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㊷ 피고인 아내, 공소장 속 딸…‘증인’ 조국이 한숨 쉰 질문은?

입력 2020.09.06 (07:00) 수정 2020.09.0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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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300번의 질문과 300번의 답…'형소법 148조'가 뭐길래?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습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27번째 공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무렵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는 말은 3백여 차례 반복됐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남편 조국 전 장관은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되기 전 '증언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고, 이어진 검찰의 질문에 실제로 단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모펀드 투자 등 정 교수 부부의 재산증식 과정에 관한 질문부터 자녀 입시 비리에 관한 질문까지, 검사들은 번갈아 가며 준비한 신문사항을 쏟아냈지만 조 전 장관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자신이나 친족이 처벌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 변호인은 이를 이유로, 그동안 조 전 장관의 증인 채택 자체를 강경하게 반대해왔습니다. 어떻게 봐도 조 전 장관 입장에서 증언거부 대상이 아닌 질문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아내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공소장 속엔 자녀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심지어 조 전 장관 자신도 같은 혐의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죠. 실질적인 증언이 나올 리 만무하고, 인권 침해적인 측면도 있다고 변호인은 주장해왔습니다. 조 전 장관 입에서 의미 있는 말을 들으려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객관적인 증거로 판단하는 게 옳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법정 신문 필요성을 인정했고, 조 전 장관 부부는 지난해 기소 이후 처음으로 함께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조 전 장관은 '증언거부권'을 행사했죠. 결국 이날 재판은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도 더 다가가지 못한 채 마무리됐습니다.

■ 조국, '증언거부 사유' 1장 반 준비해왔지만…재판부 "3단락부터 읽어라"

조 전 장관은 증인 선서 직전, 직접 준비해 온 A4용지 1장 반 분량의 '증언거부권 행사 소명자료'를 읽을 기회를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겠다며, 조 전 장관이 준비해 온 글을 먼저 제출해달라고 했습니다. 해당 내용이 소명 사유에 해당하는지 검토해보겠다는 겁니다.

글을 읽어 본 재판부는 앞부분은 증언거부권 행사와 관련이 없어 낭독을 허가할 수 없다며, 뒷부분인 3번째 단락부터 읽을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렇게 조국 전 장관이 직접 소리 내 읽은 증언거부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오후 재판에서 변호인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증언거부 사유를 소명하게 돼 있는데, 재판부의 이 같은 지휘가 '사전 검열'에 해당해 부적절했다는 주장입니다.

정경심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법정에서 "물론 소명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얘기나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있을 순 있으나, 사전에 주의를 주거나 진술 도중 제지하는 건 별론으로 하고 사전에 준비된 서면을 검열한 것은 저희로선 이례적이고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증인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소명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할 우려가 있어서 검토해보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사전에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고 검열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의제기를 했다"며 "이에 대해선 재판부도 수긍한 듯하다"고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는 "그건 증인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증인'이란 공소사실과 관련해 자신이 겪은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증거로서 진술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소송 지휘 차원에서 이와 관계없는 발언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 전 장관이 준비해 왔지만 결국 낭독하지 못한 증언거부 사유 앞부분에는 그동안의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 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 '법원의 시간' 호소한 검찰 "조국만 확인해줄 수 있어…진실 밝혀달라"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 사유를 들은 검찰은, 지난해 김칠준 변호사가 언급했던 '법원의 시간'을 강조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이자 증인 변호인의 말처럼 지금은 '법원의 시간'"이라며 "이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상황이 됐음에도 증인이 다시 법률에 보장된 권리를 들어 증언을 거부한다 하니 납득하기 어렵고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역시 '증언거부권'이 조 전 장관이 가진 법률상 권리라는 점은 인정한 셈입니다. 이를 행사하는 데 대해 편견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모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 전 장관이 이제는 입을 열어 진실을 털어놓아 주길 바란다는 겁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도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은 세상에서 가장 긴밀한 공동체인 가족의 범행"이라며 "조국 전 장관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관련 정황을 들어왔던 사람"이라고 설명했죠. 취득한 증거의 상당 부분도 결국 조 전 장관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 건데, 검찰은 "조국의 기억은 이 사건의 실체를 발견할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어서 조국 전 장관이 그동안 보여왔던 모습과 지금 이 법정에서의 진술거부권 행사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 앞서 검찰 조사에서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던 사실은 잘 알려졌죠. 형사법학자인 조 전 장관은 당시에도 분명 '증언거부권'에 대해 잘 알았을 텐데, 그렇게 말했다면 적어도 이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더구나 조 전 장관이 자신의 SNS를 통해서는 활발하게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게 정말 '반론권 행사' 차원이었다면 법정에서도 증언을 거부할 게 아니라 어떤 게 진실인지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정당한 권리행사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답을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질문 하나하나를 언론에 공개되도록 해 '피고인 가족 면박주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고 맞섰습니다.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말도 자신이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었지, 증인의 지위에서 아내의 범행에 대해 밝히겠다고 한 것은 전혀 아니라고 설명했죠.

검찰은 "공개된 법정에서 이뤄지는 검찰의 입증 활동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이 검찰에 부여한 임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와 같은 활동에 대해 검찰이 '망신주기'를 하려는 의도라고 폄하하는 건 잘못됐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 사모펀드·입시 비리 전방위 질문…"남편 조국은 다 알고 있었나?"

이렇게 본격적인 증인신문 전부터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검찰과 변호인. 변호인은 오후에도 다시 한번 '이런 식이라면 신문을 중단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재판부 판단에 따라 신문은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조국 전 장관은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는 말로 모든 답변을 갈음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조 전 장관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졌을까요? 사모펀드 의혹과 입시 비리 의혹 전반에 걸쳐 그야말로 광범위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검찰의 시각은, 한 마디로 '남편인 조 전 장관이 몰랐을 수 없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는 의심을 드러냈죠.

우선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가 주고받은 문자가 여러 차례 제시됐습니다. 정 교수가 2015년 12월 조 씨를 만나 금전 거래를 하기 전날 밤, 조 전 장관에게 수천만 원을 송금받았다는 사실도 증거로 들었습니다. 결국, 정 교수의 투자에 조 전 장관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는 나중에 부부가 증거인멸 범행을 공모하게 되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는 게 검찰 측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5월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됐을 당시,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나 '부동산·금융 등 현황자료' 등을 정 교수와 함께 작성해 청와대로 보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조 전 장관도 가족의 재산 현황과 정 교수 동생이나 조범동 씨 측과의 금전 거래 사실을 파악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검찰은 당시 정 교수가 조 전 장관 동생의 아내에게 자료 작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점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직접 나눈 문자도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에 임명된 직후인 2017년 6월 정 교수가 남편에게 ETF 투자가 가능한지 등을 물어봤던 점, 2019년 6월 자녀 상속에 관해 얘기했던 점 등을 제시했죠. 검찰은 주로 누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것이 맞는지 등을 조 전 장관에게 물었습니다. 정 교수가 금융투자를 할 때 조 전 장관에게 가부를 묻거나, 예상수익 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느냐고도 물었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인 코링크PE에 투자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 전 장관이 알고 있는 게 없는지도 질문했습니다.

변호인은 검찰 측 신문사항에 대해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검찰이 '당신이 남편인데 다 알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며 "조 전 장관이 상대방과 했던 대화를 제시하거나 조 전 장관의 행위를 제시하며 묻는 건 전혀 상관없지만, 이와 상관없는 것을 묻는 건 유도신문에 속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결국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이 부부 사이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 관리 과정, 운용과정, 재산증식 과정에서 있었던 범행"이라며 "조 전 장관과 정 교수의 '논의 수준'은 두 사람의 역할 분담에 대한 중요한 간접 증거"라고 반박했습니다.

■ 단 한 번, 조국이 흔들린 질문…"'내 딸 봤다'고 왜 말 안 했나?"

그렇게 오전 재판이 끝나고, 오후에는 주로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직접 딸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부산 모 호텔 인턴십 증명서를 작성하는가 하면 단국대 의학 논문에도 관여했고, 딸의 고3 담임선생님을 만난 뒤 호텔 인턴십 자리를 알아보는 등 이른바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써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해선 정 교수가 자택 하드디스크를 바꾼 과정을 알고 있었는지, 검찰 압수수색 이후 휴대폰 유심칩을 갈아 끼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신문 대상이 됐습니다.

흔들림 없이 '형사법 148조'를 말하던 조 전 장관은 몇몇 질문에는 헛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흔들기도 했는데, 딱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재판에서 여러 번 언급됐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였죠.

2009년 5월 열린 이 세미나에 당시 한영외고 3학년이었던 딸 조민 씨가 참석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정 교수 측은 조 씨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의 일환으로 이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측에선 그런 적이 없다고 맞서왔죠.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세미나 사진 감정까지 맡겼지만,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조 전 장관은 이 세미나 연단에 앉아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참석자가 1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세미나여서, 딸이 참석했다면 조 전 장관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주장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물었습니다. "세미나 장소의 크기, 참석 인원, 아버지가 딸을 몰라볼 수 없는 점에 비춰서 증인으로선 조민 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다면 충분히 파악할 여건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내 딸을 봤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에 조 전 장관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잠시 뜸을 들이다가 "148조에 따르겠다"는 짧은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 "당연한 증인의 권리" VS "진실 접근에 협조 않은 것"

이날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권 행사를 두고, 법조계에선 의견이 엇갈립니다. 서초동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에도 진술거부권이 보장돼있는데 그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며 "당연한 증인의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신문에 앞서 증인에게 증언거부권을 고지하는 취지를 생각하면, 조 전 장관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조차 옳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러한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 무시돼 온 측면이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반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한다면, 법정에서 자신이 아는 대로 사실을 얘기하는 게 맞고 그게 증인의 기본적인 의무"라며 "수사 기관은 적대적인 반대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법정에서 아무 얘기를 안 한다는 건 '실체적 진실' 발견에 자신은 아무런 도움을 안 주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조 전 장관 본인이 피고인인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에 대해선 "증인의 지위를 내세우려면, 아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그동안의 얘기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증언거부권은 '내가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증언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인데 그동안 결백하다고 밝힌 본인의 입장하고도 영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평가가 오가는 가운데,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가 재판부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소된 형사합의21부 재판에선 조 전 장관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설지도 주목됩니다.

다음 주에는 정 교수 재판이 두 차례 열립니다. 화요일엔 동양대 원어민 교수와 교양학부 조교 등 입시 비리 의혹 관계자들이, 목요일엔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 정 교수의 친동생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같은 날 나오기로 했던 조범동 씨의 아내는, 정 교수 변호인이 입장을 바꿔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면서 증인 신문이 취소됐습니다.

오늘은 지난해 9월 6일 정 교수가 딸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지 만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 교수 재판도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요. 다음 [법원의 시간]에서도 재판 내용을 충실히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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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의 시간]㊷ 피고인 아내, 공소장 속 딸…‘증인’ 조국이 한숨 쉰 질문은?
    • 입력 2020-09-06 07:00:28
    • 수정2020-09-06 07:05:08
    취재K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300번의 질문과 300번의 답…'형소법 148조'가 뭐길래?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습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27번째 공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무렵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는 말은 3백여 차례 반복됐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남편 조국 전 장관은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되기 전 '증언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고, 이어진 검찰의 질문에 실제로 단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모펀드 투자 등 정 교수 부부의 재산증식 과정에 관한 질문부터 자녀 입시 비리에 관한 질문까지, 검사들은 번갈아 가며 준비한 신문사항을 쏟아냈지만 조 전 장관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자신이나 친족이 처벌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 변호인은 이를 이유로, 그동안 조 전 장관의 증인 채택 자체를 강경하게 반대해왔습니다. 어떻게 봐도 조 전 장관 입장에서 증언거부 대상이 아닌 질문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아내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공소장 속엔 자녀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심지어 조 전 장관 자신도 같은 혐의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죠. 실질적인 증언이 나올 리 만무하고, 인권 침해적인 측면도 있다고 변호인은 주장해왔습니다. 조 전 장관 입에서 의미 있는 말을 들으려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객관적인 증거로 판단하는 게 옳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법정 신문 필요성을 인정했고, 조 전 장관 부부는 지난해 기소 이후 처음으로 함께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조 전 장관은 '증언거부권'을 행사했죠. 결국 이날 재판은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도 더 다가가지 못한 채 마무리됐습니다.

■ 조국, '증언거부 사유' 1장 반 준비해왔지만…재판부 "3단락부터 읽어라"

조 전 장관은 증인 선서 직전, 직접 준비해 온 A4용지 1장 반 분량의 '증언거부권 행사 소명자료'를 읽을 기회를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겠다며, 조 전 장관이 준비해 온 글을 먼저 제출해달라고 했습니다. 해당 내용이 소명 사유에 해당하는지 검토해보겠다는 겁니다.

글을 읽어 본 재판부는 앞부분은 증언거부권 행사와 관련이 없어 낭독을 허가할 수 없다며, 뒷부분인 3번째 단락부터 읽을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렇게 조국 전 장관이 직접 소리 내 읽은 증언거부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오후 재판에서 변호인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증언거부 사유를 소명하게 돼 있는데, 재판부의 이 같은 지휘가 '사전 검열'에 해당해 부적절했다는 주장입니다.

정경심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법정에서 "물론 소명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얘기나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있을 순 있으나, 사전에 주의를 주거나 진술 도중 제지하는 건 별론으로 하고 사전에 준비된 서면을 검열한 것은 저희로선 이례적이고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증인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소명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할 우려가 있어서 검토해보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사전에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고 검열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의제기를 했다"며 "이에 대해선 재판부도 수긍한 듯하다"고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는 "그건 증인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증인'이란 공소사실과 관련해 자신이 겪은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증거로서 진술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소송 지휘 차원에서 이와 관계없는 발언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 전 장관이 준비해 왔지만 결국 낭독하지 못한 증언거부 사유 앞부분에는 그동안의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 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 '법원의 시간' 호소한 검찰 "조국만 확인해줄 수 있어…진실 밝혀달라"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 사유를 들은 검찰은, 지난해 김칠준 변호사가 언급했던 '법원의 시간'을 강조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이자 증인 변호인의 말처럼 지금은 '법원의 시간'"이라며 "이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상황이 됐음에도 증인이 다시 법률에 보장된 권리를 들어 증언을 거부한다 하니 납득하기 어렵고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역시 '증언거부권'이 조 전 장관이 가진 법률상 권리라는 점은 인정한 셈입니다. 이를 행사하는 데 대해 편견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모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 전 장관이 이제는 입을 열어 진실을 털어놓아 주길 바란다는 겁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도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은 세상에서 가장 긴밀한 공동체인 가족의 범행"이라며 "조국 전 장관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관련 정황을 들어왔던 사람"이라고 설명했죠. 취득한 증거의 상당 부분도 결국 조 전 장관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 건데, 검찰은 "조국의 기억은 이 사건의 실체를 발견할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어서 조국 전 장관이 그동안 보여왔던 모습과 지금 이 법정에서의 진술거부권 행사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 앞서 검찰 조사에서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던 사실은 잘 알려졌죠. 형사법학자인 조 전 장관은 당시에도 분명 '증언거부권'에 대해 잘 알았을 텐데, 그렇게 말했다면 적어도 이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더구나 조 전 장관이 자신의 SNS를 통해서는 활발하게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게 정말 '반론권 행사' 차원이었다면 법정에서도 증언을 거부할 게 아니라 어떤 게 진실인지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정당한 권리행사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답을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질문 하나하나를 언론에 공개되도록 해 '피고인 가족 면박주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고 맞섰습니다.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말도 자신이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었지, 증인의 지위에서 아내의 범행에 대해 밝히겠다고 한 것은 전혀 아니라고 설명했죠.

검찰은 "공개된 법정에서 이뤄지는 검찰의 입증 활동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이 검찰에 부여한 임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와 같은 활동에 대해 검찰이 '망신주기'를 하려는 의도라고 폄하하는 건 잘못됐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 사모펀드·입시 비리 전방위 질문…"남편 조국은 다 알고 있었나?"

이렇게 본격적인 증인신문 전부터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검찰과 변호인. 변호인은 오후에도 다시 한번 '이런 식이라면 신문을 중단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재판부 판단에 따라 신문은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조국 전 장관은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는 말로 모든 답변을 갈음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조 전 장관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졌을까요? 사모펀드 의혹과 입시 비리 의혹 전반에 걸쳐 그야말로 광범위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검찰의 시각은, 한 마디로 '남편인 조 전 장관이 몰랐을 수 없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는 의심을 드러냈죠.

우선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가 주고받은 문자가 여러 차례 제시됐습니다. 정 교수가 2015년 12월 조 씨를 만나 금전 거래를 하기 전날 밤, 조 전 장관에게 수천만 원을 송금받았다는 사실도 증거로 들었습니다. 결국, 정 교수의 투자에 조 전 장관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는 나중에 부부가 증거인멸 범행을 공모하게 되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는 게 검찰 측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5월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됐을 당시,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나 '부동산·금융 등 현황자료' 등을 정 교수와 함께 작성해 청와대로 보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조 전 장관도 가족의 재산 현황과 정 교수 동생이나 조범동 씨 측과의 금전 거래 사실을 파악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검찰은 당시 정 교수가 조 전 장관 동생의 아내에게 자료 작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점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직접 나눈 문자도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에 임명된 직후인 2017년 6월 정 교수가 남편에게 ETF 투자가 가능한지 등을 물어봤던 점, 2019년 6월 자녀 상속에 관해 얘기했던 점 등을 제시했죠. 검찰은 주로 누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것이 맞는지 등을 조 전 장관에게 물었습니다. 정 교수가 금융투자를 할 때 조 전 장관에게 가부를 묻거나, 예상수익 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느냐고도 물었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인 코링크PE에 투자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 전 장관이 알고 있는 게 없는지도 질문했습니다.

변호인은 검찰 측 신문사항에 대해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검찰이 '당신이 남편인데 다 알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며 "조 전 장관이 상대방과 했던 대화를 제시하거나 조 전 장관의 행위를 제시하며 묻는 건 전혀 상관없지만, 이와 상관없는 것을 묻는 건 유도신문에 속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결국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이 부부 사이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 관리 과정, 운용과정, 재산증식 과정에서 있었던 범행"이라며 "조 전 장관과 정 교수의 '논의 수준'은 두 사람의 역할 분담에 대한 중요한 간접 증거"라고 반박했습니다.

■ 단 한 번, 조국이 흔들린 질문…"'내 딸 봤다'고 왜 말 안 했나?"

그렇게 오전 재판이 끝나고, 오후에는 주로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직접 딸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부산 모 호텔 인턴십 증명서를 작성하는가 하면 단국대 의학 논문에도 관여했고, 딸의 고3 담임선생님을 만난 뒤 호텔 인턴십 자리를 알아보는 등 이른바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써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해선 정 교수가 자택 하드디스크를 바꾼 과정을 알고 있었는지, 검찰 압수수색 이후 휴대폰 유심칩을 갈아 끼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신문 대상이 됐습니다.

흔들림 없이 '형사법 148조'를 말하던 조 전 장관은 몇몇 질문에는 헛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흔들기도 했는데, 딱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재판에서 여러 번 언급됐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였죠.

2009년 5월 열린 이 세미나에 당시 한영외고 3학년이었던 딸 조민 씨가 참석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정 교수 측은 조 씨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의 일환으로 이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측에선 그런 적이 없다고 맞서왔죠.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세미나 사진 감정까지 맡겼지만,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조 전 장관은 이 세미나 연단에 앉아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참석자가 1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세미나여서, 딸이 참석했다면 조 전 장관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주장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물었습니다. "세미나 장소의 크기, 참석 인원, 아버지가 딸을 몰라볼 수 없는 점에 비춰서 증인으로선 조민 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다면 충분히 파악할 여건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내 딸을 봤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에 조 전 장관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잠시 뜸을 들이다가 "148조에 따르겠다"는 짧은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 "당연한 증인의 권리" VS "진실 접근에 협조 않은 것"

이날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권 행사를 두고, 법조계에선 의견이 엇갈립니다. 서초동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에도 진술거부권이 보장돼있는데 그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며 "당연한 증인의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신문에 앞서 증인에게 증언거부권을 고지하는 취지를 생각하면, 조 전 장관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조차 옳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러한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 무시돼 온 측면이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반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한다면, 법정에서 자신이 아는 대로 사실을 얘기하는 게 맞고 그게 증인의 기본적인 의무"라며 "수사 기관은 적대적인 반대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법정에서 아무 얘기를 안 한다는 건 '실체적 진실' 발견에 자신은 아무런 도움을 안 주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조 전 장관 본인이 피고인인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에 대해선 "증인의 지위를 내세우려면, 아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그동안의 얘기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증언거부권은 '내가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증언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인데 그동안 결백하다고 밝힌 본인의 입장하고도 영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평가가 오가는 가운데,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가 재판부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소된 형사합의21부 재판에선 조 전 장관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설지도 주목됩니다.

다음 주에는 정 교수 재판이 두 차례 열립니다. 화요일엔 동양대 원어민 교수와 교양학부 조교 등 입시 비리 의혹 관계자들이, 목요일엔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 정 교수의 친동생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같은 날 나오기로 했던 조범동 씨의 아내는, 정 교수 변호인이 입장을 바꿔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면서 증인 신문이 취소됐습니다.

오늘은 지난해 9월 6일 정 교수가 딸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지 만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 교수 재판도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요. 다음 [법원의 시간]에서도 재판 내용을 충실히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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