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왼손 투수 류현진(27·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올 시즌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추가하며 10승 5패, 평균자책점 3.44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스포츠 선수라면 데뷔 2년째에 누구나 맞는다는 '2년차 징크스'도 류현진에게는 무색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2년차에 접어들어 더욱 진화된 모습으로 지난해 전반기 성적인 7승 3패, 평균자책점 3.09를 뛰어넘었다.
한층 노련해진 완급조절, 스트라이크존 좌우와 상하를 폭넓게 활용하는 능력은 이제는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느낌마저 든다. 류현진은 후반기에도 여세를 몰아가 '다저스 선배' 박찬호가 전성기인 2000년에 기록한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한 시즌 최다승(18승) 기록에 도전한다.
◇ 진화의 선봉은 한층 예리해진 커브와 슬라이더
올해 류현진은 직구와 체인지업 투 피치로 상대 타선을 공략하던 지난해의 류현진이 아니었다.
류현진은 비시즌 동안 커브와 슬라이더의 예리함을 키우는데 공을 들였다. 직구와 체인지업의 위력이 상대팀에 알려진 이상 '제3의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릭 허니컷 투수코치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묵직한 직구와 명품 체인지업은 여전했고, 겨우내 연마한 커브는 승부구로 쓸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슬라이더 구속은 시속 140㎞까지 끌어올렸다.
신무기를 장착한 류현진은 다양한 볼 배합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미국 스포츠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이 분석한 지난해와 올해 류현진의 구종별 구사율은 직구는 54.2%에서 54.4%, 슬라이더는 13.9%에서 13.6%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체인지업 구사 비율은 지난해 23.3%에서 올해 19.8%로 급감한 반면 커브의 구사율은 9.5%에서 11.0%로 껑충 뛰어올랐다.
주무기로 알려진 체인지업의 빈도를 줄이고 커브로 필살기를 보완한 류현진은 만족스러운 승수를 쌓은 것은 물론 경기 내용도 좋았다. 류현진의 9이닝당 삼진 개수는 지난해 7.22에서 올해는 8.00으로 상승했고, 9이닝당 볼넷 개수는 2.30에서 1.81로 떨어졌다.
물론 수치만으로 류현진의 올해 활약을 설명하긴 어렵다. 류현진은 시즌 초반 제1선발인 클레이튼 커쇼가 허리 부상으로 한 달간 등판하지 못하자 그 공백을 메우며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돈 매팅리 감독이 "단결력 없는 다저스는 사실상 팀도 아니다"며 무기력한 경기로 자중지란에 빠진 팀을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낸 다음 날인 지난달 7일 '투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필드 등판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역투해 승리를 거둬냈다.
류현진이 반등할 발판을 놓자 다저스는 이후 차곡차곡 승수를 쌓아나가며 한때 9경기 반까지 벌어졌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승차를 좁혀갔다. 결국 지난 1일 66일 만에 단독 선두 자리를 탈환한 다저스는 샌프란시스코에 1게임 차 앞선 1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 시련 속에서 더욱 강해진 류현진
류현진의 전반기는 큰 고비가 있었기에 더 드라마틱했다. 류현진은 어깨 부상을 당해 4월 28일자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다. 지난해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부상자 명단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호주 원정 개막전을 위해 장거리 원정을 떠난 데 따른 후유증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고, 아마추어 시절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은 류현진이었기에 심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약 1개월을 쉰 류현진은 복귀전이던 5월 22일 뉴욕 메츠전에서 보란 듯이 6이닝을 2실점으로 막고 승리 투수가 됐다. 이후 7경기에서 6승(1패)을 쓸어담는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우려를 지워냈다.
5월 27일 조니 쿠에토와의 선발 맞대결로 치러진 신시내티 레즈전에서는 7이닝 동안 퍼펙트 투구를 선보이며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류현진은 어깨 부상을 당하고 돌아와서 오히려 그전보다 더 잘 던졌다. 야수들이 어설픈 수비로 평범한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주고 불펜 투수들을 믿을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류현진은 흔들리지 않고 제 몫을 충분히 했다.
부상을 이겨내자 이번에는 이른바 '9홉수'의 불운이 찾아왔다. 두 차례 선발 등판에서 승리를 추가하지 못한 10승 세 번째 도전이었던 지난 9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2⅓이닝 10피안타 7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다.
그러나 류현진은 1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맞아 다시 일어섰다. 더는 기회가 없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라는 부담감 속에서도 류현진은 6이닝 동안 사4구 없이 올 시즌 한 경기 최다인 삼진 10개를 곁들여 2피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로 2000년 박찬호도 이루지 못한 전반기 10승을 이뤄냈다.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최근 류현진을 '사이영상 듀오' 커쇼-잭 그레인키와 더불어 '포미더블(formidable)' 트리오라고 불렀다. '포미더블'은 '가공할, 어마어마한'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