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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먼저 풀려나오는 이유
입력 2019.05.17 (15:37) 수정 2019.05.29 (17:39) 취재K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먼저 풀려나오는 이유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는 우리 사회 마약의 실태와 해결 방향을 찾기 위해 마약 세계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3번째 연재는 우리나라 마약 수사의 특수성을 짚어봅니다.

살인, 사기, 절도, 성범죄엔 있지만 마약류 범죄엔 없는 것은? 바로 '상대방'입니다. 마약류 범죄는 투약자가 곧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됩니다.

대신 마약류 범죄에는 '공급자'와 '투약자'가 있습니다.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당연히 '공급자'입니다. 마약 공급자 한 명을 잡으면 수백 명의 투약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재판부는 필로폰을 팔아넘긴 '공급자'보다 필로폰을 투약한 '투약자'에게 더 큰 형량을 부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명 '고구마줄기 캐기'라고 불리는 국내 마약 수사 방식 때문입니다.

■ 공급책 A가 8개월의 징역형만 받고 풀려난 이유

A는 국내에 들어온 필로폰을 소매로 쪼개 파는 중간 판매책이었습니다. 주로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마약류는 한국을 거쳐 일본 등지로 수출됩니다. 우리나라가 '마약 경유지'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필로폰은 한 박스에 10g 정도 들어있습니다. 이 10g을 14개의 '작대기'로 나누면, 각각 7-80만 원씩 판매할 수 있습니다. 1회 투약을 위해서 0.03g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작대기' 한 개 당 3번 정도 투약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A는 경찰에 덜미를 붙잡혔습니다. A에게서 약을 사 간 투약자들에게서 A의 이름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수사를 받게 된 A는 자신에게서 마약을 산 투약자들을 순순히 실토했습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A는 검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필로폰 밀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는 A의 증언을 토대로 밀수 현장을 검거했고, 이를 '공적'으로 A의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A는 자신이 약을 판매한 단순 투약자들보다 훨씬 적은 8개월 만의 형을 살고 출소했습니다.


■ 황하나가 엮은 박유천…"고구마 줄기 캐듯"

마약 수사를 '고구마 줄기 캐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을 붙잡으면, 공범이 줄줄이 엮이기 때문입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황하나 씨가 붙잡히니 함께 투약한 박유천 씨가 붙잡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국내 수사기관은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공급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약류의 공급을 적발해 막으려면,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또 다른 공급책과 '공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마약 공급책은 정보를 준 대가를 얻습니다. '감형', 즉 '플리바게닝'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약 공급책이 응당한 죗값을 모두 치르지 않고 일찍 풀려나오게 되는 딜레마가 나옵니다.


■ "'제조 사범' 부재가 아이러니하게 '투약자' 위주 수사로"

마약 수사를 오랫동안 해온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국내에 마약 '제조 사범'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투약자'나 말단 '공급자'에게서부터 정보를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조 사범'은 공장에서 약물을 대량으로 제조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한계상 '제조 사범'이 있기 어렵습니다. 국내의 마약류는 대부분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져 밀수입된 것들입니다.

마약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제조 사범'이 없으니, 수사기관은 꼬리부터 찾게 됩니다. '투약자'부터 타고 올라가 공급책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조 사범'이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공급책'의 감형을 낳는 셈입니다.

■ '투약자' 위주 수사의 또 다른 부작용, 함정 수사

국내 수사 기법의 또 하나가 이른바 '함정 수사'입니다. 경찰이 먼저 투약자 한 명을 붙잡습니다. 이 투약자로 하여금 '공범'을 유인하게 해서 다른 투약자들을 검거합니다. 약물중독자들은 "경찰이 직접 텔레그램에 글을 올려놓고 '낚시'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함정 수사'도 투약자에게서 공급자로 타고 올라가는 '고구마 줄기 뽑기식 수사'의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없는 '범의'(범죄 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만들어내서 범죄자를 검거하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습니다.

■ "마약 '제조' 국가들과 밀반입 단계부터 수사 공조해야!"

이런 수사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찰 관계자는 "마약을 '제조'하는 국가들과 실질적인 수사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코카인이 미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미국의 마약 단속청,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DEA는 미국에서 코카인을 압수하는 대신, 한국까지 가도록 둡니다. 대신 한국 사법기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립니다.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도매상을 검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같은 수사 기법을 '배달 통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제조' 단계에서부터 수사를 진행하게 되면 마약의 확산과 투약 자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미 마약을 모두 투약한 상태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투약자' 위주의 수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연도별 마약류 사범 검거인원. 현재 만 4천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연도별 마약류 사범 검거인원. 현재 만 4천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 국내 마약류 통계치는 '검거 인원'뿐

수사 기법을 설명하면서, 경찰 관계자가 기자에게 "국내 마약류 통계치는 '검거 인원' 밖에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검거 인원이 곧 약물 통계이므로, 검거 인원이 적어야만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딜레마가 생긴다는 겁니다.

경찰에게 마약 사범 '검거 할당량'이 내려올 정도로 사법기관은 검거에 치중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오히려 '너무 많이 검거하면 곤란한 상황이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약물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검찰 통계에 10을 곱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낡은 통계와 옛 수사 방식은 국내 마약류의 확산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약 수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다음기사에서는 [나는약물중독자입니다]④편 '아이언맨은 약물중독자였다'를 게재합니다.
  •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먼저 풀려나오는 이유
    • 입력 2019.05.17 (15:37)
    • 수정 2019.05.29 (17:39)
    취재K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먼저 풀려나오는 이유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는 우리 사회 마약의 실태와 해결 방향을 찾기 위해 마약 세계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3번째 연재는 우리나라 마약 수사의 특수성을 짚어봅니다.

살인, 사기, 절도, 성범죄엔 있지만 마약류 범죄엔 없는 것은? 바로 '상대방'입니다. 마약류 범죄는 투약자가 곧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됩니다.

대신 마약류 범죄에는 '공급자'와 '투약자'가 있습니다.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당연히 '공급자'입니다. 마약 공급자 한 명을 잡으면 수백 명의 투약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재판부는 필로폰을 팔아넘긴 '공급자'보다 필로폰을 투약한 '투약자'에게 더 큰 형량을 부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명 '고구마줄기 캐기'라고 불리는 국내 마약 수사 방식 때문입니다.

■ 공급책 A가 8개월의 징역형만 받고 풀려난 이유

A는 국내에 들어온 필로폰을 소매로 쪼개 파는 중간 판매책이었습니다. 주로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마약류는 한국을 거쳐 일본 등지로 수출됩니다. 우리나라가 '마약 경유지'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필로폰은 한 박스에 10g 정도 들어있습니다. 이 10g을 14개의 '작대기'로 나누면, 각각 7-80만 원씩 판매할 수 있습니다. 1회 투약을 위해서 0.03g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작대기' 한 개 당 3번 정도 투약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A는 경찰에 덜미를 붙잡혔습니다. A에게서 약을 사 간 투약자들에게서 A의 이름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수사를 받게 된 A는 자신에게서 마약을 산 투약자들을 순순히 실토했습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A는 검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필로폰 밀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는 A의 증언을 토대로 밀수 현장을 검거했고, 이를 '공적'으로 A의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A는 자신이 약을 판매한 단순 투약자들보다 훨씬 적은 8개월 만의 형을 살고 출소했습니다.


■ 황하나가 엮은 박유천…"고구마 줄기 캐듯"

마약 수사를 '고구마 줄기 캐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을 붙잡으면, 공범이 줄줄이 엮이기 때문입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황하나 씨가 붙잡히니 함께 투약한 박유천 씨가 붙잡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국내 수사기관은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공급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약류의 공급을 적발해 막으려면,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또 다른 공급책과 '공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마약 공급책은 정보를 준 대가를 얻습니다. '감형', 즉 '플리바게닝'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약 공급책이 응당한 죗값을 모두 치르지 않고 일찍 풀려나오게 되는 딜레마가 나옵니다.


■ "'제조 사범' 부재가 아이러니하게 '투약자' 위주 수사로"

마약 수사를 오랫동안 해온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국내에 마약 '제조 사범'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투약자'나 말단 '공급자'에게서부터 정보를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조 사범'은 공장에서 약물을 대량으로 제조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한계상 '제조 사범'이 있기 어렵습니다. 국내의 마약류는 대부분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져 밀수입된 것들입니다.

마약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제조 사범'이 없으니, 수사기관은 꼬리부터 찾게 됩니다. '투약자'부터 타고 올라가 공급책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조 사범'이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공급책'의 감형을 낳는 셈입니다.

■ '투약자' 위주 수사의 또 다른 부작용, 함정 수사

국내 수사 기법의 또 하나가 이른바 '함정 수사'입니다. 경찰이 먼저 투약자 한 명을 붙잡습니다. 이 투약자로 하여금 '공범'을 유인하게 해서 다른 투약자들을 검거합니다. 약물중독자들은 "경찰이 직접 텔레그램에 글을 올려놓고 '낚시'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함정 수사'도 투약자에게서 공급자로 타고 올라가는 '고구마 줄기 뽑기식 수사'의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없는 '범의'(범죄 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만들어내서 범죄자를 검거하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습니다.

■ "마약 '제조' 국가들과 밀반입 단계부터 수사 공조해야!"

이런 수사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찰 관계자는 "마약을 '제조'하는 국가들과 실질적인 수사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코카인이 미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미국의 마약 단속청,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DEA는 미국에서 코카인을 압수하는 대신, 한국까지 가도록 둡니다. 대신 한국 사법기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립니다.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도매상을 검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같은 수사 기법을 '배달 통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제조' 단계에서부터 수사를 진행하게 되면 마약의 확산과 투약 자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미 마약을 모두 투약한 상태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투약자' 위주의 수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연도별 마약류 사범 검거인원. 현재 만 4천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연도별 마약류 사범 검거인원. 현재 만 4천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 국내 마약류 통계치는 '검거 인원'뿐

수사 기법을 설명하면서, 경찰 관계자가 기자에게 "국내 마약류 통계치는 '검거 인원' 밖에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검거 인원이 곧 약물 통계이므로, 검거 인원이 적어야만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딜레마가 생긴다는 겁니다.

경찰에게 마약 사범 '검거 할당량'이 내려올 정도로 사법기관은 검거에 치중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오히려 '너무 많이 검거하면 곤란한 상황이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약물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검찰 통계에 10을 곱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낡은 통계와 옛 수사 방식은 국내 마약류의 확산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약 수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다음기사에서는 [나는약물중독자입니다]④편 '아이언맨은 약물중독자였다'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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