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입력 1993.04.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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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앵커 :

엄청난 규모의 입시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경원대학은 대학가에서 초고속 성장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습니다.

경원대학은 어떤 대학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백운기 기자입니다.


백운기 기자 :

경원대의 출발은 지난 78년 경원공업전문대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3년만인 지난 81년 국문학과를 비롯한 7개학과로 단과대학을 별도로 설립했고 그 뒤 9년만인 87년에는 파격적으로 총합대학으로 승격합니다.

대학가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지금은 8개 단과대학에 전문대와 3개의 특수대학원을 거느린 대규모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학생 수만도 만 3천명입니다.

전문대로 출발했던 경원대학이 이렇게 빨리 대규모의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설립자 김동석씨의 탁월한 사교술과 뛰어난 수완에 힘입었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또 당시 이 모 문교부 장관이 서울지역은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책에 따라서 서울 지역의 대학에는 증원을 해주지 않으면서도 경원대만 증원을 해줬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성남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서 학부모들이 이 대학을 선호한 것도 급성장의 한 요인이 됐습니다. 성남시 연탄 공급권율 독점해서 거액을 벌어 학원 설립자가 됐던 김동석 전 이사장이 지난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선거 진영에 자금책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고위 공직자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오던 경원학원은 그러나 김씨가 지난 90년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김씨가 숨지자 경원대학은 미망인인 김용진씨를 거쳐 1년만인 지난 91년 10월 예은그룹 회장인 최원영 회장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설립자 김씨를 추종하는 세력과 새 재단을 따르는 세력끼리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때부터 조직적인 입시부정에 대한 제보와 투서가 관계기관에 접수되기 시작했고 이번 제보도 전 이사장 김씨의 비서였던 김명기 교수 등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검은 돈, 그 뒤에는 설립자 김씨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숨어 있었고 내부 갈등은 추악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나게 만든 것입니다.

KBS 뉴스 백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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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원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 입력 1993-04-11 21:00:00
    뉴스 9

김광일 앵커 :

엄청난 규모의 입시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경원대학은 대학가에서 초고속 성장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습니다.

경원대학은 어떤 대학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백운기 기자입니다.


백운기 기자 :

경원대의 출발은 지난 78년 경원공업전문대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3년만인 지난 81년 국문학과를 비롯한 7개학과로 단과대학을 별도로 설립했고 그 뒤 9년만인 87년에는 파격적으로 총합대학으로 승격합니다.

대학가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지금은 8개 단과대학에 전문대와 3개의 특수대학원을 거느린 대규모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학생 수만도 만 3천명입니다.

전문대로 출발했던 경원대학이 이렇게 빨리 대규모의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설립자 김동석씨의 탁월한 사교술과 뛰어난 수완에 힘입었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또 당시 이 모 문교부 장관이 서울지역은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책에 따라서 서울 지역의 대학에는 증원을 해주지 않으면서도 경원대만 증원을 해줬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성남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서 학부모들이 이 대학을 선호한 것도 급성장의 한 요인이 됐습니다. 성남시 연탄 공급권율 독점해서 거액을 벌어 학원 설립자가 됐던 김동석 전 이사장이 지난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선거 진영에 자금책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고위 공직자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오던 경원학원은 그러나 김씨가 지난 90년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김씨가 숨지자 경원대학은 미망인인 김용진씨를 거쳐 1년만인 지난 91년 10월 예은그룹 회장인 최원영 회장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설립자 김씨를 추종하는 세력과 새 재단을 따르는 세력끼리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때부터 조직적인 입시부정에 대한 제보와 투서가 관계기관에 접수되기 시작했고 이번 제보도 전 이사장 김씨의 비서였던 김명기 교수 등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검은 돈, 그 뒤에는 설립자 김씨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숨어 있었고 내부 갈등은 추악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나게 만든 것입니다.

KBS 뉴스 백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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