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가 ‘무적함대’ 스페인의 사상 첫 대회 2연패 달성으로 막을 내렸다.
스페인은 2일 새벽(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빗장수비’ 이탈리아를 맞아 무려 4골의 골 폭죽을 쏘아 올리며 4-0 대승을 거두고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2승1무(6골·1실)로 통과한 스페인은 8강전에서 프랑스를 2-0으로 꺾은 뒤 준결승에서 포르투갈을 승부차기로 제압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까지 무너뜨리고 사상 첫 대회 2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총 6경기를 치르는 동안 1실점에 12골을 뽑아내는 무서운 공격력으로 세계 축구의 정상임을 입증했다.
고정된 스트라이커를 쓰지 않는 ‘제로톱’ 전술을 앞세우고 미드필더진의 치밀한 패스를 통해 골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찬사를 이끌었다.
유로 2008 우승과 2010 남아공월드컵 제패에 이어 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새 기록까지 세운 스페인은 당분간 적수가 없는 독주 체제를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준우승하며 주가를 올렸던 네덜란드는 조별리그 3연패의 치욕 속에 조기 탈락해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결승까지 오른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스페인과 비기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결승에서 뜻하지 않는 주전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준우승에 머물렀다.
◇스페인 ‘제로톱’의 전성시대
스페인은 이번 대회를 치르는 동안 주전 멤버들의 큰 변화 없이 철저히 ‘스페인식 축구’를 구사했다.
여기서 스페인식 축구란 선수들의 뛰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볼 터치를 최소화하면서 기밀한 패스를 통해 단숨에 상대 수비를 무력화한 전술을 말한다.
특히 전통의 스트라이커 개념을 없애고 전방에 포진한 미드필더진이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공격의 실마리를 찾는 ‘제로톱 전술’은 스페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결승전에서도 스페인은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 사비 에르난데스(이상 바르셀로나), 사비 알론소(레알 마드리드) 등이 중원을 완벽히 장악한 뒤 촘촘한 패스로 단숨에 수비진을 깨뜨렸다.
너무 잦은 패스로 ‘지루한 축구’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골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완벽한 팀워크는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스페인은 상대에 따라 전술 변화를 준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자기 축구를 구사했다"며 "많은 나라가 스페인식 축구를 하려 했지만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 한동안 스페인 축구의 독주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역시 강국’…네덜란드의 몰락
전통적으로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유럽 축구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를 통해 튼튼한 수비를 앞세운 강한 역습 카드로 결승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 몰아친 승부조작 파문으로 분위기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이탈리아는 다양한 전술 변화로 ‘무적’ 스페인의 대항마로 자리를 굳혔다.
이탈리아는 스페인과의 조별리그에서 스리백(3-back) 전술로 중원을 튼튼히 하면서 ‘중원의 지휘관’ 안드레아 피를로(유벤투스)의 농익은 경기 조절과 ‘킬 패스’로 상대팀을 괴롭혔다.
특히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무패우승을 달성한 유벤투스의 멤버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 이탈리아는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변형하며 전통의 ‘빗장 수비’와 강한 공격력을 복합적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전술의 핵심인 피를로가 스페인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 속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피를로가 봉쇄된 이탈리아는 전방 공격진에 제대로 된 패스를 내주지 못했고, 위력적인 크로스마저 스페인의 ‘거미손’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의 선방에 막혀 끝내 골 맛을 보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실망을 안겨준 팀은 네덜란드로 꼽힌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팀인 네덜란드는 조별리그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3패로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로빈 판 페르시(아스널), 아르연 로번(뮌헨),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 밀란) 등 최고의 공격진이 포진했지만 ‘모래알 조직력’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에고랜드(ego-land)’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발로텔리·자고예프 ‘반짝’…루니·판 페르시 ‘주춤’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는 역시 이탈리아의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맨체스터 시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도 거친 매너로 ’악동’이라는 별명을 얻은 발로텔리는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혼자서 두 골을 몰아넣어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가나 이민자 출신의 아들로 태어나 가정 형편 때문에 이탈리아 양부모 아래서 성장한 발로텔리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부진한 플레이로 1골에 그쳤지만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절정의 골 감각을 펼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22살의 러시아의 공격수 알란 자고예프(CSKA 모스크바)도 3골을 쏟아내 빅리그 클럽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면 8강에서 탈락한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골잡이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네덜란드의 해결사 판 페르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