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인정 안 돼 개인택시 양수 못해…"업계 병폐 개선 필요"
"10년 가까이 택시 운전을 했어도 업체가 근로자 등록을 해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대전의 한 택시업체의 법인택시를 운전한 이모(54)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개인택시 면허를 양수하기로 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하던 중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의 경력 증명서를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시는 법인택시 경력 3년 이상을 개인택시 양수 자격 요건 중 하나로 두고 있다.
업체에 문을 두드려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은 이씨는 시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관련법에 따라 업체가 매달 운수종사자 현황을 시청에 통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수종사자로서 이씨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업체로부터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게 시의 회신이었다.
이씨는 "10년 동안 시청에 하나도 보고를 안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내 삶과 경험을 통째로 도둑맞은 느낌"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가 '유령택시'를 몰고 다니게 된 원인은 업체와의 계약 관계에 있다.
이씨는 업체와 이른바 '스페어(일급제)' 계약을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사납금제의 일종인 일급제 계약은 매일 일정한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 수입을 기사가 갖도록 한 형태다.
일급제 기사는 업체에서 근로자로 등록하지 않기 때문에 탈세 등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불법으로 규정된 도급제(명의이용)의 변형된 형태이지만, 업체는 이중장부 등으로 단속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이씨는 "시청에서 단속만 제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심지어 4대 보험도 제대로 가입해 주지 않은 업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련 내용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시는 행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1년께 대전시내 76개 업체를 모두 점검해 위반 사항을 담당 구청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시의 한 관계자는 "당시 단속에 적발된 업체는 구에서 과태료 처분을 했다"며 "이후에는 위반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법인택시 사업자는 운송수입금 전액을 기사에게 받게 돼 있다. 사납금제, 일급제, 도급제 등 어떤 형태로 불리든 다른 계약 형태는 과태료 처분 대상이다.
한 택시기사는 그러나 "법대로 운영하는 법인택시는 손꼽아야 할 정도"라며 "사납금을 내겠다는 계약을 해야만 택시를 내주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시 관계자는 "서류상으로 현재 대부분 업체가 규정을 잘 지키고 있다"면서도 "틈나는 대로 현장에 나가 감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는 이른바 '택시법'을 거부하면서 대체 법률로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안'(택시지원법)을 마련했다.
일부 택시기사는 어떤 법률이 입안되든 이번 기회에 업계의 병폐를 제대로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모(43)씨는 "지금도 편법이 난무하는데 새 정책이 기사를 온전히 지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10여년째 회사택시를 몰아온 최모(55)씨도 "당연히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내부에 곪아있는 상처도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