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한국 축구를 든든히 뒷받침해온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서울)가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벗었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대표 선수로서의 마지막 43분을 뛰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채워주고 포옹한 뒤 그라운드를 나섰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전광판에 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흐르자 차두리는 울먹였다. 아버지 차범근이 꽃다발을 건네자 끝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차두리는 "분명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면서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던 선수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은퇴 소감을 말했다.
지칠 줄 모르고 질주해온 14년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축구선수로서 이상적인 체격을 물려받은 차두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행운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고려대 학생 신분이던 차두리를 발탁했다.
2001년 11월 세네갈전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공격수였던 그는 12경기만인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골을 겨우 신고했다.
화려했던 시작에 비해 공격수로서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던 차두리는 2006년부터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바꾼다.
타고난 스피드에 탈아시아급 체격을 앞세운 측면 돌파로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았으나 아버지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에는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으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전 감독이 외면했다.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 경력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밝게 타올랐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는 슈틸리케호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며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27년만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질풍같은 오른쪽 돌파로 손흥민(레버쿠젠)의 쐐기골을 돕는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그는 이날까지 대표팀에서 4골 7도움을 올렸다. 공격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리 돋보이는 기록은 아니다.
이날은 그의 76번째 A매치였다. 100경기 이상을 뛰어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한국 축구인이 9명이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기록일 수 있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라는 큰 산을 끝내 넘지 못했고 유럽 무대에서 박지성만큼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였다.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시원한 웃음과 함께 '긍정의 힘'을 발산하는 그는 어느새 '보통 사람의 스타'가 돼 있었다.
태생부터 풀기 힘든 과제를 떠안아야 했던 그를 보며 많은 축구팬들이 함께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지난 아시안컵 때 그를 향한 박수소리는 더 컸을지 모른다.
차두리는 전날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마련한 '팬문선답(팬들이 묻고 선수가 답한다)' 이벤트에서 '차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