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김진욱 감독은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 첫 경기에 앞서 취재진과 대화 도중 다분히 예언적인 발언을 했다.
김 감독은 투수와 타선의 궁합에 대해 "심리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면서 에이스이자 이날 선발 투수인 김선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김선우는 '괴물투수' 류현진(한화)과 마찬가지로 잘 던지고도 든든한 타선 지원을 얻지 못해 승운이 따르지 않는 대표적인 투수로 꼽힌다.
김 감독은 "팀의 에이스인 김선우가 마운드에 오르면 선수들이 어떻게 하든 이기려고 한다"면서 "특히 초반에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타자들이 마음에 큰 부담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선우처럼 좋은 투수가 선발이면 타자들이 득점을 많이 내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될 텐데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반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의 지적은 이날 경기 결과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김선우는 1회초 삼성 타선에 3안타 2실점하며 잠시 흔들린 것 이외에는 2회 이후부터는 제구력이 살아나면서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2회와 4회는 삼자범퇴로 넘겼고 6회초 1사 1, 2루에서는 진갑용, 정형식 등 후속 타자들을 모두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팀에 반격의 기회를 계속 제공했다.
그러나 두산 타선은 에이스 김선우에게 꼭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는 부담감에다 선두 삼성과의 중요한 일전이라는 긴장감에 휩싸인 듯 특유의 끈끈함을 상실한 채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두산은 브라이언 고든-권오준-권혁-오승환으로 이어진 삼성 철벽 계투진에 득점 없이 안타 5개를 뽑아내는데 그쳤다.
결국 이날 경기가 삼성의 2-0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김선우는 7이닝 동안 7안타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시즌 7패(5승)째를 떠안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김선우가 호투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선우는 지난달 4일 광주 KIA전에서 펼쳐진 상대 에이스 윤석민과의 맞대결에서 8이닝 동안 5안타 1실점(비자책)의 눈부신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팀 타선이 윤석민에게 꽁꽁 묶여 무득점에 그치는 바람에 0-1 경기의 패전투수가 됐다.
6월28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7⅓이닝 동안 3안타 2실점(1자책)을 기록한 뒤 4-2로 앞선 8회말 승리 투수 요건을 채우고 내려왔지만, 마무리 스콧 프록터가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며 김선우의 승리를 날렸다.
잘 던지고도 매번 타선의 엇박자와 구원투수들의 난조로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김선우에게는 어느덧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김진욱 감독으로서는 팀의 에이스가 더는 불운의 덫에 갇히지 않도록 타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말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자기 예언적인 발언이 되고 말았다.
김 감독은 경기 후 "김선우가 호투했다"면서 "타자들이 고든의 공에 성급하게 대처한 부분이 아쉽다. 내일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