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필리핀, ‘代 잇는 고통’ 환경 기형아

입력 2006.02.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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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국내에서 미군 기지터가 중금속으로 크게 오염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에서는 지난 92년 미군이 철수한 뒤 미군 기지터 중금속 오염 문제로 논란이 일고있는 필리핀 현지를 취재했는데요.

특히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 때문에 수 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취재결과 밝혀졌습니다.

보도에 이승철 기자입니다.

<리포트>

<녹취> "도와주세요. 저희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애들이 중금속 때문에 아프다는 걸 증명하도록 도와주세요."

올해 9살인 안빌로스.

한창 뛰어다닐 나이지만 안빌로스는 늘 어두컴컴한 집에서만 지냅니다.

안쪽으로 심하게 굽은 다리 때문에 제대로 설 수도 없습니다.

연필도 쥐기 힘든 손으로 간신히 이름을 써 보여줍니다.

그나마 키보드를 치는 것이 유일한 낙.

안빌로스가 태어난 곳은 미군이 철수한 클락 공군기지 터였습니다.

그곳에서 2년 이상 마셨던 기름 냄세 나던 우물물.

할머니는 그 물 때문에 안빌로스가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라릴라스(할머니) : "엔진 고장난 것들이 방치돼 있었고, 강으로 흘러 들었습니다. 펌프로 물을 길어냈지만 기름으로 오염이 돼 있었어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4~5곳의 집단이주지로 옮겨지기 시작합니다.

피나투보 화산이 터졌을 당시 쌓인 화산재들입니다.

화산에서 30km나 떨어진 곳이지만 제 키만큼 쌓은 화산재들이 당시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보여줍니다.

화산이 폭발하자 필리핀 정부는 화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옛 미군기지터에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제 2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해외 주둔 미군 기지 가운데 가장 컸다는 클락 기지.

이 광활한 땅에 92년부터 99년까지 2만 가구의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텐트촌을 이뤘던 캅콤 지역은 미군의 차량 정비창이 있던 곳으로 기름 등 각종 폐기물이 그대로 버려지던 곳이었습니다.

우물을 파 사용하던 주민들도 심한 기름 냄새를 느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년 새 주민들 사이에 유산이 급증하고 피부병이나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난 99년 필리핀 정부는 우물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기에 이릅니다.

현재 극소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우물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인터뷰> "(물을 마시나요?) 아니요. (왜요) 맛이 달라요."

특히 주민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은 캅콤 지역에서 태어나는 기형아들이었습니다.

캅콤 지역 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팜팡가 마답탑 마을. 시민단체 사무실에 10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였습니다.

뇌성마비나 근육 위축증 등을 앓고 있는 어린이가 대부분입니다.

몸은 정상으로 보이지만 혈액검사 결과 기준치를 10배 가까이 초과하는 중금속에 오염된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당시 거주했던 1200가족을 조사한 결과 450여 명의 어린이들이 기형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필리핀 정부는 지난 2002년 97명을 표본 선발해 혈액과 소변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7명이 혈액 내 납과 비소 등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명인 피네다 씨는 결국 지난 1월 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신장기능 이상으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정부 표본조사결과 기준치보다 6배가 높은 납이 혈액에서 검출된 것입니다.

<인터뷰> 제이슨(큰 아들) :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없이 살아야 하는데 특히 막내 로사안이 걱정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로시안도 납과 비소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나머지 가족은 아직 조사도 받지 못한 상태.

<인터뷰> 에이 피내다(남편) : "캅콤에 살았기 때문에 저도 중금속에 오염됐는지 모르죠."

단란하기만 하던 한 가족이 모두 죽음의 그림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화산폭발이 중금속을 퍼뜨렸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토니 엔지(클락 개발회사 대표) :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학 물질들이 퍼진겁니다.비소 같은 것들이 퍼져나간거죠."

클락 기지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수빅 해군기지.

미군이 떠난뒤 현재 이곳은 자유무역항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또 다른 오염물질 때문에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내열재로 쓰였던 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폐건물.

죽음의 섬유라고 불리고 있는 석면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습니다.

하얗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 석면가 루들입니다. 수빅 기지내 오래된 건물에 는 철거하다만 석면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흡입할 경우 폐질환을 일으키게 돼 사용이 전면금지된 것들로 지금도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철거작업이 이뤄집니다.

석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수십년 간 기지 내에서 일했던 필리핀 현지 근로자들입니다.

18년 동안 마스크 조차 쓰지 않고 건물 보수,배관 일을 했던 올모 씨는 석면이 폐에 쌓여 이젠 호흡마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뚜렷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치료는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올모 : "(동료 중) 13명은 죽고 16명은 살아있는데 다 나처럼 아픕니다."

X레이 촬영결과 1022명의 미군 기지 근무 근로자들이 모두 폐에 이상이 나타났고 현재 미 석면회사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X레이 사진에서 흰 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석면으로 인해 발생한 폐의 구멍들입니다.

시민단체들은 100여 개의 미군 건물들이 호텔 등 일반 건물로 전환되고 있다며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인터뷰> 주앗코 : "석면빌딩이 오래되면 가루가 날려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겁니다."

납,카드늄,벤젠,톨루엔,석면 등 미국 회계 감사원과 미네소타 대학 등 각종 연구 기관이 9차례 조사한 결과 필리핀 내 미군 기지터에서 발견된 오염물질들입니다.

클락과 수빅 기지 내에 오염된 것으로 판명된 것만 46곳.

그러나 당시 이곳에 거주하거나 일했던 전체 주민들에 대한 건강 역학 조사는 아직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발도나도(미군기지정화위원회 대표) : "오염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를 일부하고도 전혀 공개를 안합니다. 옛기지터에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왜 병에 걸렸는지 조차 모르는 필리핀의 어린이들은 하루하루 시들어가며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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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필리핀, ‘代 잇는 고통’ 환경 기형아
    • 입력 2006-02-17 11:08:2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최근 국내에서 미군 기지터가 중금속으로 크게 오염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에서는 지난 92년 미군이 철수한 뒤 미군 기지터 중금속 오염 문제로 논란이 일고있는 필리핀 현지를 취재했는데요. 특히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 때문에 수 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취재결과 밝혀졌습니다. 보도에 이승철 기자입니다. <리포트> <녹취> "도와주세요. 저희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애들이 중금속 때문에 아프다는 걸 증명하도록 도와주세요." 올해 9살인 안빌로스. 한창 뛰어다닐 나이지만 안빌로스는 늘 어두컴컴한 집에서만 지냅니다. 안쪽으로 심하게 굽은 다리 때문에 제대로 설 수도 없습니다. 연필도 쥐기 힘든 손으로 간신히 이름을 써 보여줍니다. 그나마 키보드를 치는 것이 유일한 낙. 안빌로스가 태어난 곳은 미군이 철수한 클락 공군기지 터였습니다. 그곳에서 2년 이상 마셨던 기름 냄세 나던 우물물. 할머니는 그 물 때문에 안빌로스가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라릴라스(할머니) : "엔진 고장난 것들이 방치돼 있었고, 강으로 흘러 들었습니다. 펌프로 물을 길어냈지만 기름으로 오염이 돼 있었어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4~5곳의 집단이주지로 옮겨지기 시작합니다. 피나투보 화산이 터졌을 당시 쌓인 화산재들입니다. 화산에서 30km나 떨어진 곳이지만 제 키만큼 쌓은 화산재들이 당시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보여줍니다. 화산이 폭발하자 필리핀 정부는 화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옛 미군기지터에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제 2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해외 주둔 미군 기지 가운데 가장 컸다는 클락 기지. 이 광활한 땅에 92년부터 99년까지 2만 가구의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텐트촌을 이뤘던 캅콤 지역은 미군의 차량 정비창이 있던 곳으로 기름 등 각종 폐기물이 그대로 버려지던 곳이었습니다. 우물을 파 사용하던 주민들도 심한 기름 냄새를 느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년 새 주민들 사이에 유산이 급증하고 피부병이나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난 99년 필리핀 정부는 우물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기에 이릅니다. 현재 극소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우물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인터뷰> "(물을 마시나요?) 아니요. (왜요) 맛이 달라요." 특히 주민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은 캅콤 지역에서 태어나는 기형아들이었습니다. 캅콤 지역 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팜팡가 마답탑 마을. 시민단체 사무실에 10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였습니다. 뇌성마비나 근육 위축증 등을 앓고 있는 어린이가 대부분입니다. 몸은 정상으로 보이지만 혈액검사 결과 기준치를 10배 가까이 초과하는 중금속에 오염된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당시 거주했던 1200가족을 조사한 결과 450여 명의 어린이들이 기형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필리핀 정부는 지난 2002년 97명을 표본 선발해 혈액과 소변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7명이 혈액 내 납과 비소 등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명인 피네다 씨는 결국 지난 1월 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신장기능 이상으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정부 표본조사결과 기준치보다 6배가 높은 납이 혈액에서 검출된 것입니다. <인터뷰> 제이슨(큰 아들) :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없이 살아야 하는데 특히 막내 로사안이 걱정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로시안도 납과 비소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나머지 가족은 아직 조사도 받지 못한 상태. <인터뷰> 에이 피내다(남편) : "캅콤에 살았기 때문에 저도 중금속에 오염됐는지 모르죠." 단란하기만 하던 한 가족이 모두 죽음의 그림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화산폭발이 중금속을 퍼뜨렸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토니 엔지(클락 개발회사 대표) :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학 물질들이 퍼진겁니다.비소 같은 것들이 퍼져나간거죠." 클락 기지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수빅 해군기지. 미군이 떠난뒤 현재 이곳은 자유무역항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또 다른 오염물질 때문에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내열재로 쓰였던 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폐건물. 죽음의 섬유라고 불리고 있는 석면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습니다. 하얗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 석면가 루들입니다. 수빅 기지내 오래된 건물에 는 철거하다만 석면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흡입할 경우 폐질환을 일으키게 돼 사용이 전면금지된 것들로 지금도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철거작업이 이뤄집니다. 석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수십년 간 기지 내에서 일했던 필리핀 현지 근로자들입니다. 18년 동안 마스크 조차 쓰지 않고 건물 보수,배관 일을 했던 올모 씨는 석면이 폐에 쌓여 이젠 호흡마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뚜렷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치료는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올모 : "(동료 중) 13명은 죽고 16명은 살아있는데 다 나처럼 아픕니다." X레이 촬영결과 1022명의 미군 기지 근무 근로자들이 모두 폐에 이상이 나타났고 현재 미 석면회사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X레이 사진에서 흰 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석면으로 인해 발생한 폐의 구멍들입니다. 시민단체들은 100여 개의 미군 건물들이 호텔 등 일반 건물로 전환되고 있다며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인터뷰> 주앗코 : "석면빌딩이 오래되면 가루가 날려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겁니다." 납,카드늄,벤젠,톨루엔,석면 등 미국 회계 감사원과 미네소타 대학 등 각종 연구 기관이 9차례 조사한 결과 필리핀 내 미군 기지터에서 발견된 오염물질들입니다. 클락과 수빅 기지 내에 오염된 것으로 판명된 것만 46곳. 그러나 당시 이곳에 거주하거나 일했던 전체 주민들에 대한 건강 역학 조사는 아직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발도나도(미군기지정화위원회 대표) : "오염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를 일부하고도 전혀 공개를 안합니다. 옛기지터에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왜 병에 걸렸는지 조차 모르는 필리핀의 어린이들은 하루하루 시들어가며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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