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보고에 지휘·감찰도 안되는 경찰

입력 2011.10.24 (09:45)

수정 2011.10.24 (20:02)

인천 조직폭력배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서울 구로구 장례식장 비리 의혹 등에서 촉발된 경찰의 대대적인 내부 감찰 범위가 급속히 확대된 것은 경찰 조직 내에 존재하는 고질적인 허위·축소 보고 관행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검사의 지휘 범위를 규정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하기에 앞서 명실상부한 수사 주체가 됐으니 내부 비리 척결 등 책임도 더 무거워졌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66주년 경찰의날 기념식 축사 발언도 경찰 내부의 강도 높은 대응 방침에 다소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청은 최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조직폭력배 간 흉기 상해사건과 관련해 인천 남동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같은 서 형사과장, 강력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에 중징계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인천지방경찰청장 등 인천청 지휘부와 경찰청 수사국 등에 대해 24일 감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인천청 지휘부가 사건 당일 상황을 본청에 축소하거나 허위로 보고한 부분에 주목하면서 출동한 현장 경찰관보다 지휘·통제 및 보고 부실에 더 중한 책임을 묻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천청 수뇌부가 상황을 제때 정확히 보고받지 못하다 보니 상황을 적절하게 지휘·통제하지 못했고 본청에 당일 상황을 제대로 보고 하지 않아 경찰청 수뇌부도 제때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조폭들이 단순한 우발적 충돌을 한 정도로 보고를 받았는데 TV를 보고 칼부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현장 경찰이 적당한 수준에서 덮고 감춘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만큼 허위·축소 보고 관행을 없애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조폭이 숫자가 많다고 출동한 경찰관이 위축돼 제대로 된 경찰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그런 직원들은 우리 조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초 출동한 강력팀원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면 상황실장에 보고해 적절한 경찰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경고 방송 정도에 그쳤고 형사과장 역시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검거 의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간주하고 경찰청 감찰라인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1일 인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발생한 폭력조직 간 유혈 난투극 과정에서 2개 폭력조직 130여명이 충돌을 빚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눈앞에서 조폭 한 명이 흉기에 찔리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다.

경찰 지휘부에 대한 축소·허위 보고 문제는 지난 8월 제주 강정마을에서 발생한 공권력 부재 현상 때도 문제가 됐다.

당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내 대형 크레인 조립을 저지하는 등 업무를 방해한 주민과 시민운동가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7시간 넘게 시위대에 포위되고 서귀포 경찰서 정문을 9시간 가량 폐쇄한 사실이 있었지만 이 역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언론을 통해 접했다.

이 때문에 제주 서귀포 서장이 경질당한 것은 물론이고 경찰청 본청의 관련 라인이 질책을 받았다.

경찰서 앞 도로 점거농성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책임을 물어 군포경찰서장을 지난 9월 경질했을 때 역시 본청 수뇌부로 보고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었다.

구로구 장례식장에서 촉발된 유착 비리 역시 서울지방경찰청이 앞서 감찰을 진행했다가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내부 감찰은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했다는 점에서 필요하면 직무고발을 활용하는 등 조치가 시급하다고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조 청장은 "200~300여명에 불과한 비리 경찰관은 (10만명 경찰에 비해)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조직과 함께 갈 수 없다"면서 "자기가 할 일을 소극적으로 한 사람은 뿌리를 뽑고 필요한 경우 수사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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