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객주’ 김주영 작가 “내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
입력 2021.11.28 (21:30)
수정 2021.11.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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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 소설가
Q.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첫 역사소설인데?
왜 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았나, 역사소설에서. 이 사람들이 천민 취급받았거든요. 조선 시대 천민이라는 건 뱃사공이라든지 기생이라든지 그냥 천민 아닙니까. 그런데 보부상도 천민에 속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자료가 없다는 거예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그런 보부상이 저 양반의 할아버지였다, 저 집안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찾아가잖아요. 사정 얘기를 정중하게 하고 자료가 좀 있으면 (달라). 우리는 그런 자료가 없다, 거절을 당했던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이 천민 취급받았던 것을 경계하니까. 그리고 그런 게 혹시 남아 있었더라도 어디 치워버리고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그랬지. (조상이) 진사라도 했으면 담뱃대까지도 다 보관하고 있는데 (보부상은) 안 했다고.
이 사람들 일생이 굉장히 요새 말로 하면 역동적이었거든요. 정한 구속 없이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다니면서 남겨놓은 그 역동적인 사실, 역사들이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없어져 버리고, 알아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어느 역사소설보다도 이 <객주>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상상력이 많이 동원돼 있다고 볼 수 있지요.
Q. 소설의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말들, 요새 보면 상당히 생소하지요. 생소하고 어렵고 그런데, 그걸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조사를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 시절에 아주 지독한 욕으로‘천좍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좍. 천좍.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어원이 ‘천주학을 할 놈’ 이런 거예요. 이런 걸 하나 발굴해냈는데 내 딴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했는데, 그걸 없애버린다면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할지라도 그런 공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쉬운 말로 고치는 걸 삼갔죠.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런 제안에 왔을 때 거절했습니다. 책 안 팔려도 좋다. 말하자면 내가 공을 이렇게 들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포기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Q. 배신과 복수, 치정 같은 '19금' 장면이 많은데?
욕정이라든지 치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점잖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 삶의 한 모퉁이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말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까발린 거죠. 이런 것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섹스란 것도 우리 삶의 큰 부분이다, 큰 부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을 나는 이 소설에 도입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느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거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작가가 뽑은 <객주>의 한 문장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런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객주> 10권 44쪽.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얘기한 대목 같은데요. ‘걷고, 또 걸어도’라는 것은 어떤 인생의 길, 실제로 물리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떠나온 길. 살고 또 살아도 일하고 또 일해도 문득 잠시 고개를 들면 외롭게 서 있는 혼자 서 있는 바람 속에서 혼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였다.
Q. 소설가로서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이다?
내가 비교적 늦게, 20대에 데뷔를 한 사람들하고는 달리 31살에 데뷔했거든요, 소설가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많은 소설을 썼어요. 대하, 장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콩트도 쓰고 그 다음에 동시도 쓰고 옛날에는 이랬는데요. 여러 가지 글 쓰는 일을 형식을 바꿔서 이리도 부딪혀 보고 저리도 부딪혀 보고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 짧은 소설도 써보고 <객주> 같은 특별한 소설도 써보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 몸에 배어 있는 외로움이나 이런 건 고칠 수 없는 것 같아요.
긴 소설을 써서 이제 한 몇 년 동안 공들여서 썼는데 마무리가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어떤 성취감 같은 게 있어요. 근데 그게 잠시예요. 얼마 못가요. 왜? 또 새로운 걸 생각하고 새로운 걸 위해서 도전해야 되니까.
제가 지금 80이 넘었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죠. 그런데 계획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져요, 계획은. 아, 뭘 써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뿐이니까. 재주가 하나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고는 글 쓰는 일뿐이니까.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성취감은 잠시, 외로움이 빠지고 그렇게 되죠. 외로움이나 이런 것은 못 고치는 것 같아요. 운명 같아요. 나 혼자만 그러느냐.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편집 이도연
Q.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첫 역사소설인데?
왜 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았나, 역사소설에서. 이 사람들이 천민 취급받았거든요. 조선 시대 천민이라는 건 뱃사공이라든지 기생이라든지 그냥 천민 아닙니까. 그런데 보부상도 천민에 속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자료가 없다는 거예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그런 보부상이 저 양반의 할아버지였다, 저 집안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찾아가잖아요. 사정 얘기를 정중하게 하고 자료가 좀 있으면 (달라). 우리는 그런 자료가 없다, 거절을 당했던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이 천민 취급받았던 것을 경계하니까. 그리고 그런 게 혹시 남아 있었더라도 어디 치워버리고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그랬지. (조상이) 진사라도 했으면 담뱃대까지도 다 보관하고 있는데 (보부상은) 안 했다고.
이 사람들 일생이 굉장히 요새 말로 하면 역동적이었거든요. 정한 구속 없이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다니면서 남겨놓은 그 역동적인 사실, 역사들이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없어져 버리고, 알아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어느 역사소설보다도 이 <객주>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상상력이 많이 동원돼 있다고 볼 수 있지요.
Q. 소설의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말들, 요새 보면 상당히 생소하지요. 생소하고 어렵고 그런데, 그걸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조사를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 시절에 아주 지독한 욕으로‘천좍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좍. 천좍.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어원이 ‘천주학을 할 놈’ 이런 거예요. 이런 걸 하나 발굴해냈는데 내 딴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했는데, 그걸 없애버린다면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할지라도 그런 공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쉬운 말로 고치는 걸 삼갔죠.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런 제안에 왔을 때 거절했습니다. 책 안 팔려도 좋다. 말하자면 내가 공을 이렇게 들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포기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Q. 배신과 복수, 치정 같은 '19금' 장면이 많은데?
욕정이라든지 치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점잖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 삶의 한 모퉁이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말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까발린 거죠. 이런 것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섹스란 것도 우리 삶의 큰 부분이다, 큰 부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을 나는 이 소설에 도입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느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거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작가가 뽑은 <객주>의 한 문장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런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객주> 10권 44쪽.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얘기한 대목 같은데요. ‘걷고, 또 걸어도’라는 것은 어떤 인생의 길, 실제로 물리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떠나온 길. 살고 또 살아도 일하고 또 일해도 문득 잠시 고개를 들면 외롭게 서 있는 혼자 서 있는 바람 속에서 혼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였다.
Q. 소설가로서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이다?
내가 비교적 늦게, 20대에 데뷔를 한 사람들하고는 달리 31살에 데뷔했거든요, 소설가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많은 소설을 썼어요. 대하, 장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콩트도 쓰고 그 다음에 동시도 쓰고 옛날에는 이랬는데요. 여러 가지 글 쓰는 일을 형식을 바꿔서 이리도 부딪혀 보고 저리도 부딪혀 보고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 짧은 소설도 써보고 <객주> 같은 특별한 소설도 써보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 몸에 배어 있는 외로움이나 이런 건 고칠 수 없는 것 같아요.
긴 소설을 써서 이제 한 몇 년 동안 공들여서 썼는데 마무리가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어떤 성취감 같은 게 있어요. 근데 그게 잠시예요. 얼마 못가요. 왜? 또 새로운 걸 생각하고 새로운 걸 위해서 도전해야 되니까.
제가 지금 80이 넘었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죠. 그런데 계획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져요, 계획은. 아, 뭘 써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뿐이니까. 재주가 하나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고는 글 쓰는 일뿐이니까.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성취감은 잠시, 외로움이 빠지고 그렇게 되죠. 외로움이나 이런 것은 못 고치는 것 같아요. 운명 같아요. 나 혼자만 그러느냐.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편집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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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객주’ 김주영 작가 “내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
-
- 입력 2021-11-28 21:30:51
- 수정2021-11-28 21:36:17
김주영 / 소설가
Q.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첫 역사소설인데?
왜 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았나, 역사소설에서. 이 사람들이 천민 취급받았거든요. 조선 시대 천민이라는 건 뱃사공이라든지 기생이라든지 그냥 천민 아닙니까. 그런데 보부상도 천민에 속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자료가 없다는 거예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그런 보부상이 저 양반의 할아버지였다, 저 집안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찾아가잖아요. 사정 얘기를 정중하게 하고 자료가 좀 있으면 (달라). 우리는 그런 자료가 없다, 거절을 당했던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이 천민 취급받았던 것을 경계하니까. 그리고 그런 게 혹시 남아 있었더라도 어디 치워버리고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그랬지. (조상이) 진사라도 했으면 담뱃대까지도 다 보관하고 있는데 (보부상은) 안 했다고.
이 사람들 일생이 굉장히 요새 말로 하면 역동적이었거든요. 정한 구속 없이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다니면서 남겨놓은 그 역동적인 사실, 역사들이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없어져 버리고, 알아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어느 역사소설보다도 이 <객주>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상상력이 많이 동원돼 있다고 볼 수 있지요.
Q. 소설의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말들, 요새 보면 상당히 생소하지요. 생소하고 어렵고 그런데, 그걸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조사를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 시절에 아주 지독한 욕으로‘천좍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좍. 천좍.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어원이 ‘천주학을 할 놈’ 이런 거예요. 이런 걸 하나 발굴해냈는데 내 딴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했는데, 그걸 없애버린다면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할지라도 그런 공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쉬운 말로 고치는 걸 삼갔죠.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런 제안에 왔을 때 거절했습니다. 책 안 팔려도 좋다. 말하자면 내가 공을 이렇게 들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포기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Q. 배신과 복수, 치정 같은 '19금' 장면이 많은데?
욕정이라든지 치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점잖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 삶의 한 모퉁이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말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까발린 거죠. 이런 것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섹스란 것도 우리 삶의 큰 부분이다, 큰 부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을 나는 이 소설에 도입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느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거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작가가 뽑은 <객주>의 한 문장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런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객주> 10권 44쪽.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얘기한 대목 같은데요. ‘걷고, 또 걸어도’라는 것은 어떤 인생의 길, 실제로 물리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떠나온 길. 살고 또 살아도 일하고 또 일해도 문득 잠시 고개를 들면 외롭게 서 있는 혼자 서 있는 바람 속에서 혼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였다.
Q. 소설가로서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이다?
내가 비교적 늦게, 20대에 데뷔를 한 사람들하고는 달리 31살에 데뷔했거든요, 소설가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많은 소설을 썼어요. 대하, 장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콩트도 쓰고 그 다음에 동시도 쓰고 옛날에는 이랬는데요. 여러 가지 글 쓰는 일을 형식을 바꿔서 이리도 부딪혀 보고 저리도 부딪혀 보고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 짧은 소설도 써보고 <객주> 같은 특별한 소설도 써보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 몸에 배어 있는 외로움이나 이런 건 고칠 수 없는 것 같아요.
긴 소설을 써서 이제 한 몇 년 동안 공들여서 썼는데 마무리가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어떤 성취감 같은 게 있어요. 근데 그게 잠시예요. 얼마 못가요. 왜? 또 새로운 걸 생각하고 새로운 걸 위해서 도전해야 되니까.
제가 지금 80이 넘었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죠. 그런데 계획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져요, 계획은. 아, 뭘 써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뿐이니까. 재주가 하나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고는 글 쓰는 일뿐이니까.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성취감은 잠시, 외로움이 빠지고 그렇게 되죠. 외로움이나 이런 것은 못 고치는 것 같아요. 운명 같아요. 나 혼자만 그러느냐.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편집 이도연
Q.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첫 역사소설인데?
왜 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았나, 역사소설에서. 이 사람들이 천민 취급받았거든요. 조선 시대 천민이라는 건 뱃사공이라든지 기생이라든지 그냥 천민 아닙니까. 그런데 보부상도 천민에 속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자료가 없다는 거예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그런 보부상이 저 양반의 할아버지였다, 저 집안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찾아가잖아요. 사정 얘기를 정중하게 하고 자료가 좀 있으면 (달라). 우리는 그런 자료가 없다, 거절을 당했던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이 천민 취급받았던 것을 경계하니까. 그리고 그런 게 혹시 남아 있었더라도 어디 치워버리고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그랬지. (조상이) 진사라도 했으면 담뱃대까지도 다 보관하고 있는데 (보부상은) 안 했다고.
이 사람들 일생이 굉장히 요새 말로 하면 역동적이었거든요. 정한 구속 없이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다니면서 남겨놓은 그 역동적인 사실, 역사들이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없어져 버리고, 알아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어느 역사소설보다도 이 <객주>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상상력이 많이 동원돼 있다고 볼 수 있지요.
Q. 소설의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말들, 요새 보면 상당히 생소하지요. 생소하고 어렵고 그런데, 그걸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조사를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 시절에 아주 지독한 욕으로‘천좍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좍. 천좍.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어원이 ‘천주학을 할 놈’ 이런 거예요. 이런 걸 하나 발굴해냈는데 내 딴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했는데, 그걸 없애버린다면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할지라도 그런 공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쉬운 말로 고치는 걸 삼갔죠.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런 제안에 왔을 때 거절했습니다. 책 안 팔려도 좋다. 말하자면 내가 공을 이렇게 들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포기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Q. 배신과 복수, 치정 같은 '19금' 장면이 많은데?
욕정이라든지 치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점잖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 삶의 한 모퉁이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말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까발린 거죠. 이런 것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섹스란 것도 우리 삶의 큰 부분이다, 큰 부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을 나는 이 소설에 도입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느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거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작가가 뽑은 <객주>의 한 문장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런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객주> 10권 44쪽.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얘기한 대목 같은데요. ‘걷고, 또 걸어도’라는 것은 어떤 인생의 길, 실제로 물리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떠나온 길. 살고 또 살아도 일하고 또 일해도 문득 잠시 고개를 들면 외롭게 서 있는 혼자 서 있는 바람 속에서 혼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였다.
Q. 소설가로서 창작의 원동력은 외로움이다?
내가 비교적 늦게, 20대에 데뷔를 한 사람들하고는 달리 31살에 데뷔했거든요, 소설가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많은 소설을 썼어요. 대하, 장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콩트도 쓰고 그 다음에 동시도 쓰고 옛날에는 이랬는데요. 여러 가지 글 쓰는 일을 형식을 바꿔서 이리도 부딪혀 보고 저리도 부딪혀 보고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 짧은 소설도 써보고 <객주> 같은 특별한 소설도 써보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 몸에 배어 있는 외로움이나 이런 건 고칠 수 없는 것 같아요.
긴 소설을 써서 이제 한 몇 년 동안 공들여서 썼는데 마무리가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어떤 성취감 같은 게 있어요. 근데 그게 잠시예요. 얼마 못가요. 왜? 또 새로운 걸 생각하고 새로운 걸 위해서 도전해야 되니까.
제가 지금 80이 넘었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죠. 그런데 계획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져요, 계획은. 아, 뭘 써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뿐이니까. 재주가 하나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고는 글 쓰는 일뿐이니까.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성취감은 잠시, 외로움이 빠지고 그렇게 되죠. 외로움이나 이런 것은 못 고치는 것 같아요. 운명 같아요. 나 혼자만 그러느냐.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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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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