없이 강경한 수준입니다.

기록보관소 격인 중국의 국가당안관은 보란 듯이 난징대학살의 증거영상과 자료들을 차례로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직접 관련 영상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녹취> 국가당안관 기록물 : "이 난징대학살 기록물은 당시 난징시민들이 기록한 일본군의 만행과 가해자인 일본군이 직접 촬영한 사진, 자백, 기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일본인 총칼에 찔려 울부짖는 어린 소녀의 모습..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세계 유일의 영상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가 촬영한 이 결정적인 증거 영상도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녹취> 존 매기(미국인 선교사/전후 군사법정 증언) : "일본군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일본군이 중국 사람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난징대학살 촛불추모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역사가와 인권운동가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인터뷰> 윤주경(한국 독립기념관장/윤봉길 의사 손녀) : "같은 역사인식을 가진 나라들끼리 좀더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여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세계 각국의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손을 맞잡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를 압박하는 겁니다.

<인터뷰> 주청산(난징대학살기념관장) : "한중일 3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활동을 매년 열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중국의 관영언론들도 연일 난징대학살 재조명에 나섰습니다.

이 방송국은 지난달 23일부터 30편의 걸친 난징대학살 기록물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사라지기 전에 역사의 기억들을 촘촘히 재구성해 미래 세대에게 남긴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뷰> 장지엔닝(난징방송국 주임) : "최신 이동매체를 이용해서 많은 시청자, 특히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역사를 전달하려는 겁니다."

이처럼 중국의 태도는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이미 G2로 한층 높아진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습니다.

밖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견제하고 안으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중국에선 이례적으로 민간단체들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난징대학살 유족들은 유엔에 공개서한을 보내 일본을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한신민(유족.생존자 대표) : "유엔과 같은 권위있는 조직을 통해 일본에 반인류적인 행태를 버리라고 경고하려는 것입니다."

대일 역사공세가 강화되면서 난징은 시 전체가 거대한 애국주의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도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링용지엔(추모객) : "정말 분노합니다. 무고한 중국인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잖아요."

전쟁의 광기가 휩쓸고 간 지 벌써 77년..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 치욕과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한 양국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과거를 잊으면 미래도 없다, 난징대학살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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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 없다”
    • 입력 2014-12-20 07:35:51
    • 수정2014-12-20 09:28:3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아베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 승부수를 띄워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고, 그래서 우경화와 역사왜곡이 더 심해질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전례 없이 강경한 대일 역사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2월 13일은 77년 전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의 난징을 함락시켜 난징대학살을 시작한 날인데요.

난징에서는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일제의 만행 알리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시진핑 주석은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 없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난징 현지에서는 일제의 무차별 학살을 입증하는 영상과 자료들이 잇따라 공개돼 찾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그 현장을 김태욱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 13일.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이 맥없이 일본군에 함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찾아온 재앙, 일본군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시작된 겁니다.

그이듬해 1월말까지 6주 동안 무참히 희생된 시민은 중국 추산으로 무려 30만 명..

바로 난징대학살입니다.

당시 14살 소녀였던 천뀌이샹 할머니..

77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뀌이샹 할머니(당시 14세) : "보이는대로 다 죽였어요. 도처에 다 시신이었어요. 다리 아래에 시신이 산처럼 쌓여서, 밟고 건널 수 있을 정도였어요."

양췌이잉 할머니도 당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 4명을 잃었습니다.

희생자는 대부분 피난갈 돈이 없어 남아있던 가난한 농민들이었습니다.

<인터뷰> 양췌이잉 할머니(당시 13세) :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피난가지 못했어요. 일본군이 난징에서 난민구에 모아서 (학살했어요)"

학살의 현장에 세워진 난징대학살 희생동포 기념관..

집단 매장된 유골을 드러내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이원(초등학생) : "일본군이 우리 난징동포에게 너무 나쁜 짓을 했어요. 이걸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기념관 한 켠을 둘러싼 거대한 벽이 추모객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난징대학살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그 위에 빼곡히 새겨져있습니다.

이 벽은 이른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립니다.

중국인들은 '용서할 수 있지만 잊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용서조차 베풀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이 지금까지도 난징대학살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열린 난징대학살 국가추모식..

중국정부는 올해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격상하고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했습니다.

반성은 커녕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에 대한 경고인 셈입니다.

<인터뷰> 시진핑(중국 국가주석) : "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을 의미합니다.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범죄를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또 시대가 변해도 역사는 바뀌지 않으며 교활한 말로 사실을 지울 수도 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시진핑 정부의 대일 역사공세는 전례 없이 강경한 수준입니다.

기록보관소 격인 중국의 국가당안관은 보란 듯이 난징대학살의 증거영상과 자료들을 차례로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직접 관련 영상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녹취> 국가당안관 기록물 : "이 난징대학살 기록물은 당시 난징시민들이 기록한 일본군의 만행과 가해자인 일본군이 직접 촬영한 사진, 자백, 기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일본인 총칼에 찔려 울부짖는 어린 소녀의 모습..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세계 유일의 영상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가 촬영한 이 결정적인 증거 영상도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녹취> 존 매기(미국인 선교사/전후 군사법정 증언) : "일본군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일본군이 중국 사람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난징대학살 촛불추모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역사가와 인권운동가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인터뷰> 윤주경(한국 독립기념관장/윤봉길 의사 손녀) : "같은 역사인식을 가진 나라들끼리 좀더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여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세계 각국의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손을 맞잡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를 압박하는 겁니다.

<인터뷰> 주청산(난징대학살기념관장) : "한중일 3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활동을 매년 열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중국의 관영언론들도 연일 난징대학살 재조명에 나섰습니다.

이 방송국은 지난달 23일부터 30편의 걸친 난징대학살 기록물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사라지기 전에 역사의 기억들을 촘촘히 재구성해 미래 세대에게 남긴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뷰> 장지엔닝(난징방송국 주임) : "최신 이동매체를 이용해서 많은 시청자, 특히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역사를 전달하려는 겁니다."

이처럼 중국의 태도는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이미 G2로 한층 높아진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습니다.

밖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견제하고 안으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중국에선 이례적으로 민간단체들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난징대학살 유족들은 유엔에 공개서한을 보내 일본을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한신민(유족.생존자 대표) : "유엔과 같은 권위있는 조직을 통해 일본에 반인류적인 행태를 버리라고 경고하려는 것입니다."

대일 역사공세가 강화되면서 난징은 시 전체가 거대한 애국주의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도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링용지엔(추모객) : "정말 분노합니다. 무고한 중국인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잖아요."

전쟁의 광기가 휩쓸고 간 지 벌써 77년..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 치욕과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한 양국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과거를 잊으면 미래도 없다, 난징대학살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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