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에 생계 위협받는 노점상·일용직

입력 2011.07.15 (06:32)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잡화를 파는 노점상 김광일(55)씨는 지난달 말부터 일주일 정도밖에 노점을 열지 못했다. 20일여일째 이어지는 긴 장마 때문이다.

김씨는 15일 "아내와 둘이 노점을 운영해서 한 달에 버는 돈이 장사가 잘돼야 200만~300만원 수준"이라며 "이 돈으로 초등학생 딸까지 세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비가 계속 내리면 당장 끼니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노점상은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있다.

일단 손수레 보관소를 이용하는 데 월 15만원가량이 든다. 손수레를 옮겨다 주는 사람까지 고용하면 15만원이 더 나간다. 전기료는 월 3만~5만원을 정액으로 낸다. 지역에 따라 전구 1개당 1만원씩 내는 곳도 있다.

노점 특화거리에서 영업하면 도로점유세로 월 9만원을 낸다. 비가 와서 영업을 못하면 월 40만원가량은 그냥 '버리는 돈'인 셈이다.

김씨는 "보험료와 월세 등을 내면서 이런 고정비용까지 지출하고 저축도 하려면 장사가 잘돼도 빠듯하다"며 "당장 고정비용을 막기 어려우면 이자가 20%나 되는 일수를 끌어다 쓰고 다시 벌어 갚는 노점상도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장마가 내내 이어지면서 노점상과 일용직 노동자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종 종사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김씨와 같은 노점상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상황이 막막하기는 매한가지다.

실내보다 바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일의 특성상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예 작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해 일감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인력소개소 운영자는 "요즘 같은 장마에는 일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비가 오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장맛비가 계속 내리면서 평소의 30% 정도밖에 일감을 줄 수가 없다"며 "일을 달라며 소란을 피우고 가는 등 소개소에 화풀이하는 때도 있다"고 푸념했다.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계마저 위험해지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하루하루 벌어 생활하는 일용직이 장마철을 좋아할 수가 없다"며 "벌써 20일째 장마가 계속됐는데 이제 태풍까지 온다니 이 사람들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라며 혀를 찼다.

일용직 노동자 이모(53)씨는 "요즘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씩 로테이션으로 일을 나가다 보니 새벽에 나와도 허탕치는 날이 많다"며 "이걸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비가 올 때도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등급까지 받은 장애인이지만 일을 안 나올 수가 없다"며 "일을 해도 하루에 7만∼8만원 벌어 아내와 아이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에서는 전혀 대책이 없는지 궁금하다"고 하소연했다.

쪽방촌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 가운데도 이같은 일용직들이 많다. 종로구의 경우 돈의동과 창신동 쪽방촌 거주자 900여명 가운데 70%가 일용직 노동이나 파지 줍기, 공공ㆍ자활근로 등에 종사하고 있다.

종로구 사회복지과의 쪽방촌 담당자는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쪽방 상담소에서 음식을 제공하고 공공근로나 자활근로는 비가 오면 실내 업무나 안전교육으로 대체해 일이 끊기지 않게 하고 있다"며 "그러나 날씨 때문에 일거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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