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벤치는 끝까지 한현희를 마운드에 올리지 못했다. 아니 올릴 수 없었다.
그 결과 한현희가 책임져야 할 몫을 조상우, 손승락이 대신 짊어져야 했고, 결국 그 무게를 버텨내지 못했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다.
넥센 히어로즈는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치러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1-0으로 앞선 9회말 2사 1, 3루에서 삼성의 4번 타자 최형우에게 1루 선상을 빠져나가는 통한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고 1-2 역전패를 당했다.
8회말 무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등판해 기적 같은 호투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손승락은 그러나 9회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아내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넥센의 이번 한국시리즈 투수진 운용 구상부터 무리가 많았다. 넥센은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앤디 밴헤켄-헨리 소사-오재영의 선발 3명, 조상우-한현희-손승락의 필승조 3명 만으로 마운드를 꾸려왔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이러한 운용 방식이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5전 3승제의 플레이오프보다 두 경기를 더 치르는 한국시리즈(7전 4승제)에서는 사실 성공하기 쉽지 않은 전략이었다.
특히 넥센 입장에서 정규리그 1위팀 삼성은 시즌 막판까지 4위 경쟁을 벌인 LG와 달리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버거운 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필승조의 한 축인 오른손 옆구리 투수 한현희가 삼성이 자랑하는 좌타라인에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면서 넥센의 전략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 시즌까지 2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한 한현희는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에 등판해 1⅓이닝 동안 4점을 내주며 1패 27.00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3차전에서는 9회 박한이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됐고 9-1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한 4차전에서도 9회 연속 볼넷으로 무사 1, 2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한현희를 믿지 못하는 넥센은 그의 몫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했다. 그 상황에서 넥센은 다른 불펜 투수들에게 짐을 나눠주는 대신 조상우와 손승락의 투구 이닝을 늘려 갔다.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3차전에서 38개의 공을 던진 조상우는 이날 7회말 1사 1루의 위기는 잘 막아냈지만 8회말 안타와 볼넷,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3차전에서 역시 3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손승락(33개)는 이날 8회말에 이어 9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정규시즌이었다면 조상우, 손승락, 한현희가 1이닝씩을 책임졌겠지만, 넥센 벤치는 한현희를 믿지 못했다. 더군다나 10명의 넥센 투수 엔트리 중에서는 9회말부터 줄줄이 등장하는 삼성의 좌타 라인을 상대할 좌완 스페셜리스트가 없었다.
결국 넥센은 손승락을 9회에도 밀어붙였고, 패착이 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넥센은 3차전에 이어 5차전에도 불펜을 총동원한 승부에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결코 무리한 불펜 운용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페넌트레이스와 포스트 시즌이 같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